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악몽 잊고, 지구촌 ‘위험한 원전 열풍’
지난 1986년 4월26일 옛 소련 체제하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부터 98㎞ 떨어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인류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는 끔찍한 사고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350배 규모에 맞먹는 원전 폭발의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방사능을 포함한 연기가 1㎞ 상공까지 치솟은 후 우크라이나는 물론 바람을 타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부 유럽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31명. 2명이 폭발과 화재로 29명은 방사능 노출 탓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인명피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장주변 32㎞ 토양과 지하수원이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되면서 9만2000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6년간 발전소 해체작업에 투입된 노동자 5722명과 지역주민 2510명이 사망했다. 방사능은 인근 지역 주민 43만여명에게 암이나 기형아 출산 등의 후유증도 남겼다.
이 사고로 소련의 원자력발전소 계획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유럽 전역에서는 원전 추가 건설에 대한 거센 저항이 일어났지만 불과 26년만인 최근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고 경향신문이 분석해 보도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선진국들은 물론 중국, 인도, 브라질, 중동, 동남아 등 제3세계에서도 앞다퉈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특히 유럽에서 원전건설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독일의 변신은 주목할 부분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보수 연립정부는 지난달 28일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자로 17기의 철수시기를 평균 12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2020년까지 폐지하기로 한 법안을 10년 만에 백지화시킨 것이다.
체르노빌 참사 이후 4기의 원자로를 폐기했던 이탈리아는 새로운 원전건설을 검토 중이고 스웨덴도 30여년 이어져온 신규 원전 중단 결정을 뒤집었다. 핀란드는 현재 건설 중인 원전 1기 외에 2기를 건설하기로 했고 영국 연립정부도 원전건설에 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도 원전건설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3)마일 섬’ 원전사고에 이은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으로 원전에 대한 심각한 기술적·경제적 의문이 제기되면서 1980년 곳곳에서 원전건설 작업이 중단됐다. 수백억달러가 투자된 원전 관련 설비가 거의 산업쓰레기처럼 방치되다시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급기야 90년대 들어서는 비용문제 등을 이유로 가동 중인 원자로를 폐기처분하는 기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 전역에 12개 원전회사들이 도산위기에서 벗어나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전사업에서 철수했던 기업들도 속속 새롭게 원전건설 수주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불과 수년까지만 해도 환경재앙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양산업의 길을 걷던 원전이 새로운 중흥기를 맞게 된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최근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특집기사에서 “전력수요의 급증,석유·석탄 에너지가격의 상승, 탄소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전 지구적 압력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종전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고 있다”고 말했다.
풍력, 태양력 등 재생에너지가 아직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만큼 만족스러운 발전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반면 지구온난화에 따른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탄소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손쉽게 발전량을 늘릴 수 있는 원전의 유용성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세계의 굴뚝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신흥경제권은 기후변화방지협약으로부터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면서 미래 탄소가스 배출규제에 대비하는 해답을 원전건설에서 찾고 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원전 강국들이 최근 다시 원전산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확대하고 나선 데는 자국의 전력수요에 대비하는 차원을 넘어 제3세계의 이 같은 엄청난 잠재수요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세계원자력협회(WNA)가 각국 정부의 원전건설계획을 토대로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원자로는 2008년 367기(건설 중 포함)에서 2030년에는 602~1350기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30년까지 늘어날 원자로 개수(최고 전망치 기준)를 국가별로 보면 중국 191기, 인도 66기, 남북한이 32기, 바레인·쿠웨이트·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 등 걸프협력국이 50기로 대부분 아시아국가들이 세계 원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GE, 프랑스의 아레바, 일본의 히타치 등 세계적인 원전기업이 최근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아시아국가들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다.
최근 인도에 대한 원전수주경쟁에서 미국에 밀리고 있다고 판단한 프랑스는 방향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에 따르면 프랑스 원전회사 아레바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방문기간(4~6일) 중 향후 10년간 2만t의 우라늄핵연료(30억달러)의 핵연료 공급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이처럼 원전개발에 목을 메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제 환경단체들은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브리핑에서 2008년 국제에너지협회(IEA)의 분석결과를 인용하며 “원자력 에너지는 가장 위험할 뿐 아니라 가장 비싼 에너지”라고 주장했다. 2050년까지 전 세계에 걸쳐 원전이 지금의 4배 수준인 1300기로 늘어난다면, 탄소가스는 4% 정도 줄어드는 데 그치는 반면 약 10조달러의 원자로 건설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년 수만t에 달하는 치명적인 핵폐기물과 원자로 1기당 12개의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700~800㎏의 플루토늄 생산, 그리고 10년에 한 번씩 체르노빌 사태와 맞먹는 재앙의 발생 가능성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게 그린피스의 경고다. 무엇보다 2020년까지 지구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을 막기 위해 각종 재생에너지에 투입돼야 할 시급한 재원이 원자력 개발 붐 때문에 소진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안타까움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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