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시대에 다시 보는 ‘미시시피 버닝’

by 유로저널 posted Jan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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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물론,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미국 내 모든 유색인종의 지위나 그들에 대한 인식, 대우가 격상되지는 않았지만, 상징적인 의미만으로도 이는 엄청난 파격임에는 틀림없다.

이 즈음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사회 의식이 담긴 작품을 잘 만드는 알란 파커 감독의 1988년 작 ‘미시시피 버닝(Mississippi Burning)’. ‘미시시피가 불탄다’ 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제목은 영화를 보고 나면 왜 ‘불탄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 내 악명 높은 KKK단의 만행, 흑인들의 처절한 비극이 최고조에서 내리막으로 향하기 시작한 1964년, 미국 내에서도 가장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강했던 남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실제 사건을 영화화 했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미시시피 한 마을에서 민권 운동가인 두 명의 백인과 한 명의 흑인이 실종되고, 이를 수사하기 위해 FBI 수사관이 파견되어 사건을 파헤친다는 얘기이다.

미국 내 흑백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가 이번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보면서 ‘미국에서는 흑인도 잘나가나 보다’라고 착각했을 이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놀라움을 넘어선 충격을 맛볼 것이다. 자칭 ‘세계 최고의 자유, 정의, 평등 수호자’인 미국이 불과 60년 전쯤 얼마나 악랄한 짓을 저질렀는지를 발견한다면.

영화 첫 장면은 미시시피의 식수대, 한 쪽에는 ‘White(백인 전용)’, 또 한 쪽에는 ‘Colored(유색인종 용)’이라고 구분이 되어 있다. 여기서 유색인종은 이 당시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동양인을 가리키기 보다는 흑인을 가리킨다. 식당에도 흑인들만 앉는 자리가 따로 있고, KKK 단원들은 별다른 제재 없이 흑인들을 살해하고, 괴롭히고, 그들의 집, 교회에 방화를 저지른다.

흑인에 대한 이유 없는 묻지마 증오와 폭력을 보이는 이들 KKK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악마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몸서리 처지는 것은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다. 흑인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 하다는 것이다. 비록 KKK의 만행에 직접 가담은 안 했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도 심적으로는 KKK를 지지했던 것이다.

또 하나 충격적인 것은 KKK 단장이 일반인들을 수만 명 모아놓고 연설을 하는데 그는 “앵글로 색슨 기독교인이 힘을 합쳐서”라는 표현을 쓰고, 군중들은 이에 환호한다. 흔히 우리가 미국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WASP(White Anglo Saxon Protestant: 앵글로 색슨 백인 기독교인)’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악한 세력이 외견상으로는 기독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 미국의 기독교와 교회는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이 나눠져 있는데, 백인 대부분이 교회를 다니고 KKK 역시 기독교인이었는데도, 흑인 교회를 불태우고 흑인들을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백인 교회가 병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영화에 등장하는, 삶 자체가 애환이며 핍박인 흑인들의 교회에는 진짜 기독교가 있다. 당시 미국 백인 교회의 역할은 사회 기득권 세력으로, 습관적인 사교 모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미국 백인 교회와 기독교 역사를 찬양하는 이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그들이 역사 속에서 누구의 편에 서 왔는지.

KKK 단장이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검둥이가 판치는 사회는 용납할 수 없다”, “검둥이와 백인의 혈통이 섞여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외치는 장면은 흑백 혼혈인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백인 청중들이 기립 박수 보내는 최근 뉴스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유색인종이 자신의 리더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왜 흑인들이 오바마 당선 소식에 눈물을 줄줄 흘렸는지 공감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KKK에 의해 살해당한 흑인 청년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묘지에는 수 많은 흑인들의 무덤이 보이고, 그 중 ‘1964 Not Forgotten(잊혀지지 않을 1964년)’이라고 새겨져 있는 한 비석을 비추면서 영화는 끝난다. 흑인들의 희생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인종차별 철폐법을 만들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케네디가 회담을 하면서 흑인들의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 해가 바로 1964년도였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시시피는 1964년 미국에서 가장 뒤늦게 공립학교 흑백 공학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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