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노예들 (3)

by 유로저널 posted Feb 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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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교육 시장, 특히 영어 관련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 백 만원의 개인 과외, 외국인 강의, 셀 수 없는 학원, 인터넷 강의까지, 그 시장 규모를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 되고, 사회 전반에 치열한 경쟁의식이
자리를 잡다 보니 사교육을 통해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한국인의 고유한(?) 성격 상, 옆집 아이가 ABC를 하면, 내 아이는 My name is~를 읊어댈 수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민족 아닌가? 문제는 타 과목들과는 달리 영어는 단지 남보다 잘하기 위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만 주력해야 하는 과목으로 인식될 경우,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말 그대로 영어 과목을 남보다 잘하는 괴물(?)을 양성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 자신이 다양한 사교육 시장에 몸 담았던 바, 영어 교육과 관련하여 많은 학부모들과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다른 아이들이 하니까 내 아이만 낙오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사교육에 투자 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만족을 느낄 때는 아이가 초등학생일 경우 영어로 똘똘하게(?) 의사소통을 할 때이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다른 아이들보다 영어 성적이 잘 나와서 좋은 대학에 무난히 갈 것처럼 느껴질 때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녀가 어릴 경우에는 실용 영어에 열을 내다가도,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면 점수로 그 능력을 측정하는 영어, 가령 학교 영어 시험, 수능, 토플에서 고득점을 얻도록 열을 낸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따라 사교육 시장도 철저히 분화되어 있다. 어떤 학원도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영어와 높은 시험 점수를 내기 위한 영어를 동시에 잘 가르치는 경우는 없다. 외국인이나 교포 강사들을 내세워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용영어를 가르치던가, 아니면 단어 암기, 문법, 독해 등을 주종목으로 하는, 실용 영어에는 약하지만 전통적인(?) 영어 교육에는 강한 강사들을 내세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물론 가끔 욕심을 부리거나, 아무 개념 없이 이 두 가지를 배합하다가 망하는 학원들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부모의 눈에는 영어 도사라도 된 듯 보여지는 그들이 영어를 진정 언어로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받아들였냐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오랜 관찰 결과 불행히도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끔 보면 유치원, 초등학생 꼬마들이 혀를 굴려가며 똘똘하게 회화를 구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는 뿌듯함에 거의 자지러지고, 상대적으로 그보다 회화를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의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자녀가 그 수준을 능가할 수 있을까 하면서 온갖 궁리와 함께 자녀들을 닦달한다. 그 속에서 영어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든, 못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든,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영어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영어를 부모의 강요와 또래와의 경쟁을 유발하는 매개체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10년 넘게 지속될 영어 교육에 혹사당하고도 실제 의사소통 수단으로 영어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민사고, 외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중학생들은 필자조차 모르는 단어들을 수백, 수천 단어씩 외우면서 힘겨운 전쟁을 하는 가운데 이미 영어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으며, 영어를 못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 무능력자로 취급받을 것에 대해 근심하고 있던 고등학생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어의 그릇된 지배력은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그 세력을 확장해가면서 직장을 다니는 어였한 사회인이 되어서도 토익이나 회화학원을 다니면서 사교육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게 된다. 물론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은 이들은 이러한 사교육의 마수에 걸려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한탄할 것이다.

오늘 필자가 언급한 부분은 사실 전체적인 사교육 문제의 지극히 작은 부분만을 다룬 것이다. 사회 전체가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영어와는 상관 없는 경쟁체제를 설정해 놓고, 또 그 경쟁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의식에 가득차 있는 상황에서 영어 사교육 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는 복합적인 사안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단순히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 몰입교육이나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수업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비정상적인 영어 사교육 현상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인수위가 제안하고 있는 방법으로는 현재의 영어 사교육 현상을 오히려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이다.

인수위원장을 비롯, 이번 영어 교육 개선 방안을 내놓은 분들은 과연 자신들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우리 나라의 영어 사교육을 이용했는지, 이용했다면 진정 자신들이 제안하고 있는 방법으로 영어 사교육 현상을 해결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지, 우리 나라의 영어 사교육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다른 어떤 방법을 이용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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