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시간 째 글이 떠오르지 않아 이 제목, 저 제목, 이 얘기, 저 얘기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치 냉면 면 뽑는 기계 마냥 언제나 새로운 글을 뽑아내는 기계가 아닌 이상, 아주 가끔은 할 말이 없을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렇다.
아주 오랜만에 장염이라는 지독한 놈이 찾아와 몸 상태가 말이 아닌데다, 요 며칠 업무 관계로 개념 없는 인간들과 부딪히는 일이 발생하면서, 몸도 마음도 상당히 상해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렇지 아닌 척, 그럴 듯한 글을 억지로 뽑아내느니, 필자도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간미와 친근감을 전하기 위해 오늘 제목은 ‘쉬어가는 글’, 말 그대로 쉬어가는 얘기나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필자의 은밀한(?) 이야기들, 떠올려보면 슬그머니 미소가 그려지는 재미있는 사건들이었으니 기대하시라. 혹시 별로 재미있거나 웃기지 않더라도 용서해 주시길, 말 그대로 쉬어가는 글이니까.
첫 번째 이야기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필자는 은근히 어리버리했던 것 같다. 당시 방과 후에는 산수반이라는 특별반이 한 선생님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각 반에서 제법 산수를 잘하는 애들을 시험을 쳐서 뽑은 뒤, 어려운 수준의 산수 교육을 시켰는데, 운 좋게도 합격선을 겨우 턱걸이로 통과해서 산수반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산수반을 지도하는 이X식 선생이라는 사람이 상당한 다혈질에,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따귀를 무자비하게 날리는, 깡마르고 고약하게 생긴 공포의 선생이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기 성미에 거슬리면 가차없이 따귀와 주먹질을 날리는 통에 우리들은 쥐죽은 듯 긴장하면서 산수반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날 수업 중 잠시 다른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X식 선생이 필자를 가리키며 눈을 부라리고 ‘너, 나와’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분명 떠들거나 다른 곳을 쳐다본 것도 아니었는데, 무슨 도사도 아니고 내가 다른 생각 굴린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면서 ‘이제 죽었구나’ 하는 심정으로 일어서는데, 거의 동시에 내 앞에 앉은 녀석이 일어섰다.
이런, 나를 가리킨 게 아니라 내 앞에 있는 녀석을 가리킨 것인데, 나 역시 다른 생각을 굴리다가 놀라는 바람에 나를 가리킨 줄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나는 일어서 버렸고, 속으로는 ‘어머, 젠장’ 하면서도 내 몸은 무언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그 녀석과 함께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이X식 선생도 ‘이놈은 뭐야’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뭐라고 말은 해야 했기에 엉겁결에 나온 말이 ‘저, 화장실 좀…’. ‘임마, 그런데 왜 혼나는 놈이랑 동시에 같이 나오고 난리야!’하면서 한 방 맞는 내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깔깔거렸고, 필자 역시 스스로의 어리버리함에 황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이 실제로 화장실에 가서 볼일까지 보고 왔다.
두 번째 이야기는 대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맡아 음악팀을 이끌고 있었는데, 여름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고등부 인원이 약 60명 가량이었고, 필자 같은 담당 교사들 15명 가량이 함께 했다. 전체가 모여있는 장소에서 음악 순서를 마치고, 잠시 담당 전도사님의 설교가 있은 뒤, 다른 장소로 흩어져서 성경공부를 하는 순서로 진행이 되었다.
필자는 음악 순서만 맡고 있었기에 음악 순서를 마치고 흐르는 땀을 씻기 위해 잠시 모임 장소를 빠져 나와 행사장 내에 있는 화장실을 갔는데 마침 남자 화장실이 청소 중이라 여자 화장실을 쓰라는 푯말이 있었다. 그래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다 보니 화장실에 들어온 김에 볼일도 보고 싶어졌다.
어차피 필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모임 장소에 있으니, 그 사이에 누가 나올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여자 화장실 칸에 들어가 볼일을 보는데 갑자기 밖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났다. 전도사님이 예상보다 순서를 빨리 끝내서 모두들 밖으로 나온 것이다. 곧바로 여학생들이 한 명, 두 명 화장실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필자는 물도 못 내린 채 이 난관을 어떻게 탈출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는 앞에서 기타를 치면서 음악팀을 이끌고 있었기에 필자를 모르는 이는 없었고, 만약 여자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발각이 되면 완전 변태로 몰릴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름이라 샌들을 신고 있어서 혹시 누가 밑으로 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발가락에 난 털이 보여 발각될 것이라는 생각에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았다.
화장실은 점점 미어 터지고, 필자가 안 나가니까 슬슬 밖에서 똑똑 거리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그런 장난을 치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학창시절에 짓궂게 옆에 칸으로 올라가 볼일 보는 모습을 보면서 약 올리는 장난을 치는데, 갑자기 여자애들도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가 옆 칸에서 위로 올라가 필자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몰려왔다. 그렇게 한 30분 가량을 갇혀 있었는데, 정말 30년처럼 느껴졌고,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을 때 얼른 빠져 나왔다. 그 뒤로는 아무리 급한 상황일 지라도 절대 여자 화장실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잠시나마 글을 쓰면서 필자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던 것 같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인이 되어서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