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에 눈물을 흘리던 유년 시절이 지나고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로 접어들면서는 더 이상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방법들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그렇게 빠져든 게 바로 음악이었다. 잠시 동안 음반 가게를 운영하셨을 만큼 음악을, 특히 클래식을 참 좋아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아마도 세상 빛을 보기 전부터 이미 날마다 음악 속에서 지냈을 터, 혼자서 잠을 자기 시작하던 다섯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시절까지 어머니는 내 잠자리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나가셨고, 그렇게 음악은 내 성장기를 함께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삼촌을 보러 갔던 해바라기의 공연을 처음 보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해바라기 음악과 함께 마침 막내 이모가 놔두고 간 올드팝 LP들이 집에 있어서 무심코 들어본 노래들이 참 좋았다. 비록 조금은 촌스러운 듯 하고, 화려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 노래들은 최신 유행가가 갖고 있지 않은 깊은 정서를 담고 있었고, 이후 어머니께 부탁해서 예전 음악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갔다. 지난 ‘나무의 향기가 건네는 노래’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기타를 처음 구입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던 겨울이었고, 그 전까지 정말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당시 모든 청소년들의 로망이었던 소니 워크맨을 선물 받고 어찌나 기뻤던지, 그 시절 3, 4천원이면 카세트 테이프를 구입할 수 있었고, 용돈으로 받은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음반 가게에 들어서면 그렇게 흥분이 되고 즐거웠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또래는 열 명 중 아홉 명은 음악감상을 취미라고 할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음악을 즐겨 들었던 터라 특별히 내가 음악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당시에는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자다가도 음악이 듣고 싶어 일어나서 음악을 틀던 기억과 함께 늘 음악을 틀어놓고 잠자리에 들던 버릇이 지금까지도 이어진 것을 보면, 또 그 시절 즐겨 듣던 음악들을 아직도 즐겨 들으며 행복에 잠기는 내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한 때 듣는 음악이 아닌, 평생을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로서의 음악이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나누기로 하고, 그렇게 혼자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음악 덕에 외로움이 주는 고통이 조금씩 덜해져 갔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는 똑같이 외로움이 느껴지더라도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어갔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점점 더해져 갔다. 단순한 오락으로 즐기고 떠들면서 영화를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한 편의 영화가 주는 수 많은 느낌들을 혼자 있는 시간에 곱씹어보고 그 감성에 빠져드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흔히 혼자 자란 사람들이 내성적이고 숫기도 없어 자칫 자기 표현도 못하는, 감정도 메마르고 별 생각이 없는 무미건조한 인간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 혼자 자란 사람들의 내면에는 여럿이 어울려 자란 사람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광대하고 역동적인 그 무엇들이 가득한 것 같다, 다만 숫기가 없어 그것들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해 타인들이 도무지 알아챌 수 없는 까닭일 것이다. 필자도 한참 숫기가 없고 소극적이던 어린 시절에는 속으로는 오만 가지 생각과 느낌이 가득했을 지라도 밖으로 표현을 하지 않아 대부분 필자를 멍청하게 봤을 것 같다. 한 번은 아버지 친구분들과 가족동반으로 놀러 가서 다른 애들은 다 노래도 잘 하고 어울리는데 필자 혼자 끝까지 노래는커녕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해 속이 상하신 부모님이 웅변학원에 보낼 정도였으니. 지금은 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외국인들 앞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노래를 하고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언제 다시 한 번 그 시절 자리했던 아버지 친구분들 가족을 뵐 수 있다면 한 시간은 너끈히 라이브 공연을 선사해 드릴 자신이 있는데. 아무래도 혼자 있다 보면 상대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이나 말을 통해 표출하는 시간보다 혼자서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노릇, 필자도 그렇게 많은 느낌과 생각들이 가득했을 텐데, 다만 그것이 외부로 표출되지 않다가 기타를 치기 시작하고, 사람들 앞에 서기 시작하면서 외부세계와의 담이 허물어졌던 것 같다.
마음 속 깊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쓰여졌을 수 많은 이야기들, 비록 그 어린 시절 혼자 있음이 무섭고 슬퍼서 흘렸던 눈물과 들어줄 사람 없어 다물었던 쓸쓸한 침묵으로 인해 점점 더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갔던 덕분에, 그렇게 많은 느낌과 생각들을 수도 없이 내 안에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던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상보다 길어진 까닭에 한 주 더 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