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국제통화기금 지원 받아
동유럽 가운데 그래도 괜찮은 편
폴란드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05억달러의 자금지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경제파탄으로 정부가 바뀐 헝가리보다 폴란드 상황이 괜찮다고 하지만 IMF지원까지 받았으니 심상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 경제는 동유럽 국가 가운데 선전하고 있다. IMF 자금지원도 이전과 다른 성격이다. 우선 폴란드를 개괄적으로 살펴본 후 항목별로 분석한다.
폴란드-- 방대한 국토에 경제는 낙후
2004년 2월 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도이체반(독일철도) 기차를 타고 10시간에 걸쳐 폴란드 크라코우시에 도착했다. 크라코우에서 버스로 1시간 내 정도 거리에 있는 2차대전 당시 나치 집단수용소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보았던 바로 그 집단수용소 모습이었다. 눈 쌓인 들판에서 인간 잔혹성의 극한을 생각해보며 이곳을 다녀간 젊은이들이 남긴 메모도 읽었다. 특히 독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 역사적 과오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며 남긴 글이 필자의 주목을 받았다. 허름한 폴란드 기차를 타고 대학생들과 대화도 나누었고 역전에서 우리 육개장과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물가가 싸다고 생각했다.
베를린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반 정도 지나니 폴란드로 접어들었다. 최첨단 문명에서 우리나라 60년대 농촌으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국경도시만 이렇게 후미지고 시골이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8시간 넘게 폴란드를 가로지르며 지켜본 대도시 풍경도 너무나 낙후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폴란드 국토면적은 31만평방km로 남북한보다 약 1.5배 크다. 반면에 인구는 3800만명이 조금 넘어 남한보다 적다. 지난 2004년 5월 EU에 가입한 8개의 중동부유럽국가 가운데 국토와 인구면에서 제일 크다. 반면에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만7300달러(구매력평가기준, 2008년말)로 27개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중하위권에 속한다. 국토는 크지만 경제는 낙후된 폴란드. 1980년 자유노조 운동으로 동구권 자유화 운동의 불씨를 당겼고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경제는 그리 좋지 못하다.
IMF로부터 205억달러 지원 확보
지난 1997년 12월초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대기성차관(stand-by loan)을 지원받았다. 원래 회원국이 납입한 자본금의 2배 이내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5배정도인 180억달러를 대출받았다. IMF는 자금지원의 대가로 긴축재정과 함께 고금리정책을 주문했다. IMF가 '나는 해고되었다‘(I am fired)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된 것도 이런 요구조치가 가져온 결과때문이었다.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실업자는 넘쳐나는데 정부가 긴축재정을 해야 하니 실업자 구제나 다른 대책에 쓸 자금여력이 별로 없었다. 또 물건을 많이 판 기업들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받을 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고금리로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았다. 은행들은 자기자본 비율을 충족시키기위해 대출연장을 꺼렸고 자금회수에 바빴다. 이러다보니 흑자도산이 난 기업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볼 때 폴란드의 IMF 자금지원확보는 국제적으로 별로 좋지 않을 듯하다. 국제시장에서 폴란드 경제가 좋지 않아 IMF에 손을 벌렸고 자금지원의 대가로 긴축재정 등 IMF의 주문이 잇따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설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가 확보한 IMF 자금지원은 이런 국제사회의 낙인을 피하기 위해 새로 제정된 차관이다. 최근 IMF는 유동크레딧라인(Flexible Credit Line: FCL)이라는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경제기반이 굳건하지만 일시적으로 자금이 필요할 것 같은 국가들에게 오버드래프트(overdraft), 즉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주는 식이다. 폴란드 정부는 최대 205억달러의 마이너스 통장을 확보했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이 액수 내에서 자유롭게 자금변통이 가능하다. IMF도 이 자금지원책을 공표하면서 경제가 망가진 회원국이 아닌 괜찮은 회원국 대상이며 이전의 자금지원처럼 엄격한 조건도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FCL에 관심이 없다고 수차례 정부당국자가 말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국언론에 우리나라도 FCL 대상국으로 자주 거론된다.
올 해 헝가리 경제는 마이너스 3.3%의 성장이 예상된다(이하 IMF 4월 경제전망). 27개 EU회원국 경제의 1/3을 차지하는 독일경제는 올해 마이너스 6% 성장이 예상된다. 반면에 폴란드 정부는 1.7% 플러스 성장을 내다보고 있으나 IMF는 마이너스 0.7% 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발트3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에스토니아는 마이너스 10%, 라트비아는 마이너스 12%, 리투아니아는 마이너스 10%정도이다. 물론 영국이나 독일 등 다른 EU회원국에서 일하던 폴란드 국민들이 이곳 사정이 좋지 않아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3월말 실업률은 11.2%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레흐 카진스키 대통령도 의료보험과 연금, 노동시장 개혁 등 제한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후반기 한차례 더 악화될지 아니면 완만한 회복세가 천천히 계속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쨌든 폴란드는 다른 동구권 국가가운데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폴란드 상황을 분석하며 폴란드가 동부유럽 다른 나라와 경제적 상황이 매우 다르지만 한국과 매우 흡사하고 멕시코와 약간 비슷하다로 결론짓고 있다. 우리나라와 폴란드, 과연 경제상황이 얼마나 흡사한지 계속 지켜보자.
안 병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