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아니 나는 분명 군생활 다 마치고 제대했는데, 그리고 영국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왜 다시 입대를 하라는 거야?”
아마도 군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예비역 남성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현상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재입대 꿈이 아닐까 싶다. 필자 역시 제대한 지 어느덧 7년째 접어들고 있건만, 한 달에 한 두번 꼴로 꼭 군대와 관련된 꿈을 꾸곤 한다. 군 시절을 배경으로 다양한 꿈을 꾸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많이 꾸는 꿈은 제대를 했는데도 다시 내가 생활했던 그 내무반에, 함께 군생활을 했던 이들이 모여있는 곳에 내 모습도 보이고, 법이 바뀌어서 제대한 사람도 다시 일정 기간을 재복무 해야 한다는 끔찍한 내용을 듣게 되는 재입대 꿈이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나를 괴롭혔던, 내가 너무나 싫어했던 고참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여전히 그 밉살스런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있으며, 그 시절 나를 억눌렀던 괴로운 감정들이 그대로 되살아나곤 한다. 분명 나는 이미 제대했고, 영국에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왜 내가 다시 군생활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 억울하건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괴로움에 신음하다가 그 신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면서 ‘아, 꿈이었구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자리에 들곤 한다.
재입대,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다. 2005년 여름에 2박 3일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었는데 비록 2박 3일이었지만 다시 군인이 된 것이 어찌나 답답하고 짜증이 나던지… 그렇게 끔찍한 재입대를 실제로 경험하게 된 모 가수의 소식을 듣고서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한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거의 정기적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자주 이 재입대 꿈을 꾸는 게 혹시 무슨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던 차, 한국에 있는 군 후임병과 대화를 나누면서 물었다가 그 역시 나처럼 정기적으로 재입대 꿈을 꾸곤 한다는 얘기를 듣고 비로소 안심이 되었으며, 심지어 군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성들의 이러한 군대 꿈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선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토록 몸서리쳐지게 싫은 군대면서도 꿈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 얼굴들을 보면서 은근한 반가움 역시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었다. 하기사,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함께 생활했던 그들인데 어찌 한자락 추억마저 남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훈련소 시절 대부분 동기들끼리 연락처를 주고 받으면서 자대에 가도, 심지어 제대 후에도 꼭 다시 연락하고 만나자고 약속하건만 고달픈 자대 생활에 그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같은 자대 출신들 조차 제대 직후에나 잠시 연락을 주고 받을 뿐, 어느새 직장 생활, 가정 생활에 쫒기다 보면 아무런 소식조차 주고 받지 못하며 서서히 잊혀져 가는 게 대부분일 것 같다.
세상과 사회의 쓴맛(?)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는 서른 즈음의 군 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성들은 너무나 공감할 것이다, 진정 군대는 사회, 특히 전형적인 대한민국 사회, 더 정확히는 대한민국 직장의 축소판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쩌면 분명한 끝이 정해져 있는 군대는 맘대로 관둘 수 없고, 끝도 보이지 않는 세상살이에 비하면 훨씬 쉬운(?) 것이었다는 사실도.
훈련소를 마치고 배치된 자대에서 가장 처음 발견한 것은 인간성의 상실이었다. 훈련소에서 조교들 역시 훈련병들에게 가혹하게 굴지만 그들은 그저 훈련 과정의 일부로 그렇게 할 뿐,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훈련병을 인격적으로 미워하거나 괴롭히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훈련소를 퇴소할 즈음에는 은근히 정이 들어서 조교들과 헤어지기가 아쉽기조차 했으니까.
그런데 계급과 업무를 주축으로 움직이는 자대는 달랐다. 특히, 필자가 속했던 무려 64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의 대형 내무반의 경우는 더더욱 인간 군상들의 어두운 면들이 비쳐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타인에게 당한 설움이나 스트레스를 역시 그대로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그 모습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그러는 중에 언뜻 비쳐지는 인간의 악랄함과 이기심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섬뜩한 그것이었다. 군대 바깥에서는 평범한 어느 젊은이였을 그들 속에 감춰진 추악한 인간 본성이 드러나는…
제대를 앞두고서는 참 많은 꿈들을 그려 보았던 것 같은데, 제대만 하면 내 세상이 올 것만 같았는데, 정말 뭐든지 해낼 자신감이 충만했었는데… 세상의 벽은 군대에서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고, 차가운 그것이었다. 살이 쪄서 이제는 아마도 맞지 않을 것 같은 군복을 문득 다시 꺼내보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뒷꿈치를 까지게 했던 그 불편한 군화를 다시 한 번 신어보고 싶어진다. 세월이 더 흐르고, 군대의 기억들이 더 희미해질 즈음이 되면 더 이상 재입대하는 꿈도 꾸지 못하겠지…
수해가 유난히 심했던 어느 여름이 지나고 수해를 입은 농민들을 돕기위해 우리 내무반이 벼세우기 대민지원 활동을 나가게 되었다. 군복 바지를 최대한 접어 올리고 사타구니 바로 아래까지 물에 잠기는 논에 맨발로 들어가 벼를 세우고 있는데 중간 사이즈(?)의 뱀 한 마리가 말라 비틀어져서 볏더미에 엉켜 있는 것을 한 이등병이 발견했다. 벼세우기에 지루하던 차,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뱀 주위로 모여들었고, 거의 죽은 듯 꼼짝도 않는 뱀을 다들 신기해 하고 있던 도중, 강원도 출신의 한 녀석이 ‘이건 죽은 뱀입니다’하면서 가만히 있는 뱀을 툭 치는 게 아닌가? 별안간 죽은 듯 햇던 뱀이 몸을 꿈틀 하더니 바로 물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최고참이 ‘야! 피해!’하면서 외마디 소리를 질렀고, 맨 발에 사타구니까지 바지를 걷어 맨 살을 그대로 노출한 채 물 속에 있던 우리는 말 그대로 혼비백산해 마치 지뢰라도 터진 듯 물 속에서 도망쳐 나오던 날의 유쾌한 풍경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