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원작자로 재조명해보는 안정효

by 유로저널 posted Nov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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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있어서 시나리오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 편의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뛰어난 영화 감독들은 자신들이 직접 집필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연출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들은 여느 스타 배우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나리오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다 해도 과연 관객들이 그 새로운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할지는 언제나 미지수, 그런 까닭에 원작 소설, 또는 만화로 이미 검증을 받은 작품을 영화화 하는 경우 또한 참 많다. 오래 전에 소개한 미국의 스티븐 킹의 경우 대표적인 영화 원작자이며, 요즘 한국에서는 ‘비트’, ‘타짜’에 이어 개봉한 ‘식객’이 역시 흥행에 성공하면서 원작 만화가 허영만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헐리우드에는 스티븐 킹, 존 그리샴,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훌륭한 영화 원작자들이 있지만 사실 우리 나라 영화를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는 영화 원작자가 다섯 손가락을 넘기기가 힘들다. 그나마 그 가운데 ‘서편제’를 비롯 거장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들의 원작을 쓰신 이청준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분도 계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사실, 이청준 선생님은 워낙 위대한 문학가이고,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오늘 소개하는 안정효 선생님이 좀 더 영화 원작자로서의 성격을 지녔다고 본다. 즉, 문학성을 떠나 영화적인 소통에 좀 더 민감한 원작자라고나 해야 할까? 새삼 영화 원작자로서의 안정효 선생님을 재조명해본다.

안정효 선생님의 프로필을 잠시 소개하면 1941년 서울 생으로,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이후 언론인, 번역문학가로 활동하셨다. 1985년부터 소설 창작, 영문으로 발표된 ‘은마는 오지 않는다’, ‘하얀 전쟁’ 외에 국내에서 발표된 ‘미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로 중견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힘과 동시에 위에서 언급한 작품 중 세 작품이 영화화 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

미국과 관련된 문제 및 사회 문제, 또 소설작품을 영화화 하는 데 일가견을 보였던 장길수 감독의 작품으로 안정효의 원작이 처음 영화화된 작품이다. 6.25를 배경으로 실제 당시 사회의 처절한 한 단면이었던 미군부대, 소위 말하는 ‘양공주’ 등 우리 역사의 슬픈 자화상을 짜임새 있게 담아낸 작품으로, 제15회 몬트리올 영화제 최우수여우주연상 및 각본상, 제27회 백상예술대상 5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미숙, 김보연 등 요즘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 여배우들의 명연과, 실제 미군의 주둔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묘사한 연출력이 어울려 안정효의 원작 이상으로 훌륭하게 영화화된 작품.


하얀전쟁(1992)

당시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였던 20억 원의 제작비, 그리고 역시 흔치 않던 월남 현지 로케이션으로 제작해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그나마 많지 않은 안정효 원작의 영화를 두 편이나 연출한 정지영 감독의 작품이다. 월남전을 다룬 우리 영화가 그리 많지 않은 바, 본 작품이 그 가운데 최고 걸작이 아닐까 싶다. 월남전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 받는 한 인물을 통해 과연 ‘전쟁이라는 것이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특히 미국보다는 월남전에 무관심했던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이러한 주제를 풀어내고 있다. 제5회(92년) 동경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제29회(93년)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이경영), 제38회(93년) 아태영화제 남우주연상(안성기)을 수상하는 등 안정효 원작소설의 위력을 재확인한 작품.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하얀 전쟁’에 이어 정지영 감독이 연출한, 그리고 아마도 안정효 원작 영화의 마지막이 된 작품으로, 영화를 주제로한 영화인 만큼 안정효 작가의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마인드가 가장 많이 담긴 작품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위해 살았던 이들에게 전하는 한 편의 흥미로운 드라마이지만, ‘시네마 천국’과 같은 아련함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많은 생각을 낳게 하는 작품. 독고영재, 최민수, 홍경인 등 배우들의 명연기가 빛나는 작품으로, 역시 산 세바스찬 영화제 국제 영화 평론가상, 제31회 한국 백상예술대상, 제15회 청룡영화상 대상, 1994년 좋은 영화상 등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흥행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은 개봉 당시 그렇게 큰 흥행성적을 기록하지 않은 작품들이며, 현재 구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들이나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감상해 볼 가치가 있는 수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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