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 그 잔인한 착각 (1)

by 유로저널 posted Nov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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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이맘때 서울 은평구에 있는 덕산 중학교라는 곳에서 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을 치렀다. 워낙 지난 일들, 소소한 순간들을 또렷이 기억하는 필자인 탓에 지금도 정확히 기억난다. 수능 전날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고 혼자 집 앞에 있는 대중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탕에 앉아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던… 그 뿌연 거울 속에 스포츠머리를 한 18세의 전성민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마도 이제 곧 남은 인생의 항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을 기다리는 비장함, 두려움 그리고 ‘이제 해방이다’라는 홀가분함이 교차했던…

누구나 그랬겠지만 그 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인생의 절반은, 아닌 3분의 2 이상 성공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또 수능으로 대학 입시의 한판 승부를 강요하는 우리 나라의 미개한 교육제도 탓에 정말 그 ‘수능’이라는 존재의 무게감과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것이었다.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물질적, 정신적 희생도 각오가 된 사람들, 그리고 그 수능 결과로 스스로의 인생 등급을 매겨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 그 모두가 어우러져 있는 우리 사회. 어느덧 수능을 치른 지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나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 또 외국의 사회를 종합해서 돌아본 바, 내린 결론은 수능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어리석게, 또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잔인한 착각’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실 영국으로 오기 바로 직전인 2005년까지도 필자는 고3 및 재수생들의 수능 과외를 꾸준히 해 왔던 덕분에, 또 외국어고 대비 토플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해왔기에 지속적으로 매 해 수능 문제를 살펴보고, 또 직접 풀어볼 기회가 있었다. 적어도 필자 개인적인 의견은 아직 수능은 그저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시험, 또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기회를 ‘주기 위함’이 아닌 ‘박탈하기 위함’에 가까운 시험이라는 결론이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주제로 다음 기회에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어쨌든 이 수능 한 방으로 마치 그 사람의 인생이 함께 한 방에 판가름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정말 미련하고도 잔인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단순히 누구의 잘못이냐 라고 할 수 없는 사회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그 접근과 분석, 또 개선책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주제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수능을 잘 못 봤을 어느 10대 청소년의 마음에 검은 먹구름이 끼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리고 그러한 검은 먹구름을 더욱 검게 만드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답답하다. 대학입시로 자살하는 청소년이 있는 국가가 과연 전 세계에 몇이나 될까?

아직 그리 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고, 또 남달리 내세울 것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필자가 과연 수능이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입시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자격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생각과 느낌을 나눌 수 있는 이 공간이 허락된 만큼 개인적인 발언을 하자면, 이제껏 직접 겪어보고 또 지켜본 결과 수능은 결코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한 위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인생에서 거쳐가는 한 단계 정도, 또 더 솔직히는 수능이 과연 대학 공부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변별하는 시험이냐 하는 문제인데, 필자의 의견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 자신의 삶, 필자의 친구들, 또 여러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중에서 수능 결과로 인해 인생에 어떠한 실질적인 영향을 받은 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수 많은 젊은 영혼들이 수능으로 인해 더 높고 큰 꿈을 품을 자유조차 박탈당하면서, 때로는 가족들로부터, 또 친척들로부터, 지인들로부터, 또 우리 사회로부터 무언가 낮은 등급의 인간인 것처럼 취급 받는 현실이 너무나 어리석고 잔인하다는 것이다.

비록 수능은 잘 못 봤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재능, 그 사람의 꿈과 가능성은 일개 시험일 뿐인 수능으로는 절대 측정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대학과정을 통해 어떠한 한 분야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만 수능을 잘 보면 되는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저마다의 삶의 항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게 우리 교육이, 또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오늘 수능을 마친 대한민국의 젊은 영혼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서, 수능이 인생의 전부라는 잔인한 착각에서 깨어나 수능보다 더 소중한 앞으로의 삶을 위해 더욱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길 당부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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