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의 99% 이상, 심지어 아동용 영화일 지라도 반드시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바로 ‘악역’이 아닐까 싶다. 오늘 소개하는 악역들은 저마다 영화사적으로 특별한 의미와 개성을 담고 있는, 그리고 배역을 맡은 배우가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인 악역들을,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에 의해’ 선정했다. 장르의 특성 상 호러, 스릴러 영화에서 단골로 출연하는 괴물, 정신병자와 같은 캐릭터들, 가령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 같은 악역들은 가급적 배제했음을 미리 밝힌다.
1위: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 안소니 홉킨즈
영화 속 캐릭터에 앞서 이미 토마스 해리스의 원작 소설 캐릭터로, 즉 원작의 덕을 봤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안소니 홉킨스라는 명배우에 의해 실제 인물로 재창조된 렉터는 영화 사상 가장 섬찟한, 가장 명석한, 가장 복합적인, 그리고 어쩌면 가장 정도 많은(?) 악역이 아닐까 싶다.
2위: ‘세븐’의 존 도우 – 케빈 스페이시
자신의 죽음의 순간조차 냉정함을 잃지 않는 연쇄 살인마 존 도우. 영화 사상 수 많은 연쇄 살인마들이 등장하지만, 존 도우는 잔혹함이나 엽기를 떠나 너무나 뚜렷한 주관(?)과 냉정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케빈 스페이시는 1995년도에 ‘세븐’ 외에 반전의 교과서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 역으로도 출연, 한 해에 최고의 악역들을 두 명이나 소화하는 기염을 토했다.
3위: ‘타짜’의 아귀 – 김윤석
개인적으로 ‘타짜’의 보석은 조승우의 매력도, 김혜수의 누드도, 백윤식의 연륜도 아닌, 바로 아귀(김윤석)라는 캐릭터의 발견이라고 본다. 다소 단조로웠던 우리 영화계 악역의 미숙함을 벗어난, 우리 영화 사상 가장 생동감 넘치는, 카리스마를 지닌 매력적인 악역이 아닐까 싶다.
4위: ‘레옹’의 스탠필드 - 게리 올드만
부패경찰 캐릭터는 신물이 날 정도로 흔하다. 그런데, 명배우 게리 올드만이 창조한 스탠필드 형사는 결코 다른 캐릭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마치 실제 마약에 취해 있는 것 같은, 악마성과 광기를 이처럼 잘 표현해낸 부패 형사는 전무후무한 것 같다.
5위: ‘살인의 추억’의 박현규 – 박해일
박현규라는 캐릭터는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이미 지니고 있던 고유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활용한 캐릭터이다. 연쇄살인 용의자로 지목 받고도 냉정을 유지하는, 그러면서도 무언가 범인일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겨내는 박해일의 훌륭한 연기는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이라는 사실과 접목되면서 긴장감과 현실감을 극대화 시키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6위: ‘배트맨’의 조커 – 잭 니콜슨
자칫 유치하고 억지스런 캐릭터에 머물 수도 있었던, 영화 사상 가장 만화적인 캐릭터일 수도 있었던 조커를 멋지게 재생한 것은 잭 니콜슨이라는 명배우의 신기에 가까운 연기 덕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후 매 시리즈마다 다양한 악역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모두 잭 니콜슨의 조커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7위: ‘돌이킬 수 없는’의 테니아 - 조 프레스티아
아마도 일반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영화와 생소한 배우일 것 같다. 성숙한 관객이 아니라면 별로 추천하지 않는 작품인데, 최고의 미녀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모니카 벨루치를 정말 무참하게 폭행하는 역할을, 관객으로서 불편함이 느껴질 만큼 실감나게 연기해냈다. 모니카 벨루치는 본 장면을 촬영한 뒤 실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8위: ‘미저리’의 애니 – 캐시 베이츠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을 제치고 여성 캐릭터로 선정했다. 지금은 너무 많은 악녀들이 영화계를 종횡무진 하고 있지만, 당시 캐시 베이츠가 창조한 애니의 캐릭터는 정말 신선한 충격과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아마 스토커의 집착성과 사이코적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9위: ‘터미네이터’의 터미네이터 – 아놀드 슈왈제네거
많은 관객들은 2편에 등장하는 액체 터미네이터를 더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1편의 아놀드는 거의 악역 기계인간의 시초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녔다. 무감정의 암살 로봇이라는 캐릭터가 무표정 근육질 거인인 아놀드를 만나 창조된 터미네이터의 캐릭터는 유사 캐릭터 중 단연코 최고였던 것 같다.
공동 10위: ‘공공의 적’의 조규환 - 이성재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 크리스찬 베일
두 캐릭터는 상당히 닮았다. 말끔한 정장에 자기 관리를 잘 할 것 같은 젊은 금융인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캐릭터로, 현대 사회가 창조한 악마성과 이중성을 훌륭하게 살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