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밤거리는 요란하다. 많은 술집과 가게들이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영업을 하며 손님을 끌기 위해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는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걸으며 좌우로 보이는 건물들의 네온사인 불빛에 취하고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 흥분한다. 한국의 밤은 길다. 밤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은 곳들이 허다하고 마음만 먹으면 밤새 노는 것도 쉽다. 그래서 일까? 한국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인맥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업무가 끝난 후에도 다같이 유흥가로 향한다. 회사에서 나와 술 한잔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혹은 일을 마친 후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노래방을 가기도 한다. 몸이 지칠 때까지 실컷 놀 수 있고 늦은 밤이 되더라도 갈 곳은 많다. 그래서 사람들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고 내일의 업무를 위해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끝없이 이어지는 쾌락의 유혹을 떨쳐버리지가 쉽지 않다. 어느 나라보다도 업무 양이 많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는 한국이다. 그렇기에 시끄러운 음악이 넘치고 사람이 북적대는 한국의 거리는 어쩌면 한국인에게 소박한 자유를 가져다 주는 곳일 것이다.
여기 이런 한국의 밤거리의 모습이 영국의 그것과 다른 것이 있다. 바로 간판들이다. 건물마다 붙어 있는 간판들은 한국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물론 영국에서 간판을 볼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보여지는 모습이 다르다. 영국은 간판이 건물을 덮어 버리지 않는다. 적절한 곳에 간판이 놓여져 있고 주변에 있는 다른 가게들보다 더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너무 크거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한 색을 사용하지 않는 간판들은 건물의 구조와 거리의 풍경에 맞춰 자연스럽게 놓여진 듯한 느낌이다. 복잡하고 화려한 간판문화는 우리 한국인을 성격을 반영한다.
한국인들은 성격이 급하며 경쟁심이 강하다. 또한 우리는 쉽게 흥분하고 쉽게 분노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 민감하고 빨리 반응한다. 그래서 무슨 사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주변의 상항을 먼저 살핀다. 한국에서는 사업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 핸드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모바일숍이 인기를 끌었었다. 한 블록건너 하나씩 모바일 판매점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에는 간판이 내려졌다 하면 모바일숍의 간판이 달려지곤 했다. 또 몇 년 전에는 보드까페가 유행이 되기 시작했고 많은 가게들이 다시 간판을 내리고 후다닥 보드까페를 위한 새로운 간판들이 달기 시작했다. 이런 거리의 모습은 이제 아주 익숙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난 줄 곧 홍대 앞에서만 살았다. ‘홍대앞’이라는 말은 이제 문화적 트렌드를 의미한다. 예술이 만나는 거리, 그래서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홍대앞 가게의 주인들은 열정적인 젊은이들의 이러한 성향을 따라가기 위해 항상 그들의 기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서인지 영국에 살면서 한번씩 한국에 들려 홍대앞을 걷다보면 눈에 익은 가게의 모습을 찾는 것보다 새로 생긴 가게의 간판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홍대앞과 같은 쇼핑가나 유흥가를 가면 쉽게 간판이 내려지고 내부수리를 하며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 준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가게들의 주인들은 좀 더 강한 색과 한 눈에 쉽게 들어오게 디자인된 간판을 선택한다. 그리고 가게의 전면뿐만 아니라 달 수 있는 곳이라면 건물 옥상이나 측면 등 어느 곳이나 무작위로 간판을 단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의 사업가들은 매출을 지켜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관찰하려 들지 않고 되도록 빨리 좋은 성과를 얻고 싶어하고 경쟁업체들을 단기간 내에 따돌려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가격인하를 하거나 그들이 가진 상품들만의 특징을 과시하기 위해 또 다른 광고지들이 가게의 문이나 쇼윈도우의 유리창 위에 붙여놓는다. 그나마 이름 있는 브랜드나 백화점들의 간판들이나 광고포스터들은 통일성을 가지고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을 주지만 대다수의 가게들에서 들이대는 엄청난 양의 광고 프로젝트 때문에 거리의 모습은 항상 정신이 없다.
한국인들은 또한 ‘흥’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하루의 생활 끝에 쌓인 피로를 쌓아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간다는 것은 능률저하와 의욕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 숨가쁘게 돌아가던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펼쳐지는 네온사인의 반짝이는 풍경들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과도 같을 것이다. 어지러울 정도로 걸려있는 간판들은 우리들의 피로를 부는 회복제의 종류를 제시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간판의 디자인은 특이하거나 눈에 띌수록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은 실리적인 것을 미적 가치나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멋진 현대적 건축물의 아름다운 곡선을 무시한 채 그 위에 가게의 주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 간판들을 부쳐버린다. 가끔씩은 원래 빌딩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넘쳐나는 간판들과 그들이 말하려는 광고들이 우리를 압박해오기 때문이다. 간판 제작을 위한 디자인과 건축물 설계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서 대답한다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도시 전체의 미적 가치를 살리는 데에는 당연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사실 요즘 들어 특이하게 설계되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보이는 건물들이 많다. 그런 건물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길거리의 전체 모습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많은 재정적 투자와 긴 공사기간 끝에 세워졌을 그 보기 좋은 건축물들도 외관의 아름다움을 압박하는 간판들로 인해 특유의 개성을 상실하게 된다. 영국에서 보이는 가게들의 간판들은 적절한 곳에 적절한 광고판이 놓여져 있고 건물 전체가 주는 조형적인 미가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으로 여기는 듯 보인다. 전통을 사랑하는 영국인에게 뭔가를 ‘유지’한다는 것은 큰 의미일 것이다. 실리적인 것도 중요하나 건물과 거리의 미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간판을 거는 데에 있어 어떤 법적 제한 같은 것들이 있는 지는 모르겠다. 만약 한국과 영국의 제한 정도가 같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다를 것이라 장담한다. 왜냐면 ‘유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영국인들의 기본정신이 우리에겐 부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