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들

by 유로저널 posted Mar 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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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까지 열심히 연재했던 ‘나무의 향기가 건네는 노래’를 한 주 쉬어갈 만큼 중요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죽마고우 친구녀석이 아들을 낳은 것이었다. 누구나 평생토록 함께 하는 소중한 벗이 있게 마련, 필자는 평소 그런 친구가 열 명만 있다면 그 인생은 정말 성공한 인생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바로 이 친구야말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쩌면 그 너머의 시간까지도 함께할 것 같은 그런 벗이었다. 이제 불과 서른 남짓한 삶, 그러나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다섯 살 적이었고 그 이후 우린 20년이 넘는 시간을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언제나 서로의 가슴속에 함께 살아 숨쉬며 삶의 휴식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로 지내왔다. 무수히 많은 추억들이 기억 저편에 빼곡히 놓여져 있어 언제든 그리울 때면 꺼내볼 수 있도록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다. 꼬마 시절엔 같은 태권도장, 같은 유치원을 다니다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두 학년을 같은 반에서 보내기도 했다. 우리가 얼마나 텔레파시가 잘 통했냐 하면 초등학교 때 전교에서 개학날짜를 착각해서 하루 먼저 학교에 온 학생들이 전교에 몇 명 없었는데 우린 딱 교문 앞에서 만났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진학하고 이사도 다니면서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은 줄었지만 우린 늘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그렇게 군대에 가서도 우린 군 전화를 통해 서로의 음성을 듣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첫사랑을 만나고 이별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연들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취업으로 고민하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렇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이제 아저씨가 되어갈 즈음 영국에서 그 친구녀석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 녀석의 결혼 축가는 꼭 불러주려 했었는데, 결국은 열심히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높아진 결혼 평균연령 탓도 있겠지만 유난히 필자의 친구들이 비범한(?) 탓인지 그 녀석의 결혼이 친구들 중 처음이었고, 꼬마 시절부터 함께한 녀석이 한 가정을 이루어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이 가질 않았다. 뭐랄까, 이제는 예전처럼 밤을 지새우며 함께 놀 수(?) 없을 거라는 서글픔과 나보다 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뭔지 모를 권위마저 느껴지는 게 영 기분이 묘했다. 아마도 이미 무수히 많은 친구들의 결혼을 경험해버려 무덤덤해져 버린 선배들은 처음 맞이했던 친구의 결혼이 어떤 느낌과 어떤 의미였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그렇게 친구 녀석은 어엿한 유부남으로, 필자는 여전히 여행 같은 삶을 만끽하던 중 이번 주에 첫 아기로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친구들 중 첫 2세의 탄생이었다. 더더욱 실감이 가질 않았다, 친구 녀석이 애 아빠라니, 친구 녀석을 닮은 새로운 생명체가 존재하다니! 얼굴도 모르고 도무지 상상도 가지 않는 친구녀석의 아들에게 까닭 모를 친근감과 애정이 느껴진다. 아마도 당분간 한국에 갈 계획이 없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실제로 그 녀석을 만날 수 있겠지만,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된다. 친구의 아들은 나를 뭐라고 부를까? 성민 삼촌? 아니면 성민 아저씨?

정신 없는 생활로 하루 하루를 숨가쁘게 지내던 중 접한 친구의 아들 소식은 문득 지나온 우리들의 삶, 그리고 벌써 이만큼 흘러온 세월의 속도와 그 모든 시간들 속에 흐르고 있는 삶에 대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다섯 살 적 함께 골목을 뛰놀던 그 친구녀석과 내 모습이 눈앞에 선한데 언제 이렇게까지 먼 길을 온 것일까? 아직 친구녀석 아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실제로 친구의 아들을 만나려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이 지나있을지 모르지만 그저 그 사실만으로도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닌, 알게 모르게 지나쳐온 시간의 곳곳에 어쩌면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삶의 경이로움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모두의 삶이, 그 순간 순간이 더없이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통해 또 맞이하게 될,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수많은 삶의 순간들이 설레임으로 기다려진다. 삶이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이유가 되는지, 얼마나 열심히, 소중히 보내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성훈아, 이제 우리가 정말 어른이 되었나 보다… 축하한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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