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프랑스이야기

중세 수도원 기행 - 쎄레와 꼴리우르

by 편집부 posted May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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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수도원 기행
쎄레와 꼴리우르


도대체 나그네는 무엇을 좋아하니?
나는 구름을 좋아하지 저기 구름, 지나가는 구름
신비하고 신기한 구름….    
 – 샤를르 보들레르 시 이방인 –


수도원 찾아 가는 길에서 내면의 평안함 찾다가 영혼의 길 찾기 하다가 길가에서 한눈 팔다가 미술관에서 실족하였다. 

피레네 산 속에 세워진 현대 미술관은 좀 특이하다. 교회 이야기가 아니고 중세의 이분법 이야기도 아니고 20세기 유럽의 전위 예술가들이 몰려 있다. 어쩌면 저 예술가들은 수도사들보다 더 최전방에서 우리들의 영혼을 위하여 싸우다가 먼저 간 수도사들의 전위부대원들 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쎄레 Céret 

프랑스 남부 피레네 오리앙탈 도청 관할로 쎄레탕 Cérétans 으로 부르는 주민 7600명이 거주한다. 
쎄레 현대 미술관으로 명성이 높고, 체리 나무가 열매를 맺고 2월 방문 시에는 미모사가 만발하여 멀리 피레네 하얀 산의 정상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향과 색의 향연을 보여주었다.  814년 자료에 처음 언급된 마을로 1659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조약인 피레네 조약Traité des Pyrénées 협상 장소였다.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와 아라곤의 훼르난도의 결혼 후 두 왕국의 결합이 이어진다. 쎄레는 스페인왕국으로 들어간다. 이 때 아홉 줄기 분수대 위에 스페인의 문장 사자가 스페인을 바라보며 올라갔다. 

1581년 까퓨쌩 수도원이, 1648년 칼멜 수도원이 세워졌다. 오늘 날 수도원 자리에 쎄레미술관과 시청사 그리고 관광 안내 사무소가 자리잡는다. 까퓨쌩과 칼멜 두 수도원의 경쟁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두 건축물의 파괴로 막을 내렸다. 

1640년 카탈로니아의 대표들과 루이 13세를 대신한 리쉴리외 Richelieu 추기경이 이 도시에서 동맹을 맺는다. 1641년 프랑스-스페인 전쟁 가운데 이 도시는 특별한 권리를 양측으로부터 받아낸다. 두 나라가 협상을 하면서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프랑스 땅으로 정해졌다. 스페인의 사자가 프랑스의 수탉이 되었다. 


쎄레 현대 예술 박물관 Le musée d'Art moderne de Céret 

박물관은 1950년 삐에르 브륀느Pierre Brune 와 프랑크 뷔르티 하비란드et Frank Burty Haviland 가시작했다. 근자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 전국에서 41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1910년 화가 하비랜드Frank Burty Haviland와 카탈로니아 조각가 마놀로 휘게Manolo Hugué,작고가 데오다 Déodat de Séverac décident는 이 곳 쎄레에 정착하게 된다. 입체파 활동의 전성기 1911 -1913년 몽마르트르의 친구들을 이 곳에 초대한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죠흐쥬 브라끄Georges Braque, 오귀스트 에르벵Auguste Herbin, 시인 막스 자콥Max Jacob, 후안 그리 Juan Gris,장 마르샹 Jean Marchand 이 이곳에 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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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레 마을 중심가에 자리 잡은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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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샤임 수띤Chaïm Soutine의 초상화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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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코리나 페레 로메우 초상화, 1902, 유화, 60 x 50 cm. 


Auguste Herbin, Manolo, ou Juan Gris 등 몇 몇 친구들은 일차 대전 후에도 찾아 오고 빠리 몽빠르나스의 새로운 예술가들도 이 곳에 합류하게 된다. 세 번째는 2차 대전 중 나치의 독재를 피하여 찾아 드는 친구들도 있었다. 트리스탄 자라 Tristan Tzara, 장 뒤뷔훼 Jean Dubuffet와 같은 친구들은 이곳에 완전히 정착하였다. 

코리나 페레 로메우Corina Pere Romeu는 1897년부터1903년까지 바르셀로나 문화 예술의 본거지, 카바레 « 엘 콰트레 갯츠Els Quatre Gats »의 주인이었다. , 이 카바레에서 피카소는 마놀로와 우정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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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해골과 물병이 있는 정물, 1943년, 유화, 45,9 x 5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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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임 수띤Chaim Soutine - 쎄레의 풍경Vue sur Ceret, 옛 도심 la vieille ville .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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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 방랑객들 1968년, 전쟁 La Guerre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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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티드 마이욜 Aristide Maillol-




그림자에서 빛으로 가는 길 
그리고 발견한 색깔의 폭발 그 향연

그림자 동행 

수도원을 짊어지고 내려 가다가
태양을 지고 내려 가다가
땀 흘리며 지친 나를 이끌어 준 
친구는 나의 그림자 

앞길을 끌어 주는 이가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평생을 성실하게 따라다니면서
태양을 등에 지고 힘들 때
길이 멀지 않다고
따뜻한 햇살로 등을 밀며
자기 노동 시간 끝나 '퇴근할거라고
그만 가자고 서두른다.

괜찮아 태양이가 퇴근하면
별들이 달님하고 나와 밝혀줄거야 
격리 중 동행하던 태양도 달도 별도 고맙고
항상 곁에서 스토커처럼 동행하는
나의 그림자가 정말 고맙다. 

사람이 그림자 거두는 날 거기는
그림자 없는 광명의 화엄 세상일거다
화려하게 빛을 입고 사는 천국일거다.       

–피레네에서 2020년 2월-


꼴리우르Collioure 

수도원 시행 중 화가들의 마을 꼴리우르 항구 마을에서 야수파 fauvisme 로 불리우는 마을의 역사를 만든 수많은 화가들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세기 초반의 앙리 마띠스 Henri Matisse, 앙드레 드렝André Derain, 루이 발타Louis Valtat, 에띠엔 테뤼Etienne Terrus와 같은 야수들은 피레네 길과 지중해를 오가며 색깔을 폭발시켰다. 
<다음호에 계속..>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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