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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건축 : 영혼을 담을 그릇 만들기 인간과 자연 사이에 건축이 있었다 프랑스 피레네에서 그리고 지중해 내...

Posted in 테오의 프랑스이야기  /  by admin_2017  /  on Apr 20, 20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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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건축 : 영혼을 담을 그릇 만들기

인간과 자연 사이에 건축이 있었다
프랑스 피레네에서 그리고 지중해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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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동행
그림자와 동행하다 보면 빛과 함께 걷는다.
그림자와 걷다 보면 빛가운데 걷는다
그림자가 묻는다
빛은 찾았나…


피레네 프랑스의 쌩 마르땡 수도원 다음 일정은 계곡의 평원에 위치한 쌩 미쉘 수도원에 도착하면 바로 눈 앞에 신령한 까니구 산이 마주하고 있다.
점심 시간 전 도착이라고 미리 예약을 했어도 두 시에 다시 오라고 명랑하게 말하는 수도원 집사의 말에 발걸음을 다시 돌려 프라드 마을로, 이 곳 카탈로니아 말로는 프라다라고 부른다.
프라다는 옥시따니 지방의 도시로 지중해가 가깝고 피레네 스키 휴양지의 지척에 위치하고 있다. 안도라 공국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지만 1월 피레네 산맥이 움직이면서 도로가 막혀 한참을 돌아왔다.
두 시에 태양 빛을 짊어 지고 쌩 미쉘 수도원 도착 입구 관람료 지불하고 웅장하고 질서와 조화로 옛 수도사들의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현실처럼 들려오는 클로이스터에 들어선다.
이 열주 기둥들이 늘어선 갤러리를 지나 로마네스크 양식의 쌩 미쉘 교회에 들어선다.



퀴사의 쌩 미쉘 수도원 L'abbaye de Saint-Michel de Cu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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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구Canigou 발 아래 위치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프랑스 옥시따니région Occitanie의 피레네 오리앙딸의 꼬달레Codalet 꼬뮨에 위치하고 있다.


신부좌 교회는 일 부분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그 클로이스터는 12세기루씨용 지역 로마네스크 조각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까니구 산 기슭 평원에 세워진 수도원은 878년 가을 갑작스러운 테트 Têt 강의 범람으로 물에 흽쓸려 사라져 갔다.
생존한 35명의 수도사들은 이웃 쿠사 Cuxa 의 쌩 마르땡 수도원으로 피난갔다. 기존에 있던 쌩 제르맹 수도사들과 합쳐 879년 수도원 공동체가 만들어 지고 쌩 제르맹의 프로타시우스가 첫 번째 신부가 된다. 
936년 당시 기록에 쿠사에는 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작은 채플이 있었다.

938년 쉬니후레드 백작은 회와 돌과 나무로 교회를 건축하였다.  백작은 967년 이 곳 교회에 묻혔다.
이 교회는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교황청과 왕국으로부터 자율성을 인정 받고 성장한 수도원은 카롤링거 왕조와 관계를 끊는다.

965년 가렝 Garin (Warinus) 신부 시절 끌뤼니의 정신에 따라 수도원 개혁을 시작하였다. 이미 남부 다섯 개 중요한 수도원의 머리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세속의 권력을 버리고 올리바 카브레타 comte Oliba Cabreta 백작의 아들 올리바 드 베살루Oliba de Besalù는 신부가 되고 주교가 되며 수도원의 삶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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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년 리폴Ripoll의 신부로 선출되고 쿠사 Cuxa 의 신부로 선임된 올리바 드 베살루는 1017년 비크Vic의 주교가 된다.

당대 교회 최고의 건축가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건축의 올리바는 교회 앞에 두 개의 채플을 짓고 클로이스터의 갤러리를 통하여 쌩 미쉘 교회와 연결하였다.

세 개의 압시드를 포함하여 측랑에 볼트를 올리고 종탑을 건축하였다.
올리바는 로마를 두 번 방문하고 쿠사에서 1046년 묻혔다.
12세기 초 조각된 기둥 머리와 함께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형태의 클로이스터를, 교회안에 대리석 트리뷴을 세웠다 건축하였다.
중세 열 다섯 개 교구에 걸쳐 교회 사법권한으로 쥬리딕숑을 가진 수도원은 아주 대단한 규모의 토지를 소유하며 커다란 부를 누렸다.


신부좌 교회 L'église abbati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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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 그리고 클로이스터 평면도


남쪽 종탑
퀴사의 쌩 미쉘 신부좌 교회는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으로부터 남부 로마네스크 건축까지의 흐름을 그리고 11세기 중엽까지의 확장 공사의 흔적을 기록으로 찾아볼 수 있다. 

카롤링거 왕조와 비지고트 의 영향을 받은 초기 로마네스크의 도면에는 네이브와  측랑 네이간의 공간을 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단지 벽에 구멍을 내어 아케이드로 통하게 한 측랑이 있었다.
중앙 부위는 남쪽 높은 부분에 창문을 통하여 그리고 서쪽 문 위의 거대한 창을 통하여 그리고 합각 머리 pignon 위의 작은 공기통으로 빛이 들어왔다.

종탑
1046년 이전에 올리바 신부가 세운 것으로 롬바르디아 양식으로 트란셉트의 양쪽 끝에 33 m 높이로 종탑이 올라갔다.
북쪽 종탑에는 종과 시계가 있었다. 이 탑은 1838년 겨울 폭풍우에 무너졌고 다시 건축되지 않았다.
지금은 롬바르르디아 양식의 띠로 장식한 남 쪽 종탑만 남아 있다.
4층의 종탑은 각각 두 개의 창으로 열려있다.
11세기 퀴사의 수도원은 아직 상징에 대한 생각이나
조각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단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하고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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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중앙 네이브Nef de l'égl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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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트란셉트 네이브 모퉁이 Angle nef-transept S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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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측면 네이브 Collatéral S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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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트 동쪽 통로 Passage Est de la crypte




마리아 채플 Chapelle de la Vie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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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년 교회 후진의 작은 채플 absidiole 이 부서지고 장방형 채플들이 새로 지은 커다란 마리아 채플로 이동 통로가 되는 회랑으로 바뀌게 된다.  

20세기 중앙 네이브는 원래는 단순한 지붕이었던 것을 14세기의 첨두 아치의 도면대로 복원한다.
채플의 성가대석은 주로 나무로 조각한 예수와 나무로 된 성직자석으로 장식된다. 로마테스크 양식의 작은 후진 채플에는 13세기 채색된 어린 예수와 마리아가 서 있다.

클르와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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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스터 전경과 수도원 교회 그리고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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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스터 Le cloître 열주 회랑이 있는 수도원 정원

로마네스크 양식의 거대한 클르와트는 12세기 루씨용 조각의 출생증명서로 쿠사의 쌩 미쉘 그레그와르 신부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한다. 1130년부터 1140년까지 10년 간 대리석으로 조각하고 가다듬어 만든 당대 최고의 예술품이다.

회랑은 63개의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다. 받침 기둥과 원주 기둥은 건축의 안정성을 강화 시켜 주고 있다. 혁명으로 버려진 수도원 건축물은 서서히 망가졌고 1841년 37개의 기둥머리 와 빌후랑쉬 마을에서 캐온 대리석으로 만든 가운데 거대한 수반만 남아 있었다.

오늘 날 이 작품은 필라델피아 뮤지움에 가면 볼 수 있다.
1907년 뉴욕에서 쿠사의 클로이스터의 대 부분과 쌩 길렘 르 데제르Saint-Guilhem-le-Désert,와 본느퐁Bonnefont 그리고 트리Trie의 클로이스터가 팔려 나갔다.

클로이스터는 1779년 도면에 따라 1950년 대 복원되었다. 남쪽과 동쪽 갤러리는 나무 샤르빵트로 덮였고 남쪽이 회랑은 완전히 다시 복원한 작품이고 나머지는 일부만 재 구성했다.
서쪽 회랑 아케이드와 동쪽의 아모르스는 다시 올려졌다.
다른 부분들은 다시 찾아 지는 대로 제자리에 배치하고 있다.
기둥머리 와 원주 기둥들이 원본이라면 석가래와 기둥 위의 아취는 최근 복원에 맞추어 다시 돌을 자르고있다.

<다음호에 계속>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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