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인 5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들었다. 가정의 달인 관계로 이어지는 각종 기념일과 또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결혼소식으로 분주한 한국의 5월이 들려온다. 영국으로 떠나오기 전 2005년 5월에는 필자도 통기타를 메고 아름다운 가정들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여기저기 축가를 부르러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리고,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간 대학시절, 5월의 캠퍼스를 젊음의 열기와 낭만으로 장식했던 축제의 풍경들도…
필자가 대학 신입생이었던 1997년은 IMF가 몰고 온 경제한파가 이제 막 우리 사회를 뒤덮으려 하던 시기였기에 갓 신입생으로 IMF라는 용어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몰랐던 필자는 물론이고, ‘대학졸업=취업’이라는 오랜 등식을 믿어 의심치 않던 선배들 조차도 장차 우리 나라를, 특별히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들을 이렇게 어둡고 긴 터널로 몰아넣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조금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대학 입학 후 몇 달간은 날마다 이어지는 각종 술자리에 M.T로 마치 대학입학을 위해 고생했던 지난 12년 간의 한(?)을 푸는 나날들로 이어졌고, 대학에서 처음 치르는 시험, 즉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도 선배들은 1, 2학년 때는 학점 신경 쓰지 말고 맘껏 놀고 나서 군복무 후에는 교수님들과 잘 지내기만 하면 된다는 오랜 전통(?)을 들먹이며 그나마도 미약했던 신입생들의 학습의지를 초토화시키곤 했다. 그 와중에 시험을 치르는 대신 레포트 제출로 중간고사를 대체해준 배려심 많은(?) 교수님들의 인기가 수직 상승한 반면에, 학년 초장부터 지나치게 까다로운 시험을 출제하여 미운털이 박히게 된 교수님까지… 그렇게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고 나니까 축제라는 것을 한단다. 고등학교 시절의 축제가 단순히 학생과 선생님들이 참여하는 업그레이드된 학예회 수준의 행사였던 데 비해 대학의 축제는 분명 한 차원 높은 그것이었으니, 캠퍼스 노천극장에서 김건모와 같은 국민가수의 공연을 볼 수도 있었고, 각 동아리들도 그 동안 갈고 닦은 동아리만의 내공(?)을 선보이며 신입생들의 가입 유치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온종일 요란하던 캠퍼스에 어둠이 내릴 무렵에는 각 학과와 동아리에서 마련한 야외주점이 캠퍼스 곳곳에 들어서며 학교는 초대형 야외 선술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선선한 봄바람이 불던 캠퍼스의 야경을 배경 삼아 마음 맞는 선배, 동급생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나누던 수많은 얘기들… 그 땐 이성에 대한 대화들이 그렇게 재미있고, 별 의미 없는 가벼운 농담들도 그렇게 즐겁고 신이 났던 것 같은데,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루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돈을 벌고 또 그 돈으로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덧 서른 즈음의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이 항상 즐겁고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슬픈 진리를 몸소 경험해버린,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 내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어버린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축제의 밤에 쏟아냈을 그 수많은 이야기 속의 내 자신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순수와 진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과연 지금 이순간 얼마나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비록 그 시절 간직했던 순수함과 열정이 퇴색된 부끄러운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라도 실망하기 보다는 남은 나날들 동안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가리라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해 보려 한다.
우연히 한국의 뉴스를 통해 요즘 한창인 대학가의 축제가 지나친 음주와 무절제한 방탕으로 얼룩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학생들의 지나친 음주와 무절제한 행태는 분명 각성해야 될 문제지만 보도는 그들의 행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다룰 뿐 그들이 겪고 있는 혼란과 고민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군 제대 후 미국 연수까지 마친 뒤 다시 찾은 2003년의 캠퍼스는 분명 필자가 신입생이던 그 시절의 캠퍼스와는 또 다른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졸업 즈음에나 보게 되는 토익과 같은 영어점수 확보, 취업전략과 준비를 이미 신입생 시절부터 치열하게 시작하는 새내기들의 낯선 모습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었고, 학점에 대한 열의는 고교시절의 그것 못지 않았다. 물론, 학생이 공부에 전념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부지런한 것은 결코 흠잡을 일이 아니지만, 그러한 현실적인 대비뿐만 아니라 내적인 소양을 가꾸고 그 시절만이 가져볼 수 있는 꿈과 열정, 순수와 낭만을 만끽할 기회를 왠지 먹고 사는 주제에 송두리째 내어준 채 너무 일찍부터 차갑고 딱딱한 사회물을 들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지나친 음주나 일탈행위도 어쩌면 그런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허탈감, 더군다나 점점 힘들어져 가는 입시 경쟁 속에서 상처받은 젊음을 그렇게나마 위로 받고 싶은 것은 아닌지… 축제의 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그들은 어떤 그림으로 축제의 밤을 추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