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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20.06.01 20:00

쎄레와 꼴리우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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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 이야기

중세 수도원 기행
쎄레와 꼴리우르 (2)


꼴리우르Collioure 

수도원 시행 중 화가들의 마을 꼴리우르 항구 마을에서 야수파 fauvisme 로 불리우는 마을의 역사를 만든 수많은 화가들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세기 초반의 앙리 마띠스 Henri Matisse, 앙드레 드렝André Derain, 루이 발타Louis Valtat, 에띠엔 테뤼Etienne Terrus와 같은 야수들은 피레네 길과 지중해를 오가며 색깔을 폭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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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렝 - 꼴리우르 항구 1905년

피레네 오리앙탈 도의 지중해 항구로 난 프랑스 꼬뮨이다. 꼴리우랑크 Colliourencs 라고 부르는 주민 2427명(2017년)이 살고 있다. 

지리적으로 그 문화재로 명성을 얻었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유혹한 매력적인 마을이다. 

프랑스 최 남단 스페인 국경과 26 km 떨어진 꼴리우르는 바위로 둘러싸인 해안으로 독특하고 보호 받는 환경을 갖고 있다. 피레네 산맥이 지중해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작은 항구로 지금도 어부들이 멸치 잡이와 고기 잡이를 하고 있다. 겨울이 온난하고 여름이 길어 년 중 바캉스 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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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렝, 1905년

꼴리우르 성은 673년 기록에 언급되었다. 비지고트 시절 전략적이고 상업 항구로 이용하였다. 
이 후 성과 마을은 루씨용 백작등의 소유로 넘어갔다. 1172년부터 1276년까지는 아라곤의 왕들이 그리고 1343년까지 마요르카의 왕들이 그리고 다시 아라곤의 지배로 넘어갔다. 

성채는 템플의 기사단들의 집터에 1242년부터 1280년까지 다시 지어 왕실의 거주지가 되었다. 꼴리우르는 루씨옹의 첫 번째 항구였다. 
아라곤 왕국 시절 상업항으로 직물, 기름, 포도주, 아몬드, 호두, 가축, 가죽, 철을 수출하였고 향신료, 파스텔, 붉은 물감, 황금, 은, 노예를 수입하였다. 

아라곤의 훼르디난도 5세와 카스티야의 이자벨라 1세, 카톨릭의 왕들의 정치적 결혼으로 꼴리우르와 루시용은 스페인 왕정의 치하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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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르디난도와 이사벨라

1475년부터 1481년까지 프랑스 왕 루이 11세 Louis XI가 꼴리우르 요새를 건립케 하였고 이름을 쌩 미쉘이라 불렀다. 후계자인 샤흘르 8세 Charles VIII는 루시용을 카톨릭의 훼르디난도에게 돌려준다. 

그의 후계자인 카를로스 5세는 꼴리우르 만과 방드르 항구 Port-Vendres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을의 요새화를 강화하며 쌩 엘므 요새 Fort Saint-Elme 건축을 결정하였다.

1642년 루이13세 군대가 도시를 점령하고 루이14세Louis XIV 치하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공식적으로 프랑스 왕국으로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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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데 장쥬 성당 L'église Notre Dame des Anges

18세기 세워진 꼴리우르 노트르담 데 장쥬 성당은 1672년 보방Vauban 대원수의 명으로 부서진 마을 중심의 쌩뜨 마리 교회에 이어 지금의 자리로 몇 백미터 마을은 이전하게 되면서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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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열린 창문,꼴리우르, 1905년

전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화가들이 이젤을 세우고 화폭에 담아간 교회로 이 지방에서 가장 많이알려진 교회가 되었다. 꼴리우르의 상징이 되었고 모든 기념품에 그림으로 담기는 아이콘이다. 

이 교회는 단일 네이브를 가진 남부 고딕 양식으로 지었다. 종탑의 돔은 아주 개성이 있게 1810년 올렸다. 이 종탑은 항구로 들어오려는 뱃사람들의 등대 역할을 했다. 네이브에 채플들이 붙고 뒤로 반원형 압시드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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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리우르 현대 미술관 Musée d'Art Moderne de Collioure

꼴리우르 현대 미술관 은 이 역사의 연장선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1934년  러시아 화가 장 페스케Jean Peské가 당대 화가들의 기부작품으로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에는 현대와 동시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색깔의 해방"

지중해의 작은 항구 마을 꼴리우르에서 눈부시게 강렬한 색깔로 그리는 회화의 경향이 태어났다.

야수파라고 부르는 화가들은 "색깔을 해방 시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경향의 주동자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와 앙드레 드렝André Derain이었다. 그리고 많은 화가들이 이 경향에 합류하였다. 모리스 드 블라멩크 Maurice de Vlaminck, 오귀스트 샤보 Auguste Chabaud, 조르쥬 브라끄 Georges Braque, 에띠엔 테류 Etienne Terrus, 아리스티드 마이욜 Aristide Maillol 그리고 다니엘 드 몽프레드 Daniel de Monfreid . 

로망주의자 들리크르와가 색깔을 우리들의 뇌안에서 폭발시키고 있었다면 야수들은 화폭에 팔렛트를 집어 던졌다. 그들은 색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야수들은 시대의 협약과 단절하며 감정과 색깔을 절정으로 끌어 올리며 창작의 세계를 해방시킨다. 1905년 빠리에서 열린 가을 살롱전에 꼴리우르에서 작업한 화폭들을 가지고 앙리 마티스와 앙드레 드렝이 출현했다. 전시실 하나가 이 경향의 예술품에 배정되었다. 작품들은 격렬한 비평을 받았고 예술적인 충격을 유발하였다. 

전시실 한 가운데 조각가 마르끄의 작품으로 플로렌스의 영감을 받은 아기 천사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비평가 르이 복셀은 "순전한 색조의 광란의 연회" 한 가운데 길을 잃은 아기 천사에, "야수들(Fauves) 한 가운데 도나텔로"를 주목하였다. 이 마지막 표현이 야수파의 예술적 경향을 지칭하고 있다. 극한까지 밀어 부친 색깔의 탐구….

1905년 엥데팡당 살롱전에 모리스 블라밍크는 자신들의 야수파 회화를 빈센트의 사후 후원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끌어 들였다.

« 야수파는 흉내내는 색깔을 아주 멀리 하고 보다 강항 반작용으로 얻은 순전한 색깔로부터 다가온거다.»

« 색깔은 특히, 아마 보다 더 데상보다 하나의 해방이다. »
-앙리 마티스 -

야수들이 우리에서 나와 일 이년 간 자유롭게 살다가 야수들은 각자 자기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수도원길로 돌아가야 한다. 
-2020년 5월 코로나로 격리된 날, 사계절 옥탑방에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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