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다니엘 하딩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Staatskapelle Dresden)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9번의 연주회가 있었다. 다니엘 하딩 (Daniel Harding), 현재 가장 주목 받는 차세대 지휘자 중 0순위의 인물, 영국 옥스포드 출신으로 이미 10대 후반에 당시 버밍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던 사이먼 래틀에게 발탁되어 그의 조수로 일하였고 그 후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눈에 들어 베를린 필의 어시스턴으로 활약하며 20세 때 베를린 필을 지휘한 청년, 작년 빈 필하모닉과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치었고, 현재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그리고 런던 심포니의 수석 객원 지휘자..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벌써 지휘경력 10년이 넘고, 세계 유수의 악단을 정복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
그의 지휘를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03년도인가 같은 장소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본 후 4년만이다. 더군다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또 연주하고 싶은 말러의 교향곡..확실히 그는 발전해 가고 있다. 그리고 얄미울 만큼 빠른 속도로 급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회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탁월한 재능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랜만에 듣는 독일 오케스트라의 소리, 확실히 프랑스 악단과는 차별된 정교하고 응집력이 있는 단련된 소리다. 특히 드레스덴의 현악기 군의 소리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좋은 소리로 유명하지 않은가.. 이런 악기를 가지고 말러의 교향곡을 지휘한다는 것, 정말 흥분되는 작업일 것이다.
죽음과 이별의 이야기, 말러9번
오스트리아의 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는 총10개의 교향곡을 남기고 있는데 교향곡 제9번은 미완성인 10번 교향곡을 제외하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말러 자신이 이 9번 교향곡에 주석을 달지는 않았지만 이 곡에는 죽음과 이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말러는 항상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도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로 그가 9번째로 작곡한 '대지의 노래'에는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선배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말러도 자신이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인 이 교향곡을 작곡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다른 말러의 교향곡이 그렇듯 이 9번 교향곡의 포인트도 각 악장 별로 들려주는 말러의 이야기이다. 1악장에서는 그의 갈망이 표현되어 있다. 세상에 대한 사랑, 평화로운 삶과 자연의 향유에 대한 갈망들..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9번 교향곡의 1악장을 말러가 쓴 것 중에서 가장 천상의 것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죽음의 무도"라고 일컬어지는 2악장과 말러의 쓰디쓴 웃음인 3악장 부를레스크(농담) 그리고 말러의 세상과의 이별인 4악장.
하딩의 지휘는 깔끔하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악보의 음을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대가에게서 느껴지는 원숙한 깊이는 느껴지지 않지만 가장 객관적이고 뚜렷하게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간다. 이 젊은 지휘자의 에너지 넘치는 지시에 장구한 450여 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드레스덴의 오케스트라는 때로는 웃고 또 때로는 울기도 하면서 정확하게 반응한다. 특히 슬프도록 아름다운 4악장에서는 슈타츠카펠레의 탐미적인 현악기의 소리와 더욱더 깊이 내면의 세계로 파고들어가려는 하딩의 노력이 빚어낸 명연이었다. 4악장의 종결부. 현악기만이 남아 말러가 악보에 적어놓은 ‘죽어가듯이’(ersterbend)라는 말처럼 점차 힘 없이 사라져갈 때 우리는 말러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 그의 가곡집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네 번째 곡의 선율이 들리는데 제1바이올린은 다음의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을 나오니 보슬비가 쓸쓸히 내리고 있었다. 이별을 이야기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