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만 쓰는 재미에 스스로 빠져버려 이렇게 긴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외로움을 테마로 하는 내 자신의 지난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때론 가엾고, 때론 행복하고, 때론 부끄러운, 그러나 모두가 아름답고 소중한 그런 사연들, 아마도 이 이야기들을 통해 나누고 싶었던 것은 필자와 같이 혼자 자란 이들에게는 세상과 좀 더 어울릴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이, 또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혼자 자란 이들을 향한 따스하고 너그러운 이해와 포용의 마음을 가져주길,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배워가며, 그렇게 아름답게 어울리는 세상을 향한 한 자락 바램이 아닐까 싶은데…
본격적으로 외로움을 즐기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혼자서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러 다니는 일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그 동안 저축해둔 용돈을 들고서 혼자 영화도 보고, 밥도 사먹고, 뮤지컬 공연을 보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쏘다니는 게 공식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분명 또래 친구들을 보면 그런 짓(?)을 잘 안 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그렇게 감성을 공유하고 문화에 빠져들 단짝을 못 만나서가 아니었을까? 당시만 해도 외진 곳이었던 일산에 살면서 서울로 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니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들어도 어울리기가 쉽지 않고, 입시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기도 여의치 않다 보니 자연스레 더 혼자되는 시간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음악, 영화에 더 깊이 빠져들고 기타에 몰두했던 것 같다. 그렇게 혼자만의 세상에 흠뻑 취해 있다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그나마 터득하기 시작한 건 고3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였고, 대학 시절 첫사랑을 만나면서 비로소 함께 손을 잡고 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난 뒤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깨달으면서 비로소 세상살이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진정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에는 냉정하리만치 무심한 버릇은 여전히 남아서 때로는 건방지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고, 죽을 때까지 함께할 ‘내 사람이 아니면 남’이라는 구분이 유난히 심해서 때로는 인정머리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사실은 미국에 있을 때도,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그리워서 때론 눈물까지 글썽이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에게도, 어린 시절 자주 어울리던, 역시 외아들이었던 사촌 동생에게도, 또 사촌 형들에게도, 무엇보다 부모님께도 참 이기적으로 굴었던 스스로의 부끄러운 모습이 수도 없이 떠오른다. 외로움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닫고, 차가운 가슴으로 저질렀던 어리석음이 야속하기만 하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가져다 준 두려움과 슬픔을 피해 나를 둘러싼 담을 너무 높이 쌓은 나머지 비록 그 안에서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법을 터득했지만, 그 높은 담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에는 그러한 어리석음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분명 혼자 자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이기적인 부분이 본능적으로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악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기적이지 말아야 하는 부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형제, 자매들과 어울리며 그런 것들을 자연스레 터득한 이들과는 달리 그럴 만한 기회와 깨달음이 부족해서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조금 X가지가 없어 보이거나 바보같이 보이더라도 그들을 조금만 배려해주고,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면 그들 또한 어느 누군가의 훌륭한 벗이, 어느 사회의 아름다운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자란 이들 또한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참 이기적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힘든 노릇, 20대가 넘어서야 비로소 그런 스스로의 단점을 발견하게 되지만 이미 20년의 세월을 통해 습관화된 부분을 쉽사리 고치기는 참 어려운 것 같고, 필자 역시 오늘 이순간에도 그 부분과 씨름하고 있다.
외로움으로 인한 두려움과 슬픔은 분명 고통스러운 그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것들이 참 많다. 그리고 더 솔직히는 만일 다시 시간을 거슬러 형제, 자매와 함께 자랄 기회와 또 다시 혼자 자랄 기회를 선택하라 한다면 혼자 자라는 길을 선택할 것 같다. 혼자 자라지 않았더라면 맛보지 못했을 소중한 행복들, 많지는 않지만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나의 사람들, 혼자이기에 느끼고 간직할 수 있었던 수많은 생각과 꿈들이 지금 이 시간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게 해준다. 외로움은 소중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