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28>
한 실험적 미의 탐구자의 도전과 그 결실
데이트 모던의 ‘데오 반 되스버그’ 전
요즘 미술계에 흥미 있는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화랑과 미술관, 박물관이 늘어나면서 기획 전시가 늘어나고 양질의 큐레이터들이 업계로 진출하면서 볼만한 기획 전시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역 타국의 미술가와 미술 운동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자주 개최되어 미술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현재 데이트 모던에서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 미술가, 데오 반 되스버그(Theo van Doesburg)는 20세기 모더니즘 미술 운동의 키가 되었던 데 스틸( De-Stijl)의 창설자겸 주도자였다. 데 스틸이란 영어의 스타일(Style) 혹은 양식이란 의미로 네덜란드 지역에서 시작된 미술 운동으로 회화 및 건축, 디자인 등 전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예술 운동이었다.
20세기 전 후 마치 비가 온 후 대나무 밭에 새순처럼 여기 저기 나타난 미술 운동과 유파는 대개 네 갈래로 나타난다. 첫째는 후기 인상파의 고흐와 고갱, 세잔느의 영향을 받고 나타난 사조 둘째는 산업 혁명과 근대화 과정으로 나타난 미술 운동 세 번째는 근대화 이후 시민들의 의식 변화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발표 이후 자아 발견으로 인한 미술 형식의 확장과 변화, 네 번째는 4대 문명의 발굴과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유럽의 전통적 가치관 붕괴 현상으로 미술에 미친 영향 등으로 나타난 사조이다.
데 스틸( De-Stijl) 미술 운동은 두 번째 산업 혁명과 근대화 과정으로 나타난 미술 운동으로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세션, 특히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미술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데오 반 되스버그(Theo van Doesburg)에 의해 주도된 이 미술운동은 1917년 잡지 <데 스틸>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네덜란드 작가들에게 소개가 되어 집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놀랍게도 네덜란드 지역에서 출발한 이 미술 운동은 당시 유럽 작가들에게 호응을 얻어 각 나라의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국제적인 미술 운동으로 확장된다.
데 스틸 미술 운동에 참여한 작가들은 당시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자아의 인식과 발달로 인한 개인적인 미술 경향인 주관적 세계관의 반영을 외면하고 보편적 세계관을 강조하며 시각적으로 지각된 리얼리티를 주제로 삼지 않는다.
이들은 시각적으로 지각된 리얼리티를 결코 주제로 삼지 않는다는 것, 예를 들어 직선이나 직각(따라서 수직선과 수평선만을 사용) 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3가지 원색(노랑, 빨강, 파랑 ), 3가지 무채색(백색, 회색, 검정색)등으로만 회화의 언어를 제한했다.
몬드리안이 적극적으로 데 스틸에 참여하면서 이 양식의 목적은 ‘예술작품을 순간적인 시각적 지각에서 해방시키고 예술가의 개인적 기질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미술 이론을 신조형주의"라는 용어를 새로이 고안해서 붙였다.
극단적으로 절제된 이 조형의식은 놀랍게도 건축과 디자인에 널리 파급되고 바우하우스의 조형의식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 전역에 한 사조로 마침내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몬드리안은 반 되스버그가 수평선과 수직선 중심에서 45도 각도의 사선을 추가하자 반발해 마침내 그룹에서 탈퇴한다.
그러나 데 스틸 운동은 소설가이자 화가이며 건축가이기도 한 데오 반 되스버그에 의해 많은 변화를 거듭하며 1930년대 초까지 유럽인의 미의식을 변화시켰다. 이 운동에 중심이 된 반 되스버그와 그 주변 작가들을 통해 데 스틸 운동은 물론 1920년대와 30년대 유럽 미술을 알 수 있는 볼만한 전시회가 현재 데이트 모던에서 열리고 있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본지에 세계문화사(유로저널)와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