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영국인의 이야기 4>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하고 사는 그 남자, 로버트 1.

by 유로저널 posted Jun 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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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1. 불행한 과거를 회상하는 로버트(캡처 화면)
2. 이제 새로 급성장해 만들어진 잉글랜드 중부의 작은 도시 Millton Keynes
3. 로버트가 살고 있는 주택지


<문화현장/ 영국인의 이야기 4>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하고 사는 그 남자, 로버트 1.


1.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를 만나다

로버트에게 인터뷰 허락을 얻어낸 후 이른 아침 일찍 난 Millton Keynes 떠났다. 잉글랜드의 중심에 있는 이 작은 도시는 9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급속하게 성장한 도시다. 로버트는 누이인 프란세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하며 방문 취재와 인터뷰를 허락했다. 전화 속의 목소리는 감정이 전혀 묻어있지 않은 아주 건조한 목소리였다. 이상하다?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 성장을 했는데 런던사투리인 코크니 발음을 그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프란세스가 일부러 쓰고 있는 미들클라스의 발음도 아니다.

수화기를 놓고 그의 음성을 다시 녹음기를 재생하듯 되새겨 보았으나 그의 성격이 조금도 가늠되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의 성격은 호흡으로 나타나고 그 호흡이 일상의 리듬으로 다시 재현되고 일상의 리듬이 음성의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당연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떤 삶의 리듬을 가지고 사는지 대개는 짐작해 낼 수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실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나 인터뷰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선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할 사항이었다. 프란세스의 말로는 이제 50대 초반인 동생은 같이 고아원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회사의 경비원으로 일을하고 있고 두 아들과 딸이 있다고 말했다.

양 손에 가득 장비를 가지고 기차에서 내리자마다 나는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아주 키가 큰 딸과 함께 서있는 것을 보고 그 임을 직감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나는 그의 차에 올라탔다. 원래는 따로 카메라맨과 녹음담당을 데리고 다녀야하는데 나는 경비를 절감하려고 늘 이렇게 무겁게 장비를 지고 1인 3역을 한다.

차에서 내가 새벽에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선물을 사지 못했는데 잠깐 슈퍼에 들러도 좋으냐고 그에게 묻고 다시 그의 딸 '피요나'에게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인터뷰료를 따로 지불하는 것이 서로 어색해 나는 하루를 뺏는 대가로 조그만 성의를 표시하고 싶었다.

슈퍼에서 나는 우아하게 꽃봉오리가 올라온 서양란 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꽃이 어떻겠느냐고 피요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꽃을 키우지 못해요. 금방 죽이고 말아요."
나는 그녀에게 아주 짧게 그러냐고 응답을 한 후에 식품 코너에서 치즈와 와인 등 몇가지 식료품을 샀다.
엄마는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라고 말한 피요나를 다시 곁눈으로 살핀다. 제 고모와 같이 장신의 키에 아주 늘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자랑하려는 듯 오늘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왔다. 그러나 피부의 영양 상태는 좋지 않았고 약간 부어있는 듯 했으며 얼굴엔 백치의 표정이 1분을 넘기지 못하고 흘러나왔다. 로버트는 아주 가정적으로 자상한 아빠였다. 건조한 전화 목소리와 달리 딸에게 자주 부드러운 미소와 시선을 던지며 묵시적 동의를 구하는 것을 나는 대화중에 엿보았다.

차는 집단주택지의 테라스하우스 앞에 섰다. 겨우 눈치레를 하기 위해 정돈된 듯한 공동가든은 분위기가 산만하고 음산했다. 집들은 얼마 되지 않은 새집들인 것 같은데 모두 치장을 하지 않아 낡은 페인트 색이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대부분 여유가 없는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드러나 보인다.

나는 그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갔다. 좁은 복도에 자전거가 놓여 있고 카페트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작은 주방에 테이블이 놓여있고 네 개의 의자가 보였다. 이 집은 네 식구다.

그의 안내로 나는 이층의 거실로 올라갔다. 계단에도 수북하게 먼지가 쌓여있다. 언제 청소를 했는가, 가늠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앉아있다. 리빙룸에 그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신인 로버트와 달리 부인은 거둥이 불편한지 아주 작은 키에 살이 몹시 찐 여자였다. 40대 중반인데 지팡이를 들고 있다. 그녀는 일어나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피요나가 자기 엄마는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라고 한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꽃을 키우지 못하니 당연 꽃을 피우지 못한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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