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유럽연합(EU) 무시하는데 EU는 계속 분열
‘빅스리’가 좀 더 단합해야 대중국 정책 실효 거둔다
유럽연합과 중국은 1998년부터 연례 정상회담을 개최해오고 있다. 이번에도 다음달 체코 프라하에서 EU를 대표, 유럽이사회(회원국 수반들의 모임) 순회의장국인 체코와 중국 지도자간의 정상회담이 있다. 이 정상회담에는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회 위원장도 참석한다. 또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중국은 EU의 두 번째 교역상대국이다. 10만명이 넘는 중국 학생들이 EU 각 회원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며 EU는 중국과의 교역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 양자간의 무역분쟁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최근 런던소재 유럽외교관계협의회(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http://www.ecfr.eu/, 이하 ECFR)는 EU의 대중국 포용정책이 실패했고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신랄한 톤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서 분석한다.
무조건적인 포용정책 실패...‘빅스리’ 좀 더 단합된 목소리 내야
ECFR은 EU의 대중국정책이 중국이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인 1980년대에 기반을 둔 정책이어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즉 “무조건적인 포용정책”(unconditional engagement)은 중국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게 되면 중국의 민주적 개혁을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 여전히 중국시장은 폐쇄적이고 시장개방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들이 유럽시장에 거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데 반해 중국시장은 유럽기업들에게 까다롭다. 복잡한 산업정책과 불투명한 절차 때문에 중국에 상품을 수출하려는 유럽기업들은 자주 어려움을 겪는다. 또 중국의 부동산 시장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은 제한되어 있다. 2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소유한 중국이지만 미 국채를 많이 구입했고 유로존(단일화폐 유로를 채택한 16개 회원국)의 채권 등은 별로 구입하지 않았다.
대중국 인권정책은 더 심각하다. 20여년동안 EU는 중국에 대해 인권개선을 촉구했지만 회원국들이 단합된 목소리를 내지 않아 별로 효과가 없다. 티벳의 달라이 라마 접견을 두고도 독일, 프랑스, 영국간의 아무런 협의가 없이 각 자 정책을 수행하기에 몰두했다. 중국이 강력 반발해 보복정책을 운운하자 3개국은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 주요 3개국(빅스리)이 달라이 라마 접견에 대해 공동된 입장을 취했더라면 중국도 이들 3개국을 한꺼번에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3국이 ‘각개격파’를 하다보니 중국이 3개국에 강압적인 요구를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ECFR은 분석한다.
중국이 자원외교 때문에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미얀마(舊 버마)와 수단 정부에 대한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EU가 미얀마와 수단에 제재를 가해도 중국이 신경을 쓰지 않아 별로 효과가 없다. 중국에 대한 압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해야 이들 두 개 국에 대한 EU의 정책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EU 27개 회원국의 인구는 4억8800만명,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이다. 경제적으로 거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분열되고 있고 중국이 이를 적절히 활용, 상당한 실익을 챙기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한다.
조건부 포용정책 필요
ECFR은 무조건적인 포용정책을 버리고 조건부 포용정책을 권고한다. 중국이 이란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취하겠다는 것을 대가로 대중국 무기금수(1989년 천안문 사태이후 부과)를 해제해야 한다.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해 EU는 대화를 지속, 이를 단념키시려 하고 있다. 유엔안보리 상임의사국으로 거부권을 보유한 중국이 EU의 입장을 지지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국은 EU에 시장경제지위(market economy status)를 부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EU는 이를 거부했다. 유럽기업들에 대한 무역장벽을 해제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면 이런 지위 부여를 검토해 줄 수 있다고 협상카드로 이용해야 한다.
티벳의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도 개별 회원국들이 중국을 상대해 당하지 말고 EU차원에서 단합하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협의회의 분석이다. 즉 27개 회원국 수반들이 달라이 라마를 접견할 권리 제한에 반대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면 중국도 개별 회원국들을 보복할 수 없다. 27개 나라가 한 목소리를 내면 중국도 이런 블록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는 것.
보고서를 작성한 존 폭스와 프랑스와 고드망 선임연구원은 이같은 정책권고를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회원국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것이다. 말로는 국익을 내세우지만 득표 요인이 되면 이를 얻기 위해 열중하는 게 보통이다.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의 대중국 정책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중국과 EU는 2007년 무역관계에 치중된 양자관계를 격상시키기 위해 포괄적 파트너십 협력협정을 협상하고 있으나 아직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양자간에 시장개방과 정치협력 등 여러 가지 문제에서 논란이 있다.
EU는 미국, 러시아 관계와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중국을 중요한 국가로 여기고 있다. 시장규모와 국제정치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ECFR은 2007년 10월 설립된 범유럽적 싱크탱크로 요시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과 마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등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런던과 파리, 베를린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EU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 외교협의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를 모델로 EU의 외교안보정책을 분석비판하고 있다.
안 병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