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주년을 기념해 9일 철학자 탁석산(52) 전 한국외대 교수는 인문학의 씨앗을 뿌려라’를 주제로 사회 변화.발전과정에서 도외시 되고 있는 인문학의 현주소에 관해 안타까움을 털어 놓았다.
탁 전 교수는“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인문학 역시 대한민국에 뿌리 내린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인문학을 수확하는 기간이긴 커녕 이제서야 씨앗을 뿌리자는 얘기를 해야 되는 게 가슴 아프다. 인문학의 본질이 순수한 호기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인문학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삶의 양식과 인문학의 관계에 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인문학이 우리 삶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에는 인문학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곳곳의 축제를 부러워하지만 한국은 매일매일 술마시고 즐기는 축제를 하고 있고, 텔레비전 등으로 인해 책을 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향락과 재미를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인문학이 뿌리 내린지 60년이 지났는데 기업에서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문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증거이자 인문학에 대한 평가”라며 “이는 곧 한국에서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며, 한국의 삶의 양식은 재미를 추구하는 나라이지, 진지하게 기초를 따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그의 인문학의 발전이 더딘 이유를 한국인의 인생관에서 찾았다. ‘한번 뿐인 인생 즐겁게 지내자’는 생활양식이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인문학의 성숙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인문학의 특성과도 연관된다. 과학은 끊임없는 과대, 과장광고에 능하기 때문에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지만, 인문학은 과대, 과장광고에 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학자는 사회와 직접 관련된 일을 다루지만, 인문학자는 세상과 아무런 관련 없는 일들을 다룬다”며 “인문학의 본질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인문학이 발전할 수 없지만 이러한 인문학의 순기능은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문학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발전하면서 인문학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과거에는 생존과 생활을 위해 살아왔지만 어느 정도 삶이 풍요로워 지면서 그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문학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인문학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인문학은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기초로 해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부분이 인문학이 과학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문제이다.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왜’라는 부분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그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는,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출발하는 인문학의 기능이야 말로 유지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유로저널 김 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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