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열전 (6) 장만옥

by 유로저널 posted Feb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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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리 배우 김윤석을 소개한 이후, 이번 주에는 동양 여배우를 한 명 소개하기 위해 고심했다.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 그러면서도 일반인들이 ‘연기파 배우’ 하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그런 배우 말고, 그럼에도 그 배우와 동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무언가 뭉클함을 줄 수 있는 그런 배우. 결론은 필자 개인적으로도 다소 의외라 여겨질 만큼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그럼에도 낯익은 이름, 바로 장만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화권의 여배우를 얘기할 때 대표적인 배우로 공리를 떠올리곤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공리가 장예모 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이미 전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은 덕분에, 또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탓일 것이다. 그에 비해 장만옥은 현재 연기력으로도 공리 못지 않은 상당한 인정을 받았음에도 워낙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온 데다, 연기를 제대로 공부하고 데뷔한 연기자 태생이 아닌,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점 또한 한동안 장만옥을 ‘배우’로 평가하는 데 장애가 되어 온 것 같다. 그럼에도, 장만옥의 전성기 시절, 그러니까 홍콩 영화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 했던 대다수의 여배우들이 단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만옥은 지금 이 순간까지 배우로서, 또 스타로서도 끊임없는 성장을 거듭해 오며 장수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오늘 이 시간에 소개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듯 하다. 실제 기억을 돌이켜 당시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던 여배우들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지병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매염방, 결혼과 함께 은퇴한 종초홍을 제외하면 왕조현, 임청하 등 당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중화권 여배우들 대부분이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근황을 알 수 없을 만큼 말 그대로 소리소문 없이 한 물 가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지난 2004년 ‘클린’으로 칸 영화제 여주주연상 수상이라는 기염을 토해낸 장만옥의 저력이 새삼 위력적으로 느껴진다.

1964년 홍콩에서 태어난 장만옥은 가족의 이민으로 영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17세에 잠시 방문한 홍콩에서 CF모델로 발탁되는 기회를 통해, 1982년에는 미스 홍콩 대회에서 미스 아시아에 선발되기에 이르고, 이러한 배경을 통해 TV드라마에서 드디어 연기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제대로 연기 공부를 하지 않고, 연기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그녀의 연기는 그야말로 최악의 혹평을 받았고, 이는 비교적 손쉽게 스크린에 데뷔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1984년 장국영과 함께 출연한 ‘연분’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는 저 유명한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의 푼수 같으면서도 순수한 여자친구 아미 역을 맡아 자신의 지명도를 본격적으로 높이기 시작한다. 이후 장만옥은 영화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철저한 연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물론, 화면 속 그녀의 연기도 날로 발전해갔다.

그리고 1988년, 드디어 그녀를 진정한 배우로 재탄생 시켜줄 명감독을 만났으니 바로 홍콩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왕가위였다. 그녀는 왕가위의 데뷔작인 ‘열혈남아’를 시작으로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 ‘중경삼림’(1994), ‘타락천사’(1995), ‘해피 투게더’(1998), ‘화양연화’(2000), ‘2046’(2004)까지 왕가위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에 출연하면서 진정한 왕가위의 분신으로 활약해 왔다. 홍콩이라는 도시를 테마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온 왕가위 감독의 작품세계만큼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 홍콩을 느낀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을 통해 재발견된 장만옥은 이후 1989년부터 1993년까지 거의 매해 열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물론 이 중에는 상업성만 가득한, 다소 영화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인재뉴욕’(1989)으로 금마장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관금붕 감독의 ‘완령옥’(1991)으로 대만 금마장상 최우수 여우주연상과 1992년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들을 통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며, 상업성과 작품성의 균형을 이루어 갔다.

90년대 후반에는 ‘첨밀밀’같은 작품으로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며 변함없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1999년에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될 만큼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전과 같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는 않으나, 선택하는 작품마다 좋은 평을 받으면서, 원숙미를 더해가는 아시아의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이 홍콩영화는 말 그대로 한 물 갔어도, 우리는 홍콩영화의 전성기는 물론,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없이 언제나 진보한 연기로 우리 곁에 있어준 장만옥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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