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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시대, 혁명의 바람이 피 바람으로.. (1)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가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계급사회, 신분 사회에서 자유롭게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권리선언은 인류의 시작이래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리고 절대 왕정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시민에게 주인 된 권리가 있다는 발상은 어떤 역사적 문헌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귀한 신분의 족속들 가운데 대표를 뽑아 왕을 하기도 하고 황제가 되기도 했는데 일반 시민들 가운데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새로운 발상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고 프랑스에 공화국이 들어 서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제도가 자리 잡기 위하여는 혁명에 뒤따르는 피의 숙청과 권력간의 투쟁으로 엄청난 학살이 이어진다.
혁명기에 정치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손에 목숨을 쥐어 주고 시작하는 모험이다.
노선이 다른 정적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모두 단두대에서 처단하다 보니 남을 수 있는 인간이 없다. 종교적으로 누구나 서로는 서로에게 이단이라더니 혁명기의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다른 정치적 생명체는 다 타도의 대상이고 단두대에 올려야 될 적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하여 사람을 죽이고, 사회 정의를 위하여 죽이고,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죽이고,신분이 높아서 죽이고, 재물이 많다고 죽이고, 지식인이라고 죽이고, 예술가라고 죽이고 나중에는 죽이기 위하여 죽이는 처절한 공포의 시절을 보내야 했다.
혁명이 요구하던 자유와 평등의 바람은 피 바람으로 바뀌고 일상의 평안과 행복에 대한 일반 민중의 소박한 바람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혁명 세력에 의하여 의식화의 바람으로 변질된다.
혁명의 시대에는 죽은 사람이나 죽인 사람이나 자기편은 순교자였고 상대편은 살인자였다.

정의의 이름으로 저지른 살인 그리고 순교


1013-테오1.png
샤를로뜨 꼬르데의 초상화,1793 장 자끄 오에르(Jean-Jacques Hauer1751-1829)

샤를롯뜨 꼬르데Charlotte Corday 1768-1793)


이 여인은 역사에 남겨질 이유가 없는 여인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흔하고 흔한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고
살인 현장에서 잡혀 4일만에 꽁꼬르드 광장에서 단두대 위에서 처형당했다.
살인 사건은 마감되었고 민중 혁명은 도도히 이어져 갔다.
하지만 살해 당한 주인공이 혁명의 주동자 중에 우두머리였고 그의 이름이 “마라(”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욱이 사건 이후에 “마라”를 추종하던 화가 “다비드”가 마라의 죽음을 그렸을 때 사람들은 범인의 신상도 캐게 된다. 세상 어디를 가나 호기심 많은 할일 없는 자들은 넘쳐 흐른다.
물론 그 할일 없고 호기심 많은 자들 가운데는 필자도 숨어 있다.
왜 그림에 주인공은 목욕탕에 갇혀 있었는지, 왜 목욕탕에 판을 올려 놓고 글을 쓰며 그 곳에 살림을 차렸는지, 손에 들고 있는 편지는 뭐라고 써 있는지, 과연 누가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는지 등등 의문은 끝이 없다.  범인이 잡혔다면 범인의 신상 털기에 들어 간다.
아마 « 샤를롯뜨 꼬르데» 여인은 온건파인 지롱뎅의 지지자였던 것 같다. 마라를 살해한 이 여인은 혁명의 테러범들을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혁명의 이름으로 백성들, 민중들의 이름을 내걸고 집단 학살극을 더 이상 보아 줄 수가 없었다. 여인은 정의를 실현하기로 결심한다. 여인이 볼 때 혁명의 적들은 사방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공포의 정치를 주도하는 자들을 손보기 위하여 시골에서 은밀하게 상경한다
노르망디의 처녀 샤를로트 꼬르데는 나이 스물 다섯이 될 때까지 고향을 떠나 본적이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빠리 외출은 누군가를 살인하기 위해서였다.
혁명의 영웅 « 백성의 친구 » 마라에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빠리 시내에서 칼을 사고 마라의 집에 도착해서도 두 번이나 저지 당한다. 세 번째 시도에서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마라가 욕실로 들어오게 한다. 욕실의 구조에서 보는 것처럼 피부병으로 고통당하며 유황 물에 몸을 담가 치료 받으면서도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호위병을 통과하여 마라와 꼬르데 여인은 한참을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논쟁이 잘못 전개되어 준비된 칼로 마라의 폐를 찌르고 심장을 찔러 피가 다 빠져 사망에 이르게 한다.
여인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명상과 기도 생활을 하며 노르망디 깡의 여성 수도원에서 자랐다. 혁명이 범죄를 저지르고 프랑스 교회를 문닫고 성직자들에 대하여 취하는 일련의 새로운 조치에 대한 반발심과 신의 권리를 가진 왕의 목을 치고 전국에 단두대가 설치되어 선량한 시민들이, 이웃들이 창 밖에서 매일 단두대에 목이 떨어 지는 광경을 보다 못해 일개 여인이 혁명의 주동자 마라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 마라 »는 자유와 평등의 이름을 걸고 시민의 해방을 위하여 일하는 혁명 주동자의 이름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여인은 당당하였다. 죄에 대한 뉘우침이 있을 수 없다 정의의 칼을 사용한 여인은 자신의 소신을 이루어냈다. 자유의 이름으로 범죄하는 자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였다는 것을 당당히 진술하였다. 법정의 검사 후끼에 뗑빌도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눈을 흰띠로 가리며 단두대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라는 상송(Sanson)의 말에 호기심 많은 처녀는 «  나의 눈을 가리지 말라,마지막 칼날이 떨어 지는 멋진 장면을 감상할 수 있도록 » .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한확신과 새로운 문명에 대한 호기심이 흘러 넘쳤다.
혁명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마라(Marat)가 혁명의 영웅이고 공화국의 상징이었다면 반 혁명 분자들이나 교회의 문이 닫혀 갈데 없는 카톨릭 성도들에게 샤를로뜨 꼬르데여인은 혁명과 폭력의 심장에 칼을 꽂은 성녀였고 순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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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다비드의 자화상( Autoportrait, Jacques Louis David1748-1825) 1794년 81x64 cm 루브르

공포정치의 주동자 로베스삐에르의 친구로 공포의 시대가 마감된 연후에 감옥에 갇혀 단두대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영정으로 사용될 자화상이다.
공포정치 시대 로베스삐에르편에서 서서 정치적인 과격파로 행동하였다. 혁명 당시 루브르 왕궁을 개조하여 시민들을 위한 미술관으로 만드는 일을 지휘하였다. 공포정치 후 자유의 이름으로 범죄한 로베스삐에르의 친구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때 기적적으로 살아 남는다. 이 후로는 자신의 본업인 화가로 살면서 어떤 경우에도 결코 붓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상반신을 비스듬하게 돌리고 얼굴은 마주보고 있는 전형적인 초상화의 형태다. 갈색 겉옷은 넓은 밤색 옷깃을 드리우며 하얀 셔츠에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륙상부르 궁전의 개조된 감옥 실내의 추위가 느껴진다. 한 손에는 자신의 직업을 보여 주는 팔렛트를 오른 손에 붓은 왼손에 쥐고 있다. 실제는 오른손 잡이였다는데 그림으로만 보면 왼손잡이로 보여 진다.
그림은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결투로 얻은 부상으로 부어 있는 왼쪽 얼굴의 종양도 오른쪽 얼굴에 그려져 있다. 작품을 그리는 화가는 거울을 보고 반대편을 그린다. 거울로 보면 모든 것이 반대로 보여 진다.
작품을 그릴 때의 나이가 46세인데 작품에는 청년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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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프랑스와 뎅베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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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초상화 (Portrait de Jean-Paul Marat 1743-1793) 조젭 보즈(Joseph Boze (1793), 까르나발레 빠리시 역사 박물관 소장

뇌샤텔 공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기자로 의사로 다양한 인생역정을 보낸다. 혁명의 와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인민의 친구”를 발행하였고 마라는 혁명의 주모자로 그리고 산악당의 거두로 활동하다 샤를롯트 꼬르데 여인의 칼에 맞아 1793년7월13일 자택에서 숨진다. 프랑스 혁명의 순교자로,자유의 순교자로 잠시 위인들의 묘지인 빵떼옹에 묻혔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 졌다 실종되었다.

자유의 이름으로 만행을 저지르는 혁명의 주동자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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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죽음(La Mort de Marat 1793 유화 165 X 128 cm 벨기에 왕실 박물관 소장

 프랑스 대혁명 당시 1793년7월13일 자택에서 샤를롯트 꼬르데 여인에게 살해 당했다. 화가 다비드(1748-1825)는 개인적으로 마라를 알고 있었다. 죽기 바로 전날도 보았다. 그 날은 목욕탕에서 살해 당하였는데 피부를 치료하기 위하여 목욕탕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꽁방숑의 요구로 의원 기로 (Guiraut) 는 화가 다비드에게 동지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한다. ,
그림은 어두움이 깔린 짙은 갈색 바탕에서 마라의 몸이 고통스럽게 나오는 장면을 그렸다. 하얀 터번으로 둘린 머리는 고통스럽게 옆으로 떨어졌다 목욕탕은 판자로 일부 덮여 있고 그위에 녹색 천을 깔았다. 이곳은 마라의 또 다른 서재다. 늘어진 오른 팔에는 붓을 들고 있다. 왼손에는 글이 적힌 종이 한 장 들고 있다. 목욕탕에는 흰 천이 습관처럼 깔려 있고 흰 천의 일부가 밖으로 나와있다. 이 흰 천은 칼에 찔린 몸에서 나오는 피를 받아 내고 있다. 바닥에는 피 묻은 하얀 손잡이 달린 칼이 떨어져 있다. 욕탕 옆에는 작은 나무통이 놓여졌다. 그 위에 잉크병과 또 다른 붓이 있고 작은 종이가 모서리에 걸려 있다. 그 아래 쪽으로 나무통에 쓰여진 « 마라에게 ,다비드À Marat, David» 라는 글씨는 다비드가 « 마라 »에게 바치는 헌사다.
당시에 « 백성들의 친구 »로 불렸던 « 마라 »의 살해 사건은 혁명지지자들에게는 새로운 헌법에 대한 테러로 간주되었다. 마라는 꽁방숑을 주도하는 산악당의 대표적 급진적 인물이었다. 산악당은 이 당시 지롱뎅을 다 제거한 상태였다..
같은 정치적인 성향의 다비드는 자유의 순교자로 마라를 표현한다. « 진정한 애국자는 열정으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동시대 시민들을 밝혀 주어야 한다. 영웅적이며 도덕적인 숭고한 행위를 보여야 한다 -다비드-
 « 1793년7월13일 마리 안느 샤를롯트 꼬르데가 시민 마라에게, 나는 당신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충분히 불행한 여인입니다
-마라의 손에 쥐어진 샤를로트 꼬르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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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통하여 화가 다비드는 정치적 성향은 왕의 죽음에 찬성표를 던진 로베스삐에르의 측근으로 산악당의 대열에 서 있었다.
목욕탕에 갇힌 이상화된 영웅의 모습은 시민들을 위하여 희생당하는 공화주의자의 거룩한 죽음을 묘사하였다. 편안하고 조용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은 순교자의 모습을 그렸다. 이 죽음의 모습은 혁명이 문닫은 로마교회에서 자주 보여 주던 십자가에 내려져 무덤에 놓여 지는 세상의 일을 마치고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구세주 예수의 상과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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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복사본이 있는 이 작품은 순교자의 모습을 보다 많은 사람드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루브르musée du Louvre에 소 장된 지오아치노 세랑줴리의 복사작품, 제롬 마르텡 랑글르오 Jérome-Martin Langlois 가 복사한 베르싸이 왕궁Château de Versailles 소장품 과 디종 미술관m usée des beaux-arts de Dijon 렝스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Reims에 소장품들이있다.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에서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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