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상처가 아물고

by 유로저널 posted Mar 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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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참 많은 일로 실망 하고, 또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실망하고, 화를 내는 그 이면에는 결국 그것이 상처가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실망과 분노의 감정 그 깊은 곳에는 결국 상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그러한 상처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워지지 않은 채, 때론 유사한 일들을 겪으면서 더욱 깊어지기도 하고, 아니면 어떠한 계기로 치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 바로 필자 자신에게 있었던 상처 하나가 아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이 공간을 통해 종교 얘기를 꺼내지 않으려는 작정을 했던 바,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발생한 일이 등장하며, 교회는 종교기관이 아닌,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로서의 배경으로 등장할 뿐이라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약 10여년 전 교회를 다니고, 본격적으로 교회에서 음악(비 종교인들을 위해 찬양이라는 단어는 자제하려 한다)을 하면서 교회 내의 다양한 인간 관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정말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어느 누구보다 참 착하고, 바르고, 인정도 많은 그런 좋은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을 수가 있을까, 또 이 좋은 사람들과 평생토록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갖게 되고,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인가를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언제나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들만은 아니었고, 그 가운데 필자를 상당히 실망하게 했던 것은 그렇게 좋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교회였음에도, 정작 그 교회에서 일한 부목사님이나 직원들이 떠날 때에는 대부분 별로 아름답지 못한, 따뜻하지 못한 모습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 실망은 내가 믿는 종교, 성경, 아니면 단지 그러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 어떤 누군가에 대한 실망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렇게 아름다운 속에서도 동시에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필자에게 남긴 상처였던 것이다. 물론, 세상살이에서 그런 일들은 항상 일어나는 일들이며(심지어는 성경에서도 사람들 간에 아름답지 못한 일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교회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 만큼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필자가 교회에서만큼은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따스한 그 무언가를 기대했던 탓이었을까?

그러한 실망이 다소 강도가 높아져 화가 나는 것에 가까운 일이 생긴 것은 필자가 영국에 오고나서 생긴 일을 전해들으면서였다. 필자가 속했던 음악팀이 어느날 갑자기 교회 방침에 의해 공중분해 가까운 일을 겪으면서, 그 동안 음악팀을 위해 가장 열심히 했던 분들을 하루 아침에 붕 뜨게 만든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역시 교회 방침을 비판하려거나, 아니면 역시 그 일에 책임이 있는 누군가를 지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필자 역시 영국으로 오기 전까지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을 몸담았던 팀이었고, 그리고 그 팀을 위해 누구보다 수고했던 분들을 진정 존경하고, 사랑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실망과 분노는 억누르기 쉽지 않았다. 일반 세상에서 직장을 관둬도 정말 안좋은 일로 관두는 게 아니라면 소주 한 잔 사주면서 행운을 빌어주는데, 비록 그 분들이 돈 한 푼 안받고 자신의 신앙과 교회를 향한 애정에서 봉사했다 해도 그렇게 매정한 결말을 가졌어야 했는지 지금도 참 답답하다. 그리고, 역시 그것은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이곳 영국에서도 그와 같은 일들을 목격하면서 상처는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러다가 지난 주 일요일, 조그만 교회에서 협동목사님으로 계시던 분이 다른 교회의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아 떠나게 되는 송별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사실, 그 교회에 대해서도, 담임 목사님이나 떠나는 협동목사님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어떤 모습의 헤어짐을 보게될지 내심 궁금하면서도, 혹시나 이번에도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드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까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마침 그날 설교는 특별히 떠나는 협동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기로 되어 있었고, 담임 목사님의 간략한 송별소식 안내와 함께 이윽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설교 가운데 협동목사님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교회에서 지낸 얘기들을 전하시다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그것에 얼마나 감사히 생각하는지, 자신은 떠나지만 자신이 있던 교회의 앞날을 함께 기원하며, 그리고 앞으로도 아름다운 관계를 계속 갖기를 바란다는 아름다운 말들을 쏟아내셨다. 설교가 마친 뒤에 담임 목사님 역시 협동 목사님과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아름다운 말들을 전하면서, 헤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곳을 향하는 분께 축하와 축복을 건내자고 하셨다.

그렇게 아름다운 헤어짐을 처음으로 목격하면서 까닭모를 뭉클함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답지 못한 헤어짐도 있지만, 또 이렇게 아름다운 헤어짐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게 된 것에 너무도 감사했다. 그리고 가슴 저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상처 하나가 아물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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