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걸린 소보다 무서운 우리들의 폭력성

by 유로저널 posted Jun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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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몇 번 ‘서른 즈음에’를 통해 시사적인 사안에 대한 이야기들을 쓴 적이 있었다. 사실, 저널리즘 공부를 했음에도 개인적으로는 시사적인, 비판적인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또 더 솔직히는 요즘에는 일반인 중에도 너무나 유식하고, 해박하고, 논리적인 시민 기자, 시민 논객들이 넘쳐나기에 필자의 무식과 무지가 드러날까 두려워 의도적으로 그러한 주제들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 등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 공간에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소식을 접하고, 한국인들의 현재 정서와 심리를 전해듣는 요즘, 정말 공포스러울 만큼 한국인들의 정서와 심리가 폭력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필자 역시 한국인이고, 다분히 다혈질에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부족한 인간이기에 감히 누구를 지적하거나 탓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도를 넘어선 듯한 사람들의 폭력성, 그리고 그보다 너 무서운 이에 대한 무감각에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악용한 댓글(답글) 문화, 안티 문화, 언어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전에는 어떤 기사나 의견에 대한 댓글이 10개가 달렸다면, 그 가운데 6개의 악성 댓글, 과격한 댓글이 달리고, 4개 정도는 그래도 평범한 댓글, 포용적인 댓들이 달렸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10개의 댓글이 달리면, 평범하고, 포용적인 댓글을 1개 정도 찾아볼 뿐, 거의 모든 이들이 극도의 분노와 공격성을 보이는 것 같다.

모두가 항상 화가 나 있는 듯한 사람들, 이제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무언가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유발된 억울함, 분함, 답답함, 부당함이 포화상태에 달해, 작은 건수라도 있으면 이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공격적으로 배설하는 습성이 일반화된 듯 하다. 아마도 길거리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쳤더라면 그냥 평범했을 사람들, 분명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이고 좋은 연인일 사람들, 사랑할 줄 알고, 웃을 줄 아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일 텐데,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폭력적인 존재로 탈바꿈시킨 것일까?

사실 ‘예로부터 한국인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는 말이 참 싫었다. 그 한이라는 것이 우리 전통 음악이나 예술에 스며들어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분명 있지만, 결국 한이 많이 쌓였다는 것은 그 만큼 사람들의 정서가 늘상 억울하고, 답답하고, 분한 감정에 차 있었다는 얘기도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습성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우리 한국인들을 지배하고 있기에, 여전히 한국인들은 한이 많고, 그래서 늘상 화가 나 있고, 분이 차 있는 게 아닐까? 한이 많은 민족보다는 웃음 많은 민족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판단, 잘못에 대한 정확한 지적과 시정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이성적이고 공익을 우선하는 방향을 벗어나, 감정 배설과 폭력에 섞이기 시작하면 더 이상 옳고 그름은 사라지고, 누가 더 강하고, 누가 더 목소리가 크고, 누가 더 과격하고 폭력적이 되느냐만 남게 된다. 특히, 이 같은 상황이 의견을 함께하는 집단에 의해 자행될 때, 그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댓글 문화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수에 의한 의견이 분명해질 때부터 폭력성이 발휘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원래 사람이라는 존재는 집단에 포함되어 있을 때 없던 용기도 발휘되는 것이지만, 그와 함께 없던 폭력성과 광기도 발휘되는 것이 문제다. 여러 목소리가 하나의 표적을 공격하는 상황을 파악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보다 과격하고, 보다 폭력적인 목소리를 마음껏 질러도 될 듯한 든든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처음에 목소리를 냈던 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어느새 뒷전이고, 이제는 그 동안 무의식 중에 쌓아왔던 한과 분노를 작은 꼬투리나 결점이라도 발견되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를 향해 있는 힘껏 표출하는 것으로 흥분하고, 심지어 쾌감을 느끼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너도 나도 과격하게 말하고, 과격하게 글을 쓰는 상황 속에서는 자신의 말과 글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이 무뎌진다. 과연 그들이 100분 토론과 같은 모든 신상이 공개되고, 얼굴이 공개되는 자리에서도 같은 수준으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작은 실수나 결점이 공개적으로 발견되고 이슈가 되면, 그 사람의 미니홈피를 찾아 악담을 퍼붓는다는 이들, 과연 그 당사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서도 그러한 짓을 할 수 있을까?

100% 확인도 되지 않은 얘기들, 옳고 그름을 지적할 지언정, 그 대상을 심판하고 벌줄 자격은 없는 없는 이들이 내리는 심판과 처벌의 얘기들,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내 의견과 다르다고 판단되면 적이요, 원수라고 단정짓는 얘기들, 그 수많은 얘기들을 통해 휘둘러지는 우리들의 폭력이 광우병에 걸린 소보다도 더욱 몸서리쳐진다.

분명 대한민국은 아직도 부조리와 부당함이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와 권력이라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막강한 요소들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수십년, 아니 어쩌면 수백년 동안 목격되어온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당함에 한과 분노가 쌓일대로 쌓인 한국인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 같다. 부조리와 부당함으로 부와 권력을 누리는 다양한 집단들에 의해 늘 약자, 피해자로서 한과 분노를 쌓아왔던 수 많은 우리 사회의 평범한 소시민들, 필자 역시 그 평범한 소시민의 하나이기에 그들의 폭력성에 손가락질을 하기보다는 같이 부둥켜 안고 울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들의 말과 글에 담겨진 폭력이 하루 속히 잠잠해질 수 있도록 제발 모든 것들이 제자리, 바른 자리를 찾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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