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길의 공포, 더 로드

by 유로저널 posted Sep 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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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자가용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간혹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밤길에 다른 차량도 보이지 않은 채 운전을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필자의 경우 음악 연주 공연 차 지방을 다녀올 때는 보통 저녁 시간에 연주가 있어서 한적하고 낯선 도로의 밤길 운전을 자주 하는 편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더 로드(원제: The dead end –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막다른 길이라는 의미)’는 이처럼 밤길에 홀로 운전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매우 실감나는 공포를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오늘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어쩌면 필자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것일 게다. 아무래도 영국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늘 새로운 장소로, 또 늦은 시간에도 이동을 해야 해서 필자는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데, 한 번은 밤길에 네비게이션이 문제가 생겼는지 계속 같은 길에서만 맴돌도록 인도를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달려도 다시 같은 길, 같은 표지판, 차량도 한적한 그 밤에 어찌나 오싹해 지던지…  

‘더 로드’는 이처럼 벗어날 수 없는 길의 공포, 그리고 이유와 존재를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 그리고 현실과 가상의 혼돈을 조합하여 긴장감과 공포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한적한 밤길을 차량으로 이동하는 한 가족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도로 양 옆은 숲으로 무성하고, 가로등도 없는 2차선 왕복 도로,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는 그만 깜빡 졸게 되고, 마침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정면 충돌할 뻔 하나 운 좋게도 사고는 모면(?)하고 계속 길을 달리게 되는데 이 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아기를 안고 있는 창백한 여성이 홀로 길가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태워주다가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 그리고 무엇보다 달려도 달려도 같은 길에 같은 표지판 뿐, 도대체 이 길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은 반복과 고립… 가족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결국 살아남은 아버지와 딸은 정신 착란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도대체 이 가족에게, 이 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들은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는 요즘 공포/호러 영화들에서 거의 빠짐없이 보여지는 코드들을 의외로 자제하고 있다. 끔찍한 장면이나 엽기적인 살인마, 괴물과 같은 장치는 이 영화에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와 그 계보를 같이 하는 영화로 간주될 수 있겠는데, 스포일러(영화의 결말이나 중요한 요소를 미리 공개함으로써 신선하고 충격적인 감상을 방해하는 사람)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얘기는 자제하겠다.

어쨌든, 이 영화는 유명 배우나 충격적인 장면과 같은 요소들이 없음에도 탄탄한 짜임새와 소재의 흥미로움으로 관객들을 흡입하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영화 보는 눈치가 고수인 관객들은 중반 즈음부터는 대강 어떤 얘기인지 눈치를 챌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밤길에 고립된 도로라는 설정에서 오는 긴장감과 공포의 맛은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며, 감독은 프랑스 출신의 장 뱁티스트 안드레아와 패브리스 카네파 두 명이 공동 연출을 했다. 둘 다 낯선 이름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이 이들의 데뷔작이다. 이들이 집필한 ‘더 로드’의 각본을 본 미국 제작자가 작품의 매력을 알아보고 투자를 결정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전해졌다. 배우들 역시 나름 탄탄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유명 배우는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좋은 소재와 탄탄한 연출만으로 이렇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진리(?)가 멋지게 증명된 셈이다.

어느덧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낯선 도로에서의 운전 경험을 떠올리며 감상한다면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DVD로 출시가 된 만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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