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노래와 우리들의 숨결이
나이 서른에 어떤 뜻을 지닐까
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에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만남과 우리들의 약속이
나이 서른에 어떤 뜻을 지닐까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 우린 들을 수 있을까
백창우
2008년, 진짜 서른이 되었다. 변함없는 서른 즈음이건만 더 이상 나이 앞에 ‘스물’을 붙일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코흘리개 시절 열 살이 되었을 때의 그 감격스러움이 엊그제 같은데, 스무 살이 되어 ‘이제는 어른이구나’ 라는 우쭐함에 사로잡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이 서른에 우린’ 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과연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면서 서른 살이 된 내 모습을, 내 삶을 그려보곤 했었는데…
영국으로 떠나오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인생을 달리기 시합이 아닌 여행처럼 살고 싶다’라는 글을 남겼었다. 그리고 지금 서른 살의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감사하게도 진짜로 여행 중인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달리기 시합과 여행의 차이는 간단하다. 달리기 시합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지만 여행의 목적은 매 순간의 느끼고 배움에 있다. 달리기 시합은 누가 이기는가를 지켜보는 시선에 신경 써야 하지만 여행은 나를 바라보는 다른 이의 시선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 달리기 시합은 결승선을 통과하고 난 뒤 밀려드는 허무함이 있지만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설레임이 기다리고 있다. 달리기 시합을 강요하는 세상에 굴하지 않고 여행을 택할 수 있었던 소신과 용기가 있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서른 해의 흔적들을 하나 둘 찾아보다 우연히 예전 군 시절 혹한기 훈련장에서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다. 제대를 몇 달 앞두고 있던 병장 시절 제대 전 마지막 혹한기 훈련 때 아침 햇살을 보면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후임병이 찍어준 사진. 눈부신 햇살 그 자체만으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던, 무언가 불끈 샘솟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꿈과 열정 앞에서 나이 서른의 내 삶을 가만히 비춰 본다. 지난 시절의 내가 현재의 나를 봤다면 부끄러워 할 모습들은 없는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가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참 많은 얼굴들이, 또 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감사하게도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얼굴들도 있지만, 이제는 기억 외에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도 참 많다. 울었던 기억들과 웃었던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아름답게만 떠오른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 얼굴 또한 아름답게 떠오를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제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았던 들, 제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들,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도 없는, 돌이키고 싶은 일은 일이 하나도 없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 순간 감사할 수 있는, 매 순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마인드를 간직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그런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에서 오는 것일 게다.
지난 서른 해를 보내면서 감사한 일을 하나 둘 세어 본다면 아마도 어마어마한 숫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평소 그 어마어마한 숫자의 감사를 잊고 지낸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좋은 것 열 개를 움켜쥐고서도 안 좋은 것 한가지로 인해 불평하고, 원망했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내 가진 것이 적다고 분명 나보다 적은 숫자의 감사를 가졌을 이들에게조차 베풀고 지내지 못했던 것 같다. 서른 해 동안 누군가에게 준 것들보다 받은 것들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부끄러운 사실 앞에서 다가올 서른 해 동안에는 주는 것들이 받는 것들보다 더 많아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이들보다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아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서른 살, 더욱 아름답고 더욱 따스한 여행길에 오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