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정말 바쁜 나날이다. 학교 공부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기타도 가르쳐야 하고, 한국인에게는 영어를, 외국인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쳐는 일도 하고. 남들은 일 구한다고 고민인데 그래도 좋아하는 일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힘들어도 즐겁게 버텨보려 노력한다. 그런데, 생활이 빡빡해지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는 기타도 정작 레슨 할 때만 잠깐 잡아보는 게 영 기타한테 미안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제 지친 내 마음에 휴식을 주기 위해 오랜만에 나를 위해 기타를 다시 잡았다. 보통은 연주가 많을 땐 2주에 한 번 정도 새 줄로 바꾸곤 했는데 벌써 줄을 갈아 끼우지 않은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그윽한 울림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가움과 정겨움을 가득 담아내며 내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그렇게 즐겨 부르던 노래들과 함께 기타를 연주하다 보니 어느새 바쁜 일상도, 지친 몸과 마음도 오간데 없고 그저 나무의 향기가 건네는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노래를 따라 또 다른 세상을 여행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어느덧 기타라는 내 생애 가장 멋지고 소중한 친구를 만난 지 햇수로 14년 째 접어든다. 그리고 그 14년 동안 기타와 함께 잊지 못할 수많은 순간들을 보냈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 방에서 조용한 속삭임으로만 함께 했던 그 기타와 함께 신앙생활도 하게 되었고, 힘들었던 군생활도 함께 해주었으며, 미국에 있을 때도 세계 33개국에서 모인 이들에게 내가 만든 노래를 들려주며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고, 이 땅에서도 수많은 값진 순간들을 간직하게 해 주었다. 아마도, 평생토록 곁에 두고 내 마음을 함께 나누는 그런 벗으로 같이 늙어갈 것 같다. 언제나 기타를 연주할 때나 기타를 가르칠 때도 늘 그것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위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의 영혼에 휴식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친구를 소개하는 것, 기타를 가르칠 때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유난히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이 지면을 통해 기타라는 그 소중한 친구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려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꼭 기타가 아니더라도,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 음악을 늘 곁에 두고 벗삼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글로 인해 또 어느 누군가의 삶에 음악이라는 행복의 이유가 하나 더해질 수 있다면 더 없는 기쁨이 되리.
필자가 처음 기타를 잡은 것은 중학교 3학년 겨울이었다. 아무래도 필자의 기타 인생을 얘기하려면 외삼촌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다. 필자의 외삼촌은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으로’와 같은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은 듀엣 해바라기의 리더 이주호씨이다. 어렸을 적부터 삼촌이 TV에 나오면 그렇게 신기하곤 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는 직접 삼촌의 공연을 보러 다니며 통기타의 남다른 매력에 빠져 들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89년 처음으로 삼촌 콘서트에 초대를 받아 갔던 대학로의 동숭아트센터 공연. 한참 ‘사랑으로’를 발표했을 때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고 몇몇은 자리가 없어 통로 계단에 앉아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통기타 두 대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율, 삼촌은 악기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기타와 하나가 되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때의 감격으로 인해 조금씩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음악들은 사이몬&가펑클, 존 덴버, 닐영과 같은 통기타가 주로 사용되는 미국의 포크음악이었다. 통기타라는 소박한 악기와 함께 그들이 전하는 노랫말은 진실되고 깊이가 있었다. 서태지가 대한민국 음악계를 뒤집고 있을 때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60, 70년대의 음악을 차례 차례 섭렵해 나갔다. 영국의 록그룹 퀸도 참 좋아했고, 당시 드물게 재즈박사였던 사촌형의 영향으로 재즈도 접해 보았지만 역시 통기타 소리가 가장 좋았다. 그렇게 음악에 빠져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듣는 것도 좋지만 내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드디어 93년 겨울, 한푼 두푼 모든 돈으로 어머니와 함께 낙원상가(종로2가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악기매장)를 이잡듯 뒤져서 당시 가장 저렴했던 3만 5천원짜리 통기타를 구입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