해마다 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학업, 취업 등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영국 땅을 밟고 있지만, 막상 낯선 환경이 만드는 장벽으로 인해 움츠러들곤 한다. 그럼에도 꿈과 도전은 젊음의 특권, 오늘 만나본 이윤주 님은 다양한 배움과 경험에 자신을 마음껏 노출한 채, 오늘 하루도 꿈과 도전을 위해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이윤주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의상학과 졸업
Nottingham Trent University MA fashion design 졸업
영국에서 밴드 베이스 기타 연주자 활동
전 밴드 Overvibe 베이시스트 / 현 밴드 Ambersuit 베이시스트


유로저널: 영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면서, 특별히 드물게 한국 여성으로서 현지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윤주 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우선 영국에는 언제, 어떠한 계기로 오셨는지요? 또, 특별히 영국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이윤주: 네, 저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는 인터뷰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2007년 7월 Nottingham Trent University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기 위해 영국에 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Trend, 즉 유행, 시류를 이끄는 힘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있다고 믿습니다.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 특히 7,80년대의 섹스 피스톨즈, 비틀즈, 맨체스터 Factory군단과 당시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디자이너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동경으로 영국 유학을 항상 꿈꾸고 있었습니다. 영국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Nottingham Trent University 대학원 입학 심사에서 자신이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rix)의 Roadie(공연 매니저)였다는 부총장과 인터뷰 도중 우연히 음악 이야기를 했는데, 너는 영국에 와서 음악이 뭔지, 패션이 뭔지를 좀 배워야겠다면서 입학 허가서에 사인을 해주며 영국에서 보자는 한 마디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후, 70살이 넘은 부총장과 학기 중에 커피를 마시며 음악과 예술, 인생을 논했던 그 시간들은 소중했던 유학 생활 추억이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사연은?

이윤주:  대학 시절 연극과 영화 의상을 디자인하며 의상 디자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 출신의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품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 등장하는 장 폴 고티에의 의상에 매료되어 무대 의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연극, 영화, 공연, 뮤직 비디오 관련 패션과 연출을 공부하고 싶어 전공을 시작했습니다.

유로저널: 영국에서 Fashion Design 과정을 마치셨는데, 어떠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는지요?

이윤주: Nottingham Trent University의 MA 과정은 개인의 개성을 전적으로 존중해주는 과정이었습니다. MA in Fashion Design 과정이었음에도, 단순히 의상 디자인과 쇼 디자인에 머무르지 않고, 개개인의 고유한 배경과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한 장르와 활발한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해 주었습니다. 학기 초, 졸업작품으로 프랑스 철학을 바탕으로 Fashion Music Video를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도, 세미나, 인터뷰, 레코딩, 홍보, 스폰서 등 전반적인 과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패션디자인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프로듀싱, 아트 다이렉팅, 비디오 편집, 레코딩에 대한 지식을 얻었으며, 저의 소질과 관심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지인들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 많은 것을 보여 주었고, 항상 제가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졸업 후에도 단순히 Fashion Designer 분야로 한정되기 보다는 대학원 과정에서 경험한 폭넓은 분야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진로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현재 런던에서 외국인들과 밴드 활동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악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또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요?

이윤주: 한국에서부터 여러 카피밴드들을 통해 클럽 공연 위주로 활동했었고, 영국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Overvibe라는 현지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부족해서 잔뜩 겁을 먹었지만, 몇 번의 합주를 거치며 ‘음악은 만국 공용어’라는 교훈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EP앨범을 레코딩하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공연도 해보고, 뮤직비디오도 촬영하는 등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는 동시에 Nottingham이 주 활동무대였던 Overvibe를 떠나 지금의 Ambersuit 밴드에서 연주 중입니다. 3월에 노르웨이에서 첫 EP앨범을 녹음한 뒤, 본격적인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유로저널: 음악은 어떠한 계기로 시작하셨는지요?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 장르, 뮤지션이 있다면?

이윤주: 고등학교 때 Pantera의 ‘I’m broken’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베이시스트 Rex Brown에 첫눈에 반해 반드시 베이스를 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부산 해운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밴드 활동을 허락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인기가 높았던 음악 잡지인 핫뮤직을 구독하며 열심히 음악을 찾아서 들었는데, Slipknot, Pantera, Mr.big, Dream Theatre, Dio, Smashing Pumpkins, RATM, Placebo, Radiohead, Oasis, Portishead 등이 학창 시절 제가 열렬히 사모했던 밴드들이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동아리 선배들의 영향으로 다양한 음악들을 접하면서 장르의 폭을 넓혔습니다. 최근에는 영국의 젊은 뮤지션들 특히, Franz Ferdinand, Snow Patrol, Kaiser Chief, Kate Nash, The hours등 그들의 ‘영국다운’ 개성에 푹 빠져있습니다. 음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해서 특별히 편애하는 장르나 뮤지션은 없지만, 새로운 멜로디를 발견하는 즐거움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주는 언제나 큰 기쁨이기에, 열심히 음악을 찾아 듣고 베이스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인으로서, 더군다나 여성으로서 흔치 않게 외국인들과 밴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동양인이라고, 여성이라고 차별이나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윤주: 동양인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Nottingham 있을 당시 Rubber Biscuit Studio는 5층 건물을 통째로 스튜디오로 개조해서 백여 명의 뮤지션들과 밴드가 모여 음악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건물 전체에 동양인은 저밖에 없었기에 대부분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제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또한, 공연 때는 오히려 다른 밴드보다 더 관심과 주목을 받았기에, 밴드 홍보에 공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여자’이기에 받을 수 있는 연주력과 체력에 대한 편견은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기에 연습, 베이스 사운드와 체력관리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본인이 직접 발견한 영국이라는 나라, 런던과 노팅햄이라는 도시는 어떤 곳인가요?

이윤주: 노팅햄은 학생 수가 월등히 많은 학생 도시이고, 런던과는 다르게 관광객이 아닌 영국인들의 비중이 많기에 진짜 ‘영국 생활’을 배우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제가 보았던 영국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폭이 상대적으로 넓다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먼저 다가갔을 때 쉽게 그들의 생활에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21세 또래 영국 친구들과 Nottingham University 캠퍼스에 앉아 기타를 치며 모두 함께 Led Zeppelin의 노래를 불렀던 날로, 정말 문화적인 신선함이었습니다. 런던은 노팅햄과는 달리 매일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너무 멋진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에 언제나 귀를 활짝 열고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숨어있는 작은 전시회나 페스티발, 공연을 찾아 다니는 즐거움에서부터 세계 최고 문화 예술의 현재를 볼 수 있기에 런던에 있는 하루 하루에 감사합니다.

유로저널: 요즘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젊은분들이 사회에 진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와 관련해 특별히 느끼는 어려움이 있다면?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이 있다면?

이윤주:  제 또래 많은 분들처럼 제게도 좁아진 취업의 문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감 부족으로 자꾸 움츠러드는 자신이기에, 항상 꿈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찾아올 기회를 위해 제 2외국어 공부와 자격증 준비를 하며 대비하고 있고, 뉴스와 신문을 통해 항상 세상을 향해 귀를 열어두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정말 우울하고 외로워질 때면, 친구와 웨스터민스터 다리에서 Abba의 Dancing Queen을 공연 하는 것이 저의 작은 전략입니다.  

유로저널: 앞으로의 계획과 이윤주 님의 꿈은?

이윤주: 가장 가까운 계획은 영국에서 문화 예술 분야의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그 후, MBA 과정을 통해 전문적으로 마케팅과 경영을 공부할 계획입니다. 저의 첫 번째 꿈은 제가 저의 어머니 인생의 해피엔딩이 되는 것이고, 두 번째 꿈은 아프리카입니다. 언젠가 문화 예술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을 때, 제 아프리카행 티켓 비용보다 더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얼마전 영국 Compassion Art라는 비영리 예술 단체의 다큐멘터리와 책, 음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뮤지션, 예술가들이 모여 ‘Creating Freedom From Poverty’라는 슬로건 아래 짧은 시간에 이룬 작은 기적처럼, 저도 언젠가 제 분야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이윤주 님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특히 영국에서 저마다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이윤주: 어느 술자리에서 선배가 네 꿈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침묵할 수 밖에 없었고,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할 말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선배는 제게 “매일 아침 네 꿈에 설레서, 그것을 향해 당당할 수 있는 네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선배는 필름이 끊긴 채, 한 말이었지만요. (웃음) 제게는 너무 큰 충격이 된 말이었고, 그 뒤 매일 곰곰이 그 질문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조금씩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나를 비웃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신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꿈을 찾으러 온 영국에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멋진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멋지게 펼쳐질 이윤주 님의 꿈과 도전에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