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 美 외교電文 25만건 공개 파문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는 28일 미국 국무부가 과거 3년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270개 해외공관과 주고받은 외교 전문(電文) 25만2287건을 공개해 전세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위키리크스 웹사이트는 이 외교전문을 공개하기 직전 대량의 분산서비스거부인 디도스 공격을 받았으나 서브 웹사이트 (http://cablegate.wikileaks.org)를 통해 전문 공개를 강행했다.
외교 전문은 통상 수십 년간 기밀로 분류돼 비공개가 관례지만 이처럼 무더기로 공개됨에 따라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개 문서엔 한국인들에게조차 알려져 있지 않는 한반도 관련 내용(본보 4 면에 게재)도 상당수 포함됐다.
줄리언 어샌지 위키리크스 대표는 미국 경제전문지포브스와 인터뷰에서 "내년 초 미국의 한 대형은행과 관련한 수 만건의 문서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샌지 대표는 "이 문서가 은행 경영진들의 행동 방식에 대해 진실되고 대표적인 통찰력을 주게 될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조사와 개혁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문서를 "'부패의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위키리스크가 현재 확보하고 있는 미공개 자료 절반 이상이 민간 기업과 관련된 점도 밝혔다. 그는 이 자료들이 제약회사와 금융회사, 에너지 기업 등에 대한 것으로 이들에게 불리한 자료라고 경고했다.
◆'세계 외교가의 9·11테러'로 규정하면서 맴비난
이번 폭로에 대해 당사자인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은 '세계 외교가의 9·11 테러'라면서 글로벌 외교 위기론까지 거론하면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국인 미국의 제이콥 루 백악관 예산국장은 각 부처차원의 기밀 보호관련 실태파악을 지시하면서 "정보유출은 용인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도 기밀 유출은 "전 세계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분별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폭로가 무고한 생명을 위협하고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 '국가들 간 신뢰관계도 훼손되는 등 외교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다른 일부에서는 미 국무부가 해외의 자국 외교관들에게 통상적인 외교활동으로 간주되는 범위를 벗어난, 스파이 활동과 유사한 첩보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미국 외교관들이 통상적인 외교활동을 벗어나는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비춰지는 점을 의식한 듯 "위키리크스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의 외교관은 외교관일뿐 정보요원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미국의 외교관은 정책과 행동을 형성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모든 나라의 외교관들도 이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 위키리크스,정부와 기업 비리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정부와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를 고발한다는 목적으로 2006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설립된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다.
미군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운영세칙, 영국 인종차별 정당의 당원 명부, 아프리카 연안의 유독물질 투기 관련 메모 등을 일반에 공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4월 미군 아파치 헬기가 외국인 기자 등 민간인 12명을 사살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충격을 던졌으며 이어 7월에는 미군 기밀문서 7만7천건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는 기밀 공개시 법적 보호를 받기 용이한 스웨덴과 벨기에 등 몇몇 국가에서 전임 자원봉사자 12명으로 이뤄진 핵심 그룹이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암호화와 프로그래밍, 보도자료 작성 등에 대한 조언자가 전 세계에 걸쳐 1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 암호 프로그램을 이용해 정보 제공자의 신상을 익명으로 철저히 보호한다고 강조하면서 기밀정보를 모은다.
호주 국적의 해커 줄리언 어샌지(39)가 창립을 주도했으며 스웨덴 여성 2 명에 게 성폭행 혐의로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다.
◆中에 북한 미사일 방출 차단 요청 거부 당해
미 국무부는 2007년 11월 3일 주중 대사관에 보낸 기밀 외교전문에서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량살상무기(WMD) 이전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업용 비행기를 이용해 베이징(北京)을 경유해 이란으로 갈 예정이었던 북한 탄도미사일 및 화학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부품과 기술이전에 대해 이란 핵폭탄 제조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며 중국 정부에 차단을 촉구했지만, 중국은 이를 막지 않았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 2월 중국에 이란이 중국기업으로부터 탄도미사일 부품을 사들였는지 여부를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이번 외교전문 공개에서 나타났다.
이로써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이후에도 이란과 시리아, 미얀마 등지에 연 1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중국을 통해 몰래 수출해온 것으로 추정한 유엔 전문가 패널의 보고서에 힘이 실리게 됨에따라 중국은 안보리 대북 결의안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전문은 또 북한과 이란이 오랜 기간 ‘에어도쿄’와 ‘이란에어’ 등의 항공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미사일 조향장치인 ‘제트베인’ 등 최소 10종 이상의 부품을 거래해 왔으며 이란의 ‘샤히드 바게리 인더스트리얼 그룹(SBIG)’이 거래 당사자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2월 24일 전문에서는 이란이 북한으로부터 19기의 BM-25 기종 미사일을 도입했으며 이 미사일은 모스크바는 물론이고 서유럽 주요 국가의 수도를 타격할 수 있는 첨단 미사일이라고 미 정부는 파악했다.
이 전문에서 미국 의회는 2008년 3월 북한의 원심분리기 구매정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 청징예(成競業) 군축대사와 접촉했으나 중국 측은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미래에 집중하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이 전문에서는 익명의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올해 1월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이 구글과 미 정부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구글 대변인은 “우리는 지난 1월 사이버 공격이 중국에서 왔다는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만 추가 언급은 피했다.
중국 베이징 미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은 지난해 5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문에 "끔찍이 겁먹었다"면서 중국 정부는 자국의 인권문제를 비판해온 펠로시 의장의 티베트 방문 요청도 거부했다고 보고했다.
◆ 힐러리, 반 총장 등 유엔 최고위층 정보 수집,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7월 ‘비밀 지령’을 통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 최고위층 인사들이 공무수행을 위해 사용하는 네트워크의 비밀번호와 암호화 키 등 통신 정보를 수집하라고 뉴욕과 제네바 로마의 유엔주재 자국 사무소와 런던과 파리 모스크바를 포함한 33개 지역 대사관 및 영사관에 지시했다.
특히 반 총장의 조직운영과 의사결정 스타일,심지어 생체 정보 및 유엔 사무국에서의 영향력을 수집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조사 대상에는 반 총장뿐 아니라 측근 인사와 사무차장,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비롯한 기구 대표와 고문, 평화유지 활동 책임자 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대표 등이 포함됐다.
◆사우디 "이란 공격해 달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핵무기 개발 억제를 위한 선제공격을 재촉했다.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86) 사우디 국왕은 2008년 4월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당시 미 중부군 사령관(현 아프간 주둔군 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의 핵 야욕을 좌절시키기 위해 "뱀의 목을 쳐달라"고 했다.
바레인의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도 미국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란을 막아달라고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우려도 역력했다.
이란의 유력한 소식통은 미 외교관에게 이란이 적신월사를 이용해 이라크는 물론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던 레바논 등에 혁명수비대 대원과 무기 등을 침투시켰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다른 중동국가들도 미국 눈에는 못마땅한 구석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9·11 이후에도 알카에다 같은 수니파 과격그룹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작년 12월 보고에 따르면 미군기지가 있는 카타르는 정작 대테러전 노력에 있어서는 이 지역 가운데 가장 미온적이었다.
또한 미 정부가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받아들여 제대로 감시할 국가를 찾는 과정에서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이 지난해 이 문제와 관련해 수감자들에게 말이나 매에 사용하는 전자칩을 심어 행적을 추적해야 한다는 '특이한 제안'을 했다.
◆ 김정일 포함한 세계 지도자 평가 각양각색
더욱이 각국 지도자들을 모욕적으로 묘사한 외교전문까지 공개되면서 미국 국무부는 외교적 신뢰가 실추되고 대외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2008년 말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은 러시아의 두 지도자를 비교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배트맨',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배트맨의 조수격인) 로빈이다." 라고 표현했다. 서열이 푸틴 총리보다 높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푸틴 총리의 조연 역할밖에 못 한다는 평가가 담겨 있다. 푸틴 총리에게는 '알파 독(Alpha Dog·무리 중 가장 지배적인 남성)'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북한의 김정일은 '무기력한 늙은이'로 묘사됐다. 건강상태에 대한 평가다. 미 외교관들은 김정일이 뇌졸중 후유증으로 "육체적·심리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본부에 보고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의 지도자답지 않게 무기력하고 헛된 자만심만 강하며 일 처리는 비효율적" "정치적·육체적으로 허약한 지도자" "밤늦게까지 파티를 벌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들이 따라붙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선 "다른 사람의 비판과 모욕 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권위주의적 성향이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겐 "위험을 회피하고, 별로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낮은 평가가 내려졌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미친 늙은이',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히틀러'로 묘사됐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 대해선 "어떤 사실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을 반대하는 아주 괴상한 얘기나 음모를 전달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휘둘리는 극도로 허약한 남자"라며 "편집증 환자"로 깎아 내렸다. 미외교관들은 리비아 최고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해선 "물 위를 비행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육감적인 금발미녀인 우크라이나 출신 간호사 없이는 도대체 여행을 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외교전문에 영국과 미국 간 '특별한 관계'에 대한 영국 내의 '편집증'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 등이 담겨 있다며 영국 정치계가 조만간 공개될 내용 때문에 우려와 긴장에 휩싸여 있는만큼 문건 폭로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손상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키리크스 폭로 후 美외교 타격 조짐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전문을 대거 공개하면서 각국과 외교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드러나는 동시에 미국의 첩보활동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CNN 방송은 29일 이번에 공개된 외교전문이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과 터키 간 이견을 보여줬다면서 앙카라 주재 미국 대사관은 지난해 10월 이 문제로 터키의 고위 외교관과 격하게 충돌했다고 전했다.
윌리엄 번즈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난 2월 한 터키 관리를 만나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기 확보를 막기 위해 군사행동을 취하거나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체적으로 핵무기 확보에 나선다면 터키의 국익을 침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 고위 외교관은 앞서 2005년 3월 보고에서는 "에르도안이 아주 적게 읽는데다 주로 이슬람 편향적인 기사를 본다. 그는 카리스마와 본능, 음모이론을 끌어내고 신(新)오토만 이슬람 환상에 사로잡힌 조언자들에 의존하고 있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을 폐쇄적인 인물로 혹평했다.
엑토르 라코냐타 파라과이 외무장관은 미 외교관들이 2008년 파라과이 대선 후보들의 생체정보 등 개인 신상을 수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전문 내용에 대해 미국 측의 해명을 공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코냐타 장관은 "만일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내정간섭"이라고 지적했으며, 파라과이 외무부는 수도 아순시온 주재 미국 대사를 소환했다.
또 닐다 코파 볼리비아 법무장관은 외교전문 가운데 미 마약단속국(DEA)과 국제개발처(USAID), 일부 민간단체가 간첩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 있다면서 "이제 우리는 그들이 볼리비아에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자세히 알게 됐다"고 비난했다.
코파 장관은 미 평화봉사단과 각종 보건기구들도 스파이 활동에 가담했다면서 "(미국 첩보활동 관련) 정보가 더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미 정부를 고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영국 앤드루 왕자는 2008년 영국 통상대표 자격으로 키르기스스탄을 방문, 현지 외교관과 재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SFO의 활동을 '백치'로 평하고 뇌물수수 보도를 하는 기자들을 "어떤 일에나 간섭하는 이들"로 헐뜯었다.
앤드루 왕자는 이어 경제대국인 미국의 대(對)키르기스스탄 투자액이 영국의 투자 규모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놀라울 것 없다. 미국인들은 절대 지리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국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리학 교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티아나 펠러 키르기스스탄 미 대사는 이에 대해 앤드루 왕자가 "영국식의 무례한 말을 했다"며 대화 내용을 워싱턴에 자세히 보고했다. <위키리크스(WikiLeaks)이 공개한 한국관련 내용은 4 면에 게재>
유로저널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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