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우아한 예술

by 유로저널 posted Dec 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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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영국문화나 생활을 되도록 많이 접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갑자기 한국이 그리워지고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얼마전엔 한국글씨가 가득  쓰여진 책을  읽고 싶어졌었다. 한국적인 감성이 담긴 한국어 표현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영어로는 미세하고 구체적인 감정에 관한 표현이 힘들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특히 한국어에는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영어는 좀더 단순하지만 말하고자하는 정확한 의미를 던지기 힘든 언어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영국생활 중 한국어 표현이 가득한 한국 소설책들을 읽는 것은 한국에 대한 작은 그리움을 떨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소설은 이론 서적과 같은 다른 책들과 달리 그 글을 쓴 작가에 의해 잘 꾸며진 이야기를 글 속에 담고 있다. 그 이야기가 허위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웃음을 짓기도 하고, 때론 슬퍼하기도 한다.  자신이 꼭 소설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판단하기도 하고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자신만의 엔딩장면을 만들어 보기도한다.  소설책을 읽는 이 과정들 속에서 외로움은 사라지고 마치 누군가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에 놓이게 되며 책은 곧 우리의 친구가 되어버린다. 아마도 이러한 특성때문에 소설 책을 보는 것이 한국에 대한 그림움을 퇴치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되는 것일 거다.

같은 집에 사는 영국친구에게 이런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어책을 읽으면서 조심스레 느껴지는 스트레스와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는  글의 의미들에 대한 아쉬움을 발견한다고 말이다. 그때 그 친구는 내 말에 동의해줬고 본인이 독일어를 잘 하면서도 독일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힘든 것과 같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내가 한국 소설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그 편안함 감정을 본인은 영어로 된 소설책을 보면서 느낀다면서 그 친구에게 있어서도 모국어에 대한 편안함이 있음을 알려줬다.  비록 나에게는 다양한 감정표현이 안되는 단순한 언어인 것 같지만 말이다.

그 친구가 한 소설가를 이야기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바로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2.7~1870.6.9이다.  그 친구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영국의 문인 세익스피어와 비교하면서 영국인에게 있어서는 찰스 디킨스의  문학이 사실 더욱 인기있다고 강조할 만큼 그 작가에 대한 친구의 열성을 표현했다. 그의 소설을 보면 영어로 표현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고 나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는 영어표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난 그 대화이후 바로 도서관에 가서 그의 인기있는 책 중에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를 빌려 보았다. 그 책을 한국어로 봤을 때 느껴던 흥분과 감동을 영문으로 찾아 보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어린시절처럼 디킨스  또한 빈곤의 고통으로 허덕여야 했다. 해군 경리국의 하급관리로 일을 하며 돈에 대한 관념이 부족했던 아버지 때문에 늘 가난함이 함께 했으며, 이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것 뿐만 아니라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을 했어야 했다.  19세기 전반기는 영국에 있서 경제부흥기라고 하지만 오히려 극에 치닫는 빈곤과 연소자를 혹사시키는 비인도적인 성향이 하층민을 상대로 행해지고 있었다. 이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체험을 그는 나중에 자신의 소설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16세가 되던 해, 법원의 속기사와 신문사의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썼던 글을 모아 단편 소품집인《보즈의 스케치》를 출판하면서 문학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고, 그 후 다양한 소설을 끊임없이 발표하면서 문인으로서의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들의 특징은 어린시절 직접 경험하면서 알게 된 사회의 어둔운 면에 대한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 디킨스만의 해학적이고 기발한 유머를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작품의 성향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한 하층민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을 통해 인기를 끌었으며, 살아 생전 문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1850년에 완결된 자서전적인 작품《데이비드 코퍼필드 David Copperfield》 쓸 무렵부터 그의 작품의 경향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디킨스 후기작품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는 이전의 작품에서와 같이 주인공 한 사람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더이상 글을 써 나가는 게 아니라,  많은 인물들이 작품의 중심이 되고  사회의 여러 계층의 모습을 폭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인 사회소설로 모습을 바꾸어갔다. 이러는 과정에서 디킨스만의 독특한 색이었던 어두운 면을 다루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웃을 수 있게 한 유머가 조금씩 사라지고, 사회의 벽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감과 좌절감이 표현되기 시작했다. \

하지만 이것이 그의 창작력이 쇠퇴했음을 말하는 게 아닌 것이, 끊이지 않고 내놓는 그의 독특한  작품들은 사람들의 인정을 계속적으로 받으며 그의 명성을 드높히고 있었다.  1870년 추리소설인《에드윈 드루드 Edwin Drood 》를 미완성으로 남긴채 세상을 떠났으며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되었다. 일부의 독자들은 그의 작품이 너무 감상적이고 저속하다는 비난을 던지지만 내용의 심각성과 해학을 함께 묘사한 그의 작품이 우수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의 역사를 보면 어느 예술장르보다 문학에 있어 강세인 것을 알 수 있다. 윌리엄 터너와 같은 유명한 화가도 있으나 영국의 문인들의 많은 작품들이 전세계를 통해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문학은 그림과 또다른 형태의 감동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미술 작품은 주로 작품과 보는 관객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화가의 살아 온 환경이나 과정을 안다면  그 작품 속에서도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줄 모르나 그것이 일반적이진 않다. 하지만 문학작품은 작품과 독자, 그리고 작가와의 대화인 것같다. 작품의 내용 속에서 작가의 정신과 생활 환경을 읽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작가의 성품 또한 느낄 수 있을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더욱 개인적인 감동이 크게 올 수 있다.

또한 문학작품은 미술작품과 다르게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더 길며 접하는 공간도 더욱 개인적이다. 책이라는 것은 잠자리에 들기전 침대에서도, 식사를 마친 후 의자에 앉아서도, 혹은 날씨가 좋은 날 공원에 누워서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시장에 서서 한눈에 감동을 전달받으려는 노력없이 편안하게 작품 속으로 다가갈 수 있다. 책을 읽을 때의 여유로운 시간속에서 작가가 써내려간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하면서 언어를 통한 엄청난 표현의 마술을 경험한다. 그래서 소설책이라는 것은 강하게 구축된 언어인 모국어로 읽을 때 그 감동이 큰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이 다시 또 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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