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는 그 특유의 고집스런 예술성과 난해함 때문에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이들이나, 비상업 영화에 조예가 깊은 일부 전문(?) 영화광들을 제외한 일반 관객들에게는 오랫동안 홀대를 받아왔다. 물론, 개중에는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한 재미나 감동을 선사하며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도 간간히 있어 왔다.
특히, 몇몇 프랑스 출신 배우들은 헐리우드 배우들이 갖지 않은 그 무엇(?)을 발산하며 프랑스 영화는 물론 헐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하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예로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알랑 들롱이나 소피 마르소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이후에도 제라르 드빠르디유, 엠마누엘 베아르, 이자벨 아자니 같은 배우들이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얻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멋진 활약을 선보이는 프랑스 출신 배우들이 이전에 비하면 많이 위축된 것 같다. 그나마, ‘레옹’의 장 르노가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레옹’ 이후 작품 선택에 있어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탓에 지금은 존재감이 많이 약해졌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뱅상 카셀을 바로 프랑스 출신 배우의 계보를 이을 훌륭한 답안으로 추천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뱅상 카셀이라는 이름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낙 강렬한 외모를 지닌 그이기에 그의 얼굴을 보고나면 금방 그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범상치 않은 그의 외모 덕택에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평범한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왔지만, 어떤 작품에서 어떤 배역을 맡건 그의 연기는 오래도록 강렬한 인상을 남겨왔다.
그의 아버지 역시 영화배우인 장 피에르 카셀로, 그는 일찌감치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초반에는 주로 연극무대를 통해 연기력을 다졌다. 그러다가 1988년 ‘황새는 그들의 머리 위에만 그것을 만든다’라는 작품으로 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그는 평소 친분이 두텁던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1993년 작 ‘혼혈아’에서 주연을 맡게 되며, 이후 카소비츠의 1995년 작 ‘증오’를 통해 세자르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1996년 작 ‘라빠르망’은 그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작품으로, 주인공 맥스 역으로 출연해 사랑을 찾아 파리를 헤매는 애절한 연기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1997년 작 ‘도베르만’에서는 거친 액션 연기를 선보였고, 1998년 제작된 영국 영화 ‘엘리자베스’, ‘레옹’의 뤽 베송 감독의 1999년 작 ‘잔다르크’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2001년 작 ‘늑대의 후예들’에서는 악역인 ‘장’ 역을 통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섬뜩한 연기를 선보였다.
뱅상 카셀은 ‘라빠르망’에서 함께 출연한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와 실제 연인이 되어 이후 ‘늑대의 후예들’을 비롯 다양한 작품에 함께 출연해 왔으며, 특히 충격적인 장면으로 논란이 되었던 2002년 작 ‘돌이킬 수 없는’에서는 모니카와 연인으로 출연해 실제 살고 있는 집에서 과감한 촬영을 하기도 했고, 연인 모니카를 폭행한 범인을 찾아 헤매는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미 헐리우드에서도 주목을 받은 뱅상 카셀은 2004년 오션 시리즈의 2편인 ‘오션스 12’에 오션스 일당과 대적하는 전문 도둑 ‘프랑소와 똘루’ 역을 맡아 헐리우드 상업 영화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그는 수 많은 상업 영화에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2007년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이스턴 프라미시스’에 출연해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며 평론가와 관객들의 극찬을 얻어냈다.
출연 작품에 비해 다소 운이 좋다고 해도 될 만큼 뱅상 카셀은 자신의 강렬한 개성을 무기로 알찬 연기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배우인 것 같다. 프랑스 출신 배우들의 활약이 많이 위축된 현 시점에서 그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