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너무나 아파 보인다. 지난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들려온 충격적이고도 가슴 아픈 소식이, 그리고 여전히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 가운데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살아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슬픔에 떨고 있을 사람들… 그런데, 대한민국이 진정 아파 보이는 것은 이들의 슬픔으로 인한 아픔보다는 그러한 가운데 1분 1초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목소리들 때문이리라.
각 분야의 전문가, 관련자는 물론이고 거의 온 국민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의견과 감정을 쉴새 없이 쏟아낸 적이 있던가?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하고픈 이야기는 여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수천 개의 답글 논쟁과 함께 저마다 핏대를 세우며 쏟아내고 있는 ‘누가 잘못했냐?’, ‘무엇이 잘 못 되었냐?’, ‘누구의 책임이냐?’에 대한 지리한 논쟁이 아니다. 이미 그러한 목소리들은 모든 언론을 비롯 일반인들의 입에서도 쉴 새 없이 들려올 텐데 굳이 그러한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에 한 입 보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있는 전체적인 그림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뿐.
‘Freedom of expression’, 즉, ‘표현의 자유’가 마음껏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 특히나 인터넷의 무지막지한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어쩌면 모두가 저마다의 의견을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라도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그로 인해 좋았던 점들도 참 많았다. 그러한 일반인들의 의견과 보고를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일어났고, 진흙 속의 보석처럼 묻힐 뻔 했던 사람과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빛을 보기도 했으며, 이 외에도 참 많은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인터넷 성장속도에 비해 우리들의 인격은 한참 더디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턴가 마치 마음 속에 가득한 차갑고 날카로운 감정의 찌꺼기들을 작성자의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어느 누구의 제재도 받을 것 없이 마음껏 갔다 버리는, 마치 쓰레기 처리장이나 화장실 같은 양상으로 인터넷 공간이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이런 저런 사회적인 이슈들로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감정이 쌓여왔던 차, 이번 일로 그렇게 누적된 갈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통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에 대해 토론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에 대한 의견이라면 한 마디도 입밖에 내고 싶지 않다, 다만 보이지 않는 불특정의 그 누군가를 향해 서로 할퀴는 그 모습들이 너무나 무섭고 속상하다.
사실, 필자도 처음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했다. 언론 공부를 하고 실제 언론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얘기가 아닌, 내 나라 대한민국의 얘기인데다 기독교와 관련된 얘기인데 아무런 의견도, 아무런 감정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게다. 더 솔직히는 인터넷 여기 저기에 쏟아진 의견들 중 내가 하고 싶었던 그런 얘기를 속 시원히 쏟아낸 것을 보며 은근한 간접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누군가의 이해하지 못할 의견에 냉소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피랍된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문득 요 며칠간 이번 사건과 관련된 내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지금 이 시간까지도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워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슬픔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일들이 끝나고 나면 옳은 이야기이든, 틀린 이야기이든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던 그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는 분명 크건 작건 보기 흉한 상처가 오래도록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무엇인가 잘못을 했을 테고,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반성하고, 개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침묵이 더 나은 때가 있는데, 아마도 지금이 바론 그런 때인 것 같다.
침묵하자. 저 사진 속의 테레사 수녀님은 침묵하고 있건만 수녀님의 침묵은 그 어떤 목소리보다 우리 가슴에 큰 울림을 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