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주 ‘스탠 바이 미’를 소개하면서 언급했던 스티븐 킹에 대한 이야기 이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아니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아닌 스티븐 킹은 일반적인 영화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목록을 보면 ‘아하!’ 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 ‘캐리’, ‘샤이닝’과 같은 초창기 공포영화들,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본’과 같은 탄탄한 스릴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과 같은 교도소를 배경으로한 휴먼 드라마까지 모두 그에 의해 창조된 작품들이며 비평과 흥행 양면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이다.
1947년 미국 태생인 스티븐 킹은 탄탄한 짜임새와 긴장감, 그리고 그만의 창조적인 개성이 담긴 여러 작품들을 통해 스릴러 소설가로, 또 영화 원작자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며 많은 독자들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별히 요즘 주류를 이루는, 잔혹한 장면만으로 승부를 거는 스플래터 무비나 ‘링’과 ‘식스센스’의 영향으로 기어 다니는 여자 귀신과 억지스런 반전에만 집착하는 한국의 공포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과 공포심을 끌어내는 그의 재능과 상상력은 자칫 저급 장르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들에 엄청난 생명력과 깊이를 불어 넣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작과 같은 걸작을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는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임에는 이견이 없다. 영화광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그의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미저리’와 ‘쇼생크 탈출’은 제외시켰다)
캐리(Carrie, 1976)
갱스터와 호러 장르에서 뛰어난 영상미로 인정받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초기 작품이면서 스티븐 킹의 처녀작인 원작소설 ‘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호러물이다.
어머니의 종교적 광기과 억압, 초경을 겪는 사춘기 소녀로서의 혼란, 그리고 주위 친구들의 놀림감으로 고통받던 주인공 소녀 캐리가 초능력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에게 복수한 뒤, 자신을 죽이려는 어머니의 발작을 피하려다 어머니를 죽이게 되고 결국 자신 마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다소 비극적인 내용의 영화이다.
무엇보다 친구들의 계획적인 장난으로 파티에서 놀림감이 되어 돼지 피를 덮어 쓰고 전율하는 주인공 캐리의 모습은 가녀리고 내성적인 소녀의 캐릭터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유명해지기 전의 존 트라볼타가 캐리의 남자친구 역으로 등장한다.
샤이닝(The shinning, 1980)
‘캐리’의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하면서 스티븐 킹의 호러 소설을 영화화 하려는 시도가 자연스레 증가할 즈음 말이 필요 없는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작품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스스로의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변해가는 인간의 악마성과 이상 심리를 명배우 잭 니콜슨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섬짓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직접 고안한 스테디 캠(Steady Cam: 몸에 카메라를 부착한 뒤 이동 시에도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는 기법, 빠른 추적장면 등에서 마치 실제로 뒤에서 따라 뛰는 것 같은 효과를 냄)을 사용하여 주인공의 광기 어린 행동을 마치 실제 주인공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느낌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마지막 눈 쌓인 미로에서 펼쳐지는 추격신은 스테디 캠과 조명의 환상적인 사용으로 공포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면이 되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부인과 아들을 살해하려고 하는 설정 때문에 정식 개봉 당시 특별히 잔혹한 장면이 없었음에도 한국에서는 금지작으로 묶여 정식으로 소개되지 못한 작품이다. 평범한 가장에서 광기 어린 살인마로 변화하는 극중 소설가 잭 니콜슨의 캐릭터는 아마도 그 자신이 소설가인 스티븐 킹의 다양한 경험과 상상력을 통해 창조된 공포영화 사상 손꼽히는 캐릭터이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Dolores Claiborne, 1994)
1990년 ‘미저리’의 엄청난 성공으로 또다시 배우 캐시 배이츠를 기용하여 ‘백야’, ‘사관과 신사’를 연출한 테일러 핵포드 감독이 야심차게 찍은 작품.
조그만 섬에서 한 노인의 죽음을 계기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 동안 감춰져 온 슬프고도 끔찍한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매우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무엇보다 이 영화를 긴장감 있게 이끌어 가는 두 여배우, ‘미저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캐시 베이츠와 ‘죠지아’로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니퍼 제이슨 리의 환상적인 연기가 압권이다.
재미와 작품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이 영화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별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소수의 팬들에게만 사랑을 받은 운나쁜 영화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