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tégrqle des symphonies de Mahler, Myung-Whun Chung)
지난 27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정명훈씨가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의 ‘말러 싸이클’이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가 남긴 10개의 대 교향곡을 연주해나가는 이 싸이클은 이미 프로그램이 발표된 직후부터 파리 음악계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역시 그 관심을 반영하듯 모든 좌석은 일찍부터 매진 되었고 이른 시각부터 연주회장은 말러의 음악을 들으려는 청중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말러의 교향곡들은 작곡 당시 그 규모와 내용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었지만 지금은 청중과 연주자가 선호하는 가장 확실한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곡이 워낙 대규모이고 연주하기도 까다로워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정명훈씨와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에게 있어서 이번 말러 싸이클은 매우 중요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나는 말러를 지휘하기 위해 지휘자가 되었다.
극장 로비 한 켠에는 정명훈씨와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CD 앨범 판매 코너도 마련되었고 이번 싸이클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프로그램 책자도 눈길을 끌었다. 10유로라는 다소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지만 말러의 모든 교향곡에 대한 충실한 자료들로 채워져 있어서 그 이상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 수록된 정명훈씨의 인터뷰 중 ‘나는 말러를 지휘하기 위해 지휘자가 되었다’는 대목은 그가 이번 말러 싸이클에 임하는 각오가 어떤 것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날 연주된 곡은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 남긴 미완성의 10번 교향곡과 젊은 시절의 제 1번 교향곡 <거인>이었다. 물론 곡 길이의 시간상의 이유일수도 있지만 그의 말년과 젊음의 시절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곡 배치였다. 마치 첫 장면에서 카메라는 노년의 주인공을 보여주다가 다시 그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영화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29일에는 제 2번 교향곡 <부활>의 연주가 있었다. 이 곡은 교향악의 신기원을 이룬 작품으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와 2명의 성악가, 합창단이 동원되는, 총 5개의 악장을 연주하는데 약 77분에 달하는 대곡이다. 3일안에 같은 악단이 말러의 3개의 교향곡을 연주한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이 모든 곡을 암보로 지휘한 정명훈씨의 능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진정한 마에스트로
정명훈씨의 연주회에 참석하면 항상 느끼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의 대한 프랑스인의 열렬한 사랑이다. 빈자리 하나 없이 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그의 손짓 하나하나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숨을 죽이며 빠져든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지휘봉을 내릴 때 그들이 받은 감동의 크기만큼 그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연주가 끝나도 좀처럼 그들은 정명훈씨를 그냥 보내지를 않기에 박수를 끝내기 위해 악장이 일부러 일어나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모든 박수를 단원들에게 돌리는 정명훈씨의 겸손함이다. 지휘자는 항상 단원들을 이끌어 나가야 하기에 권위적인 위치일 수 있지만 그는 항상 관중들이 보내는 영광을 먼저 단원들에게 돌린다. 단원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각 단원들에게 수고의 인사를 보낸 후에야 지휘대에 올라서는 그의 모습은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존경 받을만한 진정한 마에스트로의 모습이다. 그의 그런 모습이 개인주인적인 프랑스인 들에게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가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같은 한국인으로써 정명훈씨의 활약상은 우리에게 큰 자긍심과 희망을 안겨준다. 이 날 연주회장에 있었던 많은 한국인들도 나와 같은 감동을 받았으리라 믿는다.
이 곳 파리에서 우리의 지휘자가 들려주는 말러 교향곡 전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여러분에게 앞으로 내년 6월까지 계속되는 이 시리즈 중 한 연주회 정도 참여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 안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말러가 그의 음악을 통해 추구했던 삶의 풍요로움을 느껴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