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제 CD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한때 대표적인 대형 음반 체인점 중 한 곳이었던 SKC 플라자의 음반 판매사업 철수 및 음반 매장 폐점에 관한 기사였다. MP3와 디지털 음원의 도래로 사람들이 더 이상 하드디스크, 즉 CD, LP, 카세트 테잎과 같은 음반들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뉴스는 이미 수년 전 얘기지만 이렇게 또 추억 속의 음반점이 문을 닫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씁쓸해 오기도 하고, 문득 지난 시절 음반점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추억들이 새삼 떠오른다.
지금도 변함없이 음악을 곁에 두고 있는 필자는 아직도 첫 음반을 샀던 기억이 생생하다. 필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부모님과 가끔 서소문 쪽에 있는 유명한 콩국수집을 갔다가 (지금은 좋아하지만 당시만 해도 편식이 심해서 그 좋은 콩국수를 끝까지 입에 대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역시 유명한 전기구이 통닭을 먹는게 정해진 코스였는데, 그렇게 맛난 저녁을 먹고 근처 음반점에서 서부영화음악 테이프를 산 것이다. 당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석양의 무법자’같은 영화들을 보고 나서 서부영화음악에 푹 빠졌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음반 모으기는 형제 없이 혼자였던 필자에게는 더 없는 취미였다. 어린 시절이라 혼자서 시내 번화가를 나갈 수 없었던 관계로 주로 동네 음반점을 이용했는데 음반점에 들어설 때마다 벽에 진열되어 있던 수 많은 음악들이 어찌나 어린 음악팬을 설레이게 했던지… 아무래도 값도 저렴하고, 당시 모든 학생들의 로망이었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다보니 LP보다는 카세트 테잎을 주로 구입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음반점이 홍대앞에 있던 ‘미화당’이었다. 동네 음반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다양한 음반들을 정신 없이 구경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뒤로 찾은 음반점은 당시만 해도 흔치 않게 재즈를 듣던 사촌형을 따라 찾아간 대학로의 ‘바로크 레코드’, 아마도 한국에서 음악 좀 들었다 하시는 분들은 익히 알고 있을 역사적인 음반점이다. 필자가 태어나던 해인 1979년도에 개점한 만큼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음악의 마법에 걸려 그 곳을 방문했을까… 특히, 단층이 아니라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LP 보유량도 상당했었다. 한국에 있는 필자의 방에 지금쯤 뽀얀 먼지를 덮어쓰고 있을 수 많은 음반들 가운데 바로크 레코드에서 구입한 음반을 따로 골라낼 수 있을 만큼 참 기억에 남는 음반점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닐 만큼 성숙(?)했을 때 찾았던 음반점이 바로 종로 2가의 저 유명한 ‘뮤직랜드’였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당시 필자와 함께 음악에 미쳐있던 구본국이라는 친구와 종로 2가 허리우드 극장에서 상영하던 ‘클리프 행어’를 보러 갔었다. 상영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비도 오고 해서 비를 피해 우연히 어느 건물로 들어섰는데 ‘뮤직랜드’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지하로 내려가서 발견한 매장은 정말 진정한 대형 음반점의 그것이었다. 몇 시간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반들을 구경하면서 행복에 겨워하던 우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뮤직랜드’에서 구입한 음반 중 가장 아끼는 것은 미국 컨트리 가수 존 덴버의 공연 실황을 담은 두 장짜리 LP, 아마 지금은 정말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일 듯.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넓던 LP코너가 줄어들더니 이내 매장에서 자리를 감추었고, CD의 시대가 왔던 것 같다. 필자가 군 제대 후 종로에서 영어회화 수업을 듣던 2001년도 까지만 해도 편안하게 ‘뮤직랜드’에 들러 샘플 음반을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하던 기억이 난다.
2007년 지금, 위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음반점들 가운데 홍대 ‘미화당’을 제외한 ‘바로크 레코드’와 ‘뮤직랜드’는 이제 그곳을 찾았던 이들의 기억 속에만 자리할 뿐 자취를 감춘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이 외에도 ‘신나라 레코드’, ‘타워 레코드’ 같은 대형 음반점들도 폐점을 했고, 그나마 교보 핫트랙스나 온라인 음반매장이 남았을 뿐. 다행히 신촌의 명물 ‘향 레코드’는 아직 존재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음반을 구입하지 않고, 또 좋은 음악들도 많이 줄어든 까닭에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적인 장소로라도 보존되어야 할 곳들이 어이없이 사라져간 것이다.
분명 음반점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단순히 음반이 매매되는 곳 이상의 장소였으리라. 어린 시절에는 주로 어머니와 함께 음반점을 찾곤 했던 기억들, 구본국이라는 친구와 몇 시간씩 음반점에서 죽치면서 즐거웠던 기억들, 새로 구입한 음반을 들어본다는 흥분으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던 기억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음악을 통해 얻었던 보석과 같은 기억들… 그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을 잃어버린 것 같아 슬프다. 부끄럽지만 필자 자신도 최근에는 음반을 구입한 기억이 거의 없고, 어느덧 MP3 플레이어를 애용하고 있으니…
서울의 어느 지하철 역에서 늘 음악이 흐르던 작은 음반점이 기억난다. 지친 도시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샘물 같은 존재였는데… 그 곳은 지금까지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