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술가의 죽음

by 유로저널 posted Apr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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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한 통의 전화를 통해 너무나도 가슴 아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런던에서 활동하고 계셨던 Visual Artist(시각 예술가) 천정 선생님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었다.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예술 분야는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작품은 조명과 영상, 사운드의 조화를 통한 종합예술이었고, 런던에 오시기 전 뉴욕이나 다른 곳에서도 활동을 하신 바 있으며, 무엇보다 런던에 오신 뒤 ‘런던-아시아 프린지 네트워크’라는 커뮤니티를 만드시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다양한 분야의 한인 예술가들이 함께 공유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와 공연을 기획해오셨기에 그 분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필자는 천정 선생님에 대해 그다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작년 가을 아시아 하우스 공연 때 본인이 직접 참여하지 않으시는 공연임에도 기꺼이 공연 스탭을 자청하시고 최선을 다해 도우시던 모습이 참 인상이 깊었고, 그 뒤에 재영 예술인들의 모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만나 뵙게 되었다. 개인 신상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알기로는 나이는 40세 초 중반쯤, 결혼은, 아마도 예술에 대한 열정 때문에, 안 하신 걸로 알고 있고, 당시 만났을 때만 해도 너무나 건강해 보이셨는데 갑작스레 지병이 악화되셔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무엇보다 필자가 기억하는 천정 선생님은 정말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시고 예술혼을 불태우시던, 그리고 예술가로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인격과 예의를 갖추신, 한 인간으로서도 참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사실, 필자가 나름대로 이제껏 겪어온 많은 예술가들 중 대부분은 예술에 있어서는 최고였음에도 인격이 부족한 분들이 참 많았었는데, 무엇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서로간의 화합을 위해 자진해서 애쓰는 사람은 아마도 천정 선생님이 유일했던 것 같다. 다소 서로간의 화합이 부족해 진통을 겪던 재영 예술인들에게 화합과 배려를 강조하시면서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예술가들이 마음껏 예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던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한데, 아직도 필자의 메일 보관함에는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 속에 선생님의 따스한 웃음이 서려 있는데…

당시 특별한 친분도 없고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에도 그런 선생님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훌륭한 인격에 반한 필자는 언젠가 교포사회에서 언론인이 되면 꼭 선생님을 소개하고 인터뷰를 하리라는 다짐을 했었는데 이제는 너무 늦어버려 그저 죄송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러 번 건네던 “다음에 한 번 따로 봐요” 라는, 이제는 영원히 지켜질 수 없는 그 마지막 인사가 너무도 야속하게 떠오른다.

선생님이 재영 예술인들을 위해 만드신 카페(http://cafe.naver.com/nomadart.cafe)에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올리신 글이 남아 있다. 런던에서 활동하시는 한 공연기획자의 사무실 개업을 축하한다는 선생님의 마지막 메시지, 마지막 모습도 언제나 그렇듯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남겨놓고 떠나신 선생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포사회의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면서, 예술인들 조차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모습에 속상해 하시면서, 본 공동체를 통해 예술가들이 그저 맘 편히 예술에 몰두하고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던 선생님, 그럼에도 당신은 본 공동체의 리더가 아닌, 그저 돕는 이라고 하시면서 재영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성화 되면 당신은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시겠다던, 그렇게 아무런 욕심 없이 해맑으시던 분이셨는데…

선생님의 아이디와 애칭은 Waterbuddha: water(물)+buddha(붓다), 즉 ‘물을 붓다’였다. 사실, 선생님의 아이디가 이런 뜻인지를 알게 된 것은 기독교인인 필자에게 마치 부처를 연상시키는 ‘buddha’라는 아이디가 조금 신경 쓰일지도 모른다고 (물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고 오히려 선생님의 세심함과 순수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배려하신 선생님께서 친히 설명해 주시면서 ‘종교 생각하기 없기 입니다’라고 웃어 보이셨던 까닭이다.

‘물을 붓다’, 아마도 그토록 선생님께서 갈망하셨던 예술의 물을, 사랑과 화합의 물을 가시는 곳마다 부어주고 싶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계신 그곳에서도 또 그 아름다운 물을 붓고 계실 선생님, 영원토록 평안하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시아 프린지의 기능은 예술의 상호교류와 현대예술의 새로운 방향모색입니다. 정보 교환처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현대예술의 진로를 탐색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프린지는 서구 속에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찾으려는 꾸준한 노력과 그 정체성 찾기를 한자리에 모으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의 한민족의 정신적인 결집을 꾀하는 통로로서 자리매김을 하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프린지라는 자유로운 예술정신이 기초하고 있으며 결국은 서구 속에 아시아의 단면을 보는 중요한 거울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 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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