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현의 문화현장 - 영국인의 이야기 7>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하고 사는 그 남자, 로버트 4.

by 유로저널 posted Jul 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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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현의 문화현장 - 영국인의 이야기 7>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하고 사는 그 남자, 로버트 4.

 

긴 그들의 어두운 삶의 행적을 더듬다 보니 인터뷰는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구두 가게에서 점원을 하는 22살의 큰 아들이 일을 마치고 귀가를 해 나 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딸은 아빠를 닮아 아주 키가 크고 나름대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는 엄마 쪽을 탔는지 아주 작은 키에 뇌성마비를 앓은 흔적이 보였다. 도저히 구두 가게에서 점원을 할 수 있는 용모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주 밝고 긍정적인 청년이었다. 그의 엄마는 아들이 지난해 우수 점원 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하며 나에게 상패를 보여 주었다. 장비를 챙겨가지고 집을 나서려는데 로버트의 부인이 이렇게 말한다.

 "오늘 프로퍼 디너를 준비하는데 같이 식사를 하지요?"

 "제 것도 여분이 있습니까?"

 내 말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간다. 프로퍼 디너(Proper Dinner)란 말은 지금은 좀처럼 쓰지 않는 영어 단어다. 말 뜻 그대로 가난한 서민들이 오래 전에 힘든 노동을 하고 돌아와 저녁만이라도 낮에 다 써버린 에너지를 보충했으면 하는 희망과 바램 속에서 나온 청청하고 푸른 희망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굶주림이나 부족한 음식에서 해방된 선진국 사람들은 그 말들은 오래전에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처럼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오늘 그 말을 사용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염치불구하고 저녁을 얻어먹고 출발하기로 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프로퍼 디너 테이블에 앉았다. 낡은 비닐이 테이블보로 깔려 있는 탁자위에 스텐 나이프와 포크가 놓이고 빈 접시 4개나 깔렸다.

 드디어 내가 궁금해 하고 고대하던 프로퍼 디너(Proper Dinner)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오븐이 열리고 나온 것은 닭다리와 칩이었다.  음식들은 소중하게 접시에 분배되었다. 냉동된 체로 팔리는 봉지 닭다리와 역시 냉동 감자 칩으로 그것들은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마른 채로 마치 탈수기에 휘둘린 빨래처럼 건조하게 보였다.

샐러드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들 아무 맛있게 정찬을 들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교하며 길가의 튀김집에서나 사먹는 간식을 프로퍼 디너로 이름 하여 맛있게 먹는 로버트 식구들이 평소에는 어떤 음식을 먹는가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세습되는 불행과 거세된 불행의 그림자

 

 어제 보다 오늘이 조금 나을 수 있다면 그래도 행복한 것은 틀림없다. 로버트는 자기의 어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발목을 붙잡혀 살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없다.

  긴 다리를 들어 내 놓고 자기의 젊은 몸을 뽐내고 있는 피요나도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다니다 말았다. 자기는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녀의 삶이 그녀의 엄마보다 괜찮을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단지 운에 맡기고 오늘은 어제보다 나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희망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닌가?

  뇌성마비의 아들은 성실하게 점원 생활을 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자기 엄마보다 나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고아원에서 나온 로버트가 선택할 삶이란 처음부터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삶을 타인과 비교하거나 견주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불행이 어쩌면 이들에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불행은 자신의 삶을 밖으로 내걸고 타인과 견주고 비교함으로써 인식 되는 관념일 뿐이다. 어쨌든 가정의 불행은 대개는 세습이 되고 만다. 거부하며 안 받아들이려고 몸부림쳐도 오랜 세월 후에 돌아보면 딸은 어머니의 삶을 반복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닮는다.

 프란세스가 그렇게 벗어나려고 몸부림친 것이 바로 그 덫, 언제나 가정의 불행은 아이에게 되 물린다는 공식에 다시 발목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바로 55년간을 자기 삶에서 도망친 이야기이고 난 그런 이야기를 추적하고 있는 것 이다.

  뇌성마비를 앓은 데이비드가 선택할 삶의 폭은 역시 제한되어있다. 온전하지 못한 부부가 다시 날 자식들이 온전하게 커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허망한 꿈이라고 세상이 말하듯이 그 것에서 벗어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가정의 불행은 다른 것과 달리 언제나 세습되고 다른 형태의 불행을 잉태하고 만다.

 불행을 물려주고 세습해 주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그것을 물려 받아 가지고 살며 그것을 피하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고 그것을 모르는 체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든지 그것에게 뒷덜미를 잡혀 크고 작은 일상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삶을 늘 위협하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것과 친해지고 늘 곁에 두고 함께하며 즐기는 방법뿐이다. 그렇게 해야만 그 고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마치 조개가 자기의 연한 살 속으로 스며들어 찌르는 모래알과 끊임없이 타협하여 그것을 감싸 안고 살아 진주로 키울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어둔 밤 나는 런던의 작은 내 거처로 돌아오며 내 안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고 만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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