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독일의 유럽연합 정책을 비교연구한 필자는 독일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2004년 초 두달간 베를린에서 체류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구에 있는 조그만 원룸에서 기거했다. 크로이츠베르크는 터키인들과 태국인들 등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사는 구역이다. 이 곳에서 2개월동안 살며 독일 시민권을 획득했거나 시민권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보기술(IT)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독일 정부가 고급기술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 기술인력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으나 아직도 시민권 취득 과정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는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EU 회원국들이 고령화 진전에 따라 많은 고급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EU 차원의 공동정책은 아직도 요원하다.
“미국으로 가는 고급인력을 빼앗아오자!”
EU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현재 고급인력의 55%는 미국으로 가고, 5%만이 유럽으로 온다. 반면에 85%의 비숙련 이민자들은 유럽으로, 5%는 미국으로 간다. 즉 대다수의 고급인력들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고급인력들이 미국으로 향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독일이나 영국 등 EU 주요 회원국보다 미국의 보수가 높다던지, 교육환경이 좋다던지 혹은 입국 수속이 빠르다던지 하는 등이다.
반면에 미국에 고급인력을 빼앗기고 있는 EU 27개국은 각 회원국들이 매우 다른 이민정책을 취하고 있어 공동보조를 취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영국은 이민신청자들에 대해 점수제를 도입했다. 즉 이공계 기술자 등 고급기술 보유자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해 이들의 이민을 장려하거나 노동허가증을 내주고 있다. 독일도 유사한 정책을 이행하고 있으나 연방주의의 특성상 각 주마다 시행방안이 조금씩 달라 어려움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앞으로 20년안에 2000만명의 고급 노동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야심찬 제안을 내놓았다.
집행위원회 프랑코 프라티니 법무담당 집행위원은 고령화 진전과 출생률 저하를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국 고급인력 수용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27개 회원국간의 상이한 이민정책을 어느정도 조화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각 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과연 이런 제안이 얼마나 실천에 옮겨질지는 미지수이다.
초기단계의 이민정책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불법이민자들이 EU 회원국으로 입국한다고 치자. 이럴 경우 이들은 한 나라에 정착해 난민신청을 한다. 예컨대 독일에서 난민신청을 해서 기각당하면 이웃나라인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으로 옮겨 다시 난민신청을 한다. 이런 ‘이민쇼핑’을 방지하고자 EU 회원국들은 공동비자정책, 난민규정에 대한 합의를 이뤄 이민정책의 일부분에 대해 회원국 모두에 적용되는 공동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정책은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미국의 그린카드(영주권)에 비교할 수가 없다.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 한 회원국에서 일단 2년간 일한 고급인력의 경우 체류를 연장해주고 5년간 거주하게 되면 영주권을 주자는 제안을 했다. 한 회원국에서 영주권을 얻은 사람은 다른 회원국 어느 곳에서도 거주하며 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제안이지만 실행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다. 각 회원국마다 이민정책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며 회원국들의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분야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권한을 넘겨 집행위원회의 지시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각 회원국이 노동력 수급상황에 맞춰 이민자 정정책에 대한 융통성을 유지하려 한다.
이처럼 27개 회원국 입장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언제 집행위원회의 정책이 실행에 옮겨질지 매우 불투명하다.
이미 2년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전상황은 없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EU 회원국들이 고급 인력 부족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까? 상이한 입장을 지닌 회원국들이 의견조정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안병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