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박물관 및 미술 기행 77/ 내셔날 갤러리

by eknews posted May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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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바로 보기 9
새로운 미술의 눈을 열어 준 거인‘고야’7



고야의 다섯 번째 만남,
사회와 현실인식 1

사람이 태어나 첫 번째 가족과 주변 사람을 만나 그 관계를 첫 경험한 후, 두 번째로 사람은 눈에 보이는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한 후에 세 번째로 사람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경험하고 네 번째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추구하게 된 후, 다섯 번째의 만남은 내면의 자신과의 만남의 과정을 경험한 후 자기 중심과 시각을 세운 후에 만날 수 있는 과정이다.
이번 주는 고야가 경험한 이 다섯 번째의 만남을 잠시 더듬어 보겠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정도의 만남만 경험하고 그것을 묘사하는 데 자기의 생애를 받친다.
더 이상의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일찍부터 기교로 흐르고 그 기교에 취해 버리거나 한계적인 삶의 경험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자기 기교에 스스로 감탄하고 취하고 이에 동조하는 주변 사람들의 성원에 다시 취해서 정신적 세계를 넓히는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저버리게 된다.
당연 매너리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작가들이 대부분 두 번째 세 번째의 단계에서 머무르고 마는 것은 이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다
또 어떤 만남을 경험하기 위해선 그 동안의 길들여진 기교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길을 나서야만 한다.
그리고 기존의 것을 벗어버릴 때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다른 세계가 있는 줄 전혀 짐작 조차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이고 경험한 만큼만 세계가 보인다.
첫 번째의 만남만 경험한 사람이 두 번째의 세계를 알 수 없듯이 두 번째만 경험하고 본 사람이 세 번째의 세계를 짐작 조차할 수 없다.
수업 시간 중, 20대 초반의 학생이 네 번째 까지는 알 것 같은데, 5번째의 만남은 정말 모르겠다는 질문을 했다.
또 한 학생은 그렇게 사람이 6번째까지 만남의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가, 다시 질문했다.
사실 나도 머리 속에 막연히 자리잡고 있었던 이 6가지 만남의 과정이 구체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작가의 작품이나 생애를 연구하며 이들이 6가지 정도의 만남을 경험했다는 것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고야를 깊이(Francisco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들여다보고 연구하며 관념을 고야의 예술 과정과 삶으로부터 여섯 단계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고야의 초기 4개의
만남의 과정

고야의 첫 번째의 만남, 1746년 당시 농부이며 금박 길드공인 아버지와 시골 명문가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술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희망대로 미술 수업을 받는다.
고야의 두 번째의 만남은 1763년 마드리드로 떠나 로얄 미술학교에 입학을 신청하고 거절 당하는 이 때부터 시작 된다.
1766년 다시 야심만만한 청년이 두 번째로 다시 입학을 거절을 당한다. 그리고 1771년 로마로 떠나 견문을 넓히고 미술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다진다.
세 번째 만남은 로마에서 돌아와 1774년 스승의 여동생인 Josefa와 결혼을 하며 시작된다.
그는 그녀를 통하여 기쁨과 비애의 슬픔을 동시에 가지게 되며 삶의 이중성에 대해서 깊이 자각하게 된다.
부인의 오빠를 통해 궁정의 태피스트리 제작소에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되며 안정된 삶을 얻었고 또한 여인을 통해 삶의 또 다른 기쁨을 맛보았으나 첫 아이 둘째 아이가 계속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자 크게 상심하게 된다.
고야의 네 번째 만남은 1770년대 말부터 시작된다.
태피스트리의 주제가 로마와 그리스 신화, 성경의 주제로부터 바뀌어 당시의 귀족과 일반 민중과 천민 죄수까지 그 대상으로 하게 됨으로써 그는 밑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스케치하며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엿보게 된다.
즉 다양한 삶을 경험하며 역사와 현실의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계속된 자기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몰락해 가는 스페인의 왕조와 귀족의 이중성을 경험하고 그 갈등을 작품 속에 표현한다.
이 때에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고심한 흔적을 그는 자신의 그림 속에 나타내었다.
물론 고야는 단 한마디의 이론적 사고나 자신의 관념을 언어로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의 미술 속에서 드러난 조형언어(造形言語)와 미술 작품에 드리워진 삶으로부터 얻어낸 것일 뿐이다.
고야의 다섯 번째 만남의 계기가 이루어졌던 사회는 혼란의 사회였다.
옆 나라인 프랑스에선 혁명의 소용돌이와 미국의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 그리고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발명이 되고 그것이 제품화 되어 방직공장에 이용되고 있을 시점이었다.
즉 기계문명이 시작되고 문화적으로 전통과 진보 사이의 혼란 속에 빠져들고 정치적으로왕조가 몰락을 하고 있었고 스페인도 전쟁 속으로 빠져들었다. 는 그 혼란을 몸으로 지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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