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사랑하고 이러한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면서, 언제부턴가는 단순히 이러한 것들을 향유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나 자신이 그러한 활동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들이 생겨났던 것 같다. 흐르는 세월에도 그러한 바램들을 버리지 않고 미련하리만치 오랜 동안 간직해오다 보니 어느새 단 한번도 직접 만나보거나 목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내 안 깊숙한 곳으로부터 흘러나온, 그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음악이나 글을 통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과연 동시대를 살아가는, 특히 동년배의 젊은이들 가운데 과연 몇 몇이나 오랜 동안 바래온 소중한 꿈을 펼쳐가고 있을지를 떠올려 보면 이렇게 글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말 그대로 즐기면서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에게 의문점이 들었다. 그것은 ‘과연 나는 내가 노래하고, 내가 글 쓰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매우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즉, 음악을 통해, 또 이렇게 글을 통해 그려내는 풍경이 실제 내 삶 속에서 발견되는 풍경과 일치하지 않음에, 아니 더 솔직히는 일치할 수 없음에 대한 성찰이자 두려움인 것이다. 부르는 노래의 가사로는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만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현실 속에서 나는 그러한 사랑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글을 통해 아름다운 느낌들을, 살아가는 매 순간이 소중할 수 밖에 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과연 나 자신은 현실 속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희망찬 일들로만 삶을 꾸려가고 있는지 반문해 볼 때, 나의 노래와 나의 글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부족한 모습, 성숙하지 못한 인격과 아름답지 못한 마음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나 아닌 누군가가 이렇게 매체를 통해 그려지는 내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 사이에 놓여진 부끄러운 차이점들을 알아챌까 두려움마저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매체를 통해 겸손하고 온유해 보이는 이미지를 표방하던 작가나 문화예술인을 비롯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들의 그러한 이미지와는 다른 실제 모습, 혹은 평소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해온 그의 사상이나 마인드와 부합되지 않는 언행이나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결국 어떠한 자리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결국은 별반 다를 바 없이 약점도 있고, 때로는 부족하고 못난 모습도 보이는 평범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매체를 통해 인식된 이미지와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실제 이미지가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더 이상 매체를 통한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영화 역사상 위대한 걸작으로 꼽히는,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십계’, ‘벤허’와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미국 명배우 찰턴 해스턴, 성경 속의 인물 모세를 연기했고, ‘바이블 루트’와 같은 다큐멘터리에도 해설자로 출연하는 등 그의 이미지는 마치 실제 모세와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었지만, 미국의 총기문제를 다룬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미국 총기협회의 회장이며 매우 냉정하고 불친절한 인물이라는 실제 사실이 공개된 뒤로는 가끔 ‘십계’나 ‘벤허’를 봐도 예전과 같은 감동이 살아나지 않았던 것 같으니 말이다.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똑 같은 사람일 뿐이다. 목사님도 완벽하게 자신의 설교 내용처럼 살 수 없고, 가수도 자신의 노랫말처럼 살 수 없고, 글 쓰는 사람도 그 글의 메시지처럼 살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 공감이 되면서도, 이렇게 부족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내가 과연 글을 통해 고귀하고 아름다운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갈등에 휩싸이게 될 때면, 어쩌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Communicator, 즉 대중과 의사소통을 하는 이 역할이 때로는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단 한 명의 영혼에게라도 그에게 도움이 될 그 무언가를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부족한 나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들을 흘려 보내본다, 글 쓰는 것처럼 살지 못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