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Preview에서 소개되는 영화 ‘넘버 23’에서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코미디 장르의 전문배우인 짐 캐리의 변신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연한 얼굴근육을 이용한 표정변화와 쉴새 없는 수다연기로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코미디 배우였던 짐 캐리를 스산한 스릴러의 주인공으로 만난다는 게 어디 상상이나 가겠는가? 사실, 1994년 ‘에이스 벤츄라’로 대뷔한 이래 근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코미디 한 장르만 해왔다는 것은 배우로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슬슬 관객들도 그의 모습에서 더 이상 웃음을 찾기 힘들어져 가고 그 역시 그런 한계를 직감하여 전작인 ‘이터널 선샤인’ 부터 연기 변화를 시도해 온 것 같다. 이번 짐 캐리의 180도 변신처럼 지나치게 코미디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파격적인 장르변화, 연기변신을 꾀한 배우들은 또 누가 있을까?
로빈 윌리암스 - 피터팬의 고민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팅 선생님으로 우리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그리고 이후 ‘미세스 다웃파이어’, 만화 ‘알라딘’에서의 램프 요정 ‘지니’, 그리고 ‘후크’에서의 피터팬 역할을 비롯, 로빈 윌리암스는 그 동안 인자하고 따뜻한 드라마의 주인공 또는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코믹한 영화에서 웃음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사실, 늘 웃음에 가리워져서 그렇지 그는 정말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좋은 배우임에도 유난히 코미디 배우라는 인상이 강한 나머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세 번 씩이나 후보에 올랐음에도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 자신의 연기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느꼈는지 2002년 ‘인썸니아’라는 작품을 통해 첫 악역을 맡아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그러나, 작품 자체가 그다지 흥행성이나 작품성이 없던 탓도 있었지만, 역시 사람들은 늘 다정한 삼촌 같았던 로빈의 심각한 악역 연기가 좀처럼 어색하기만 했던지 영화도, 로빈의 연기 변신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로빈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 뒤로도 ‘스토커’, ‘파이널 컷’같은 스릴러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지만 결과는 계속 참담했다. 그러다가 배우로서의 흥행성에 어느 정도 위협을 느껴서 다시 코미디로 복귀한 ‘알브이’는 ‘역시 로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 일단 한 숨 돌리고 다시 도전한 스릴러 ‘나이트 리스너’는 그러나 또 실패했다. 사실, 스릴러라는 장르는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잘 짜여진 각본과 탄탄한 연출력이 중요한 만큼 로빈은 작품을 고르는데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 할 거 같다.
이범수 – 봉구의 변신
사실 유난히 코미디 장르가 활발한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코미디 전문 배우가 참 많다. 지금은 고참인 박중훈부터 김수로, 최성국 등등. 그럼에도 이범수는 로빈 윌리암스와 마찬가지로 탄탄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고 코믹한 이미지로만 기억되어 왔던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로빈 윌리암스는 ‘잭’에서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은 어린이인 역할을 맡았었고, 이범수 역시 그의 최고 히트작인 ‘오! 브라더스’에서 같은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물론 둘 다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며 작품을 흥행시켰다. 어쨌든, 역시 자신의 이미지가 코미디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한 이범수는 ‘안녕! 유에프오’나 ‘슈퍼스타 감사용’을 통해 조금은 진지한 드라마 연기를 선보였으나 나름대로 괜찮았던 이 작품들이 이상하게도 비평이나 흥행면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 뒤, 다시 코미디로 복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로 “역시 이범수는 웃겨”와 같은 반응을 얻더니 지난 2006년 류승완 감독의 ‘짝패’에서 180도 변신, 너무나 비열하고 악랄한 악역을 훌륭히 소화해 냄으로써 변신에 성공했다.
이와는 반대로 무표정 액션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고민하다가 오히려 코미디로 전환하여 연기변신에 성공한 배우도 있으니 바로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코난, ‘코만도’, ‘터미네이터’같은 액션영화에서 대사도 별로 없는 무표정 액션연기로 일관하다 코미디의 대가인 아이반 라이트반 감독을 만나 ‘유치원에 간 사나이’라는 코미디를 통해 연기 변신에도 성공하고 흥행에도 대성공하는 등 여러모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