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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 작곡가 겸 프로듀서 서엘씨와 함께 최근 발표된 영국 교민 출신 작곡가 겸 프로듀서 서엘의 신보 앨...

Posted in 유럽전체  /  by eknews  /  on Nov 22, 2012 01:38

영국 출신 작곡가 겸 프로듀서 서엘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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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영국 교민 출신 작곡가 겸 프로듀서 서엘의 신보 앨범 타이틀곡 '라뷰' 가 90/00 세대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서엘이 직접 작사 작곡 편곡 연주한 라뷰는 90년대 유행하던 리듬과 편곡 스타일을 착안하여 다채로운 소리로 어우러져 듣는 이의 마음을 희망과 향수로 물들인다는 평과 함께 국내 유일 연령별 선호 음원 순위를 집계하는 배경음악 인기차트 중 '연령별 차트' 25세~30세 부문, 31세~35세 부문과 36세~39세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또한 이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반영하듯 급상승 차트 1위는 물론 전체 인기곡 차트 3000여곡 중에서도 8위에 등극하는 등 보름 넘게 놀라운 결과가 지속되고 있다. 일반 음원사이트와는 달리 배경음악이라는 구분된 개념으로 서비스 되고 있는 온라인 BGM 차트에서 유독 강세를 띠는 점도 개인 미니 홈페이지 서비스와 익숙했던 특정 세대 층의 집중된 관심과 향수로 하여금 '라뷰'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인기를 증명하듯 올레뮤직과 같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감상평 댓글이 270 여개를 돌파 했으며 11월2주차 미국 빌보드 차트 K팝 부문 50위권에 오르는 등 특정 세대와 특정 음원 서비스 영역에서 유달리 뚜렷한 강세를 띠고 있다. 그런 프로듀서 서엘을 만나 이번에 유로저널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유로저널: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엘: 저는 1994년 중학교 2학년 때 영국 버밍엄 근처로 홀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년 후 부모님과 여동생이 영국에 이민을 오게 되면서 95년부터 영국 한인 밀집 거주 지역인 뉴몰든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주영 한국 대사관 식당을 운영하셨고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아낌없는 헌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95년부터 한인 교회에 출석하며 다양한 교민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교민사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빈부귀천 유무 식을 막론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들과의 폭 넓은 교제 권을 누릴 수 있었던 부분이 제 인생에 가장 귀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Chessington Community College에서 중등 과정을 마친 후 Weybridge에 있는 Brookland College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 University of Hertfordshire에서 Music Technology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저를 직업 아티스트로 견인해 주었습니다. 현재 저희 가족은 김용복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런던순복음교회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교회를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 신앙에 대한 간략한 소신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엘: 작년에 한국 3대 포털중 하나인 네이트라는 곳에 저의 짤막한 라이프 스토리가 담긴 글이 올랐습니다. (http://pann.nate.com/talk/313373582) 그 글은 두어 차례 올려졌는데 도합 20만 명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며 잠깐 동안 이슈가 되었고 글의 서두에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유학길에 올랐다’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부분이 저의 신앙의 첫 번째 실체적인 믿음의 능력 체험이 되어 주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당시 출석하던 믿음의 집 (현 선한목자 교회 / 유기성 목사 담임) 중등부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미국 유학생 한 분이 신앙 간증을 해주셨습니다. 

믿는 대로 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반드시 약속의 말씀을 이뤄 주신다는 점이 간증의 요점 이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심각할 정도로 더 넓고 큰 세계에 어릴 때부터 나가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겪으며 식견을 넓히고자 하는 소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만화 전집을 보며 마치 제가 그곳에 살고 있는 듯 한 상상을 매순간 마다 멈추질 않았던 와중에 그 미국 유학생 분의 간증이 마음에 확신으로 와 닿게 되었던 거죠. 바로 그 날 무릎을 꿇고 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미국에서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영국에서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계속 나왔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맹렬히 외쳤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부모님 상황이 넉넉한 환경은 아니였던 터라 모든 사람들이 봤을 때는 불가능한 일로 비춰졌습니다. 바로 그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다니던 교회의 어떤 분께서 사업을 크게 하셨는데 그날 큰 액수의 헌금을 하시려던 직전에 잘 알지도 못하는 저희 어머니에게 대신 그 돈을 건네주라는 희한한 응답을 받으시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신 거죠. 

그리고 그 자금으로 하여금 저는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고 그로인해 가족까지 영국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삶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해주심이 특별하게 느껴졌고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을 낭비 없이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신앙적 사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도하시는 특별한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 믿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요셉과 다윗처럼 하나님 나라의 큰 인물이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 하셨고 그런 어머니의 기도로 인해 저도 언젠가는 좀 더 실질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것이 삶의 최종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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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뮤지션으로서의 지금까지의 활동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
서엘: 어느덧 뮤직 비즈니스계에 몸담은 지 10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수많은 애환과 기쁨들도 가득했지만 무엇보다 감사한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업실에서 혼자 곡을 만들 때면 아무도 모를 희열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바로 그 부분이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2001년에 속된말로 밑바닥 생활을 시작으로 한국 음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에 주된 업무는 청소와 커피 타는 일이 전부 였고 그런 생활을 2년 이상 감당하면서도 첫 앨범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러던 중 2003년에 유준상 씨가 주연한 영화 쇼쇼쇼의 메인 주제곡을 직접 만들고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었고 2004년 1월에 MBC 음악캠프라는 방송에 ‘서엘’ 이란 이름으로 앨범 전곡을 작사 작곡하여 발표한 생애 첫 음반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꿈이 현실이 되었고 매일매일 수많은 인기스타들과 방송 활동을 함께 하게 되며 그들의 삶이나 마인드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죠. 

그때 들은 생각은 화려한 연예인의 삶보다는 소박한 작품자로서의 삶이 20대를 보내기엔 더 적합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다가왔고 결국 1집을 끝으로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가수들과의 작업을 통해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 졌고 결국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일을 하니 나름 고뇌하는 20대 청춘을 보낸 듯합니다. 


유로저널: 서엘: 지금까지 활동 중에서 대표적 경력은 무엇입니까 ?
서엘: 2006년에 직접 총 제작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Mind Bridge’ 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넓힐 수 있었고 당시 참여한 유리상자, 손호형, 김연우 외 다수의 여러 가수들과의 작업은 잊지 못 할 배움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 앨범은 18곡이 수록되어진 CD 두 장의 더블 앨범으로 출시되었고 탤런트 김규리씨와 박재정씨가 주연한 뮤직 비디오의 인기에 힘입어 수록곡 10곡 이상이 인기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등 2006년 12월은 가장 큰 음악적 결실을 맛 본 순간 이였습니다. 그 후 배슬기, 캣츠 등과 같은 신인 가수들의 작업을 맡으며 익숙하지 않던 다른 장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2008년에 직접 콘텐츠 제작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오랜만에 가수로 돌아가 ‘딱’ 이란 곡을 발표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아무런 홍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며 상당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 기쁨과 동시에 2009년 1월에 27사단 이기자 부대에 현역으로 입대 하였습니다.

훈련소 사진.JPG

유로저널: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왜 갑자기 군에 입대를 결정하였나요 ?
서엘: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보낸 7~8년이란 기간 동안에는 뮤지션으로써 일을 하는데 있어 큰 장애나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던 거죠. 

병역의무를 하지 않은 한 회사의 대표가 국내에서 자유롭게 영리 활동을 펼치기에는 몇 가지의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서른 살을 맞이한 1월, 30대의 첫 시작을 강원도 화천에서 엄청난 량의 폭설을 쓸며 자판기 커피 한 잔에 눈물까지 흘릴 뻔 했던 순박한 군인으로 인생의 2막을 시작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 군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신다면 ... ?
서엘: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로서 당연히 감당해야하는 의무이지만 솔직히 서른 살에 입대해서 잘 견딜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잠시, 영국에서 오신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뜨거운 포옹을 끝으로 입영소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강당으로 들어간 순간 줄 똑바로 서라며 여기가 사회인줄 알아? 라는 조교의 벼락같은 고함을 듣자마자 그때부턴 걱정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했건 사회에서의 위치가 어느 정도 이었건 간에 그저 군인은 군인이였던거죠. 군대에서 보낸 2년이란 시간은 제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 모르는 귀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경험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특별히 높은 분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의 삶의 대한 철학이나 가치관을 옆에서 지켜보며 제 가슴 한편에 미완으로 남아 있던 국가적 사명이나 비전에 대한 그림을 조금 더 덧칠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은 그냥 견디면 되고 금방 지나간다는 신념체계를 확립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군대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군복무 후 공백 기간으로 재기는 어렵지 않았습니까 ?
서엘: 말씀 드린 것처럼 군대는 저를 한 단계 더 높여주는 인생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랬기에 다시 사회활동을 잘 이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고 마침 상병을 달던 2010년 초에 입대 전 작업한 가수 빅마마 5집 타이틀곡 하루만이 뒤늦게 발표되어 인기차트 1위를 달성하며 저절로 음악계에 공백을 매꿀 수 있었습니다. 

또 복무기간동안 여러 차례 영국으로 휴가를 다녀 올 수 있었기에 중간 중간 대비책을 간구하며 다시 사회전선으로 나갔을 때의 계획이나 목표를 전략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9월 전역을 두 달 앞두고 힘든 외로운 이민생활의 무게를 오로지 자식을 위하여 감당하시고 이겨내신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연대장님을 모시고 있던 보직이라 사단장님의 도움으로 일사천리로 행정 처리를 마무리 한 후 급히 영국에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이 가득했습니다.

군복무 당시 아버지 면회.JPG 


유로저널: 서엘 에게 아버지란 어떤 분이십니까 ?
서엘: 아버지는 언제나 제겐 꿈이였고 저의 희망 이였습니다. 항상 저를 믿어 주셨고 목숨을 다해 사랑해주셨던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그런 아버지 셨습니다.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는 건 제가 작업한 곡이 처음으로 1위를 했던 2010년 3월에 어린 아이처럼 마냥 기뻐하시던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임종을 앞둔 보름이란 시간동안 군대에서 휴가를 얻게 되어 킹스톤 병원에서 먹고 자고하며 아버지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워낙 천부적으로 유머러스하신 분이라서 힘든 항암 치료를 받으시던 와중에도 제 짧은 머리를 보며 확실히 동안이라며 웃음 주시던 존경스러운 분이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먼저 하나님 곁으로 가셨지만 매일 매일 아버지께서 보여주셨던 헌신적인 사랑과 당신께서 이루시지 못했던 많은 꿈들과 비전을 가슴에 되새김질 하며 그 고귀한 뜻을 잘 받들어 믿음의 명문 가문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1988년도가족사진.jpg

유로저널: 최근 근황을 소개하신다면 ?
서엘 : 군복무와 사회 적응기간을 보낸 3년 동안 중지했던 음원 사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Nation Contents Production 이하 NCP 라는 회사이며 일반 기획사나 엔터테인먼트사와는 다른 초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24년 지기 친구 이수영씨, 10년간 호흡을 맞춰왔던 엔지니어 최남진씨와 함께 시작한 콘텐츠 제작 중심의 회사입니다. 즉 사람을 키우기 보다는 콘텐츠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서 의미를 창출하는 구조입니다. 이에 발맞춰 지난 11월 1일 새롭게 제작하여 발표한 앨범 ‘라뷰’가 예상 밖의 반응을 얻게 되어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저는 항상 90년대 향수에 취해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불고 있는 90년대 콘텐츠 바람을 2006년부터 감지했고 앞에서 언급한 마인드 브릿지 앨범도 90년대 음악들을 재해석한 프로젝트 앨범 이였습니다. 이번에도 90년대 복고 느낌을 가미하여 음원을 제작했고 10대들이 장악하고 있는 많은 음원 사이트에서는 두각을 보이지 않았으나 저와 같은 연령대의 세대가 밀집된 곳에선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기획의도 자체가 모든 이를 타깃으로 하지 않고 특정 세대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에 집중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런 기획이 적중하여 미국 빌보드차트 K팝 부문 50위권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은 이번 앨범의 디자인과 이미지 메이킹을 담당한 뉴몰든에서 거주하며 디자이너로서 활동 중인 권준영씨 와의 협업 이였습니다. 

음악 시장이 디지털 시장으로 재편화 되면서 유형물인 CD와 같은 매체의 출시는 현저히 감소했고 디지털 음원이라는 무형물이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음악과 연관된 재킷 이미지 한 컷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번에 권준영씨의 작품은 저희 제작 프로젝트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고 생각 할 정도로 상당히 감각적 이였습니다.

유로저널: NCP의 향후 계획을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엘: 주기적으로 신선한 콘텐츠를 제작하여 발표할 예정이며 일명 SEOELITE COLLABORATION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서엘 라이트 콜라보레이션 이란 특정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뉴요커, 파리지앵, 솔 라이트라고 부르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서엘의 음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서엘 라이트라는 일종의 시민 그룹으로 묶는 작업입니다. 

NCP가 제작하는 콘텐츠를 아껴주는 사람을 비롯하여 저희가 제작하는 음원에 참여하게 되는 비전문 가수들을 포함하죠. 전문적인 가수가 아니라도 재능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꿈을 모두 이뤄주기엔 방송사 오디션 프로나 기획사의 오디션은 극히 한정적입니다. 또 스타를 키우려 하는 상업적 목적 하에 이루어지는 쇼비지니스는 1등 아니면 의미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일반 회사를 다니건 학생이건 무직자이건 간에 단순히 내 이름이 달린 음원이 나오는 게 꿈인 사람들을 저희 제작 음원에 참여시켜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콘텐츠를 지향하는 게 콘셉트입니다. 

이에 따라 현재 중국에서 금융가에 종사중인 이헌준씨가 첫 번째 주자로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꿈이 가수였지만 그런 꿈을 좆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부분으로 좌절되고 말았던 노래를 잘 하는 대한민국 시민이죠. 그 분이 가수로 참여한 콘텐츠는 이미 70프로 정도 작업이 끝난 상태이며 빠르면 몇 달 안에 Bright Days 라는 이름으로 출시 될 예정입니다.

Bright Days란 저를 주축으로 프로 가수가 아닌 ‘목소리가 좋은’ 일반 분들과 함께 이뤄가는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http://www.seoelite.co.kr 공식 블로그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교민 분들 중에서도 어릴 적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의 스타가 되는 게 꿈이 아닌 그저 내가 부른 노래가 발표만 되도 좋겠다는 바램이 있으신 분들은 기꺼이 환영합니다.

유로저널: 작곡가로서의 요즘 현황은 ?
서엘:예전에 어떤가요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90년대 인기가수 이정봉 씨의 작업에 참여하여 한동안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또한 1월에 개봉 예정인 가족 드라마 영화의 메인타이틀을 작사하고 직접 노래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한지는 몇 달 안 되는데 벌써부터 많은 일들을 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출시되는 NCP 제작 음원들에 총력을 가 할 예정이며 어느 시점부터는 방송 활동과 오프라인 공연을 통해서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걸음을 뗄 것입니다.

유로저널: 영국을 비롯해 유럽 한인 동포들, 그리고 유로저널 독자들께 인사말을 하시면서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인터뷰에 적극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엘: 유럽 한인 대표 동포신문 유로저널을 통해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내 한인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신 유로저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고향 같은 영국 뉴몰든을 생각하면 어릴 적 추억들이 아련히 메마른 가슴을 적셔 줍니다. 

외롭고 말로다 못할 어려움 속에 처한 교민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며 디아스포라로서 흩어져 있는 유럽 전역의 한인들의 애환이 기초가 되어 튼실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이뤄지고 있음을 잊지 마시고 언제나 신명나는 이민생활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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