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과 만나는, 더 정확히는 사람 간의 만남을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하는 일이다 보니, 참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날마다 만나게 된다. 특히, 그들 중 대다수는 한국 사람들. 그런데, 이 역할은 하면 할수록 참 특이한 역할이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러니까 그 쪽이 아쉬운 입장이 되는 사람들 부류를 만나는 동시에, 또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부류도 만나는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들에게 단 돈 백원도 꿔 본 적이 없을 만큼, 모르고 차비를 안가져 가면 차라리 걷기를 택할 만큼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정말 싫어했다. 물론, 때로는 그게 지나친 수준이라 괜한 고생을 하기도 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건만, 그래도 나름 그 원칙을 지금까지도 지켜 왔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가 관련된 이상, 싫다고 마냥 거부할 수 없는 게 세상살이인지라 요즘 이 아쉬운 소리를 하며 살아간다.
혹시나,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이 아쉬운 소리를 하는 일은 글 쓰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또 다른 직업이다. 모든 일들이 이 글 쓰는 일만큼, 글 쓰는 일과 관련되 벌어지는 일만큼만 돌아간다면 정말 세상이 날마다 유쾌할 것만 같을 만큼, 글 쓰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행복한 그것이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일, 더군다나 그 대상이 한국 기업에서 날고 기는, 자칭 선택받은 부류(?)일 경우에는 더더욱 쉽지 않은 것 같다. 다들 한 가지의 목표만을 갖고 사는 사람들, 돈벌고 출세하는 것, 그것을 위해 영혼을 저당잡히고 또 그러한 삶에 익숙해져버린 이들과 부딫히고, 또 그것을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하다보니 어느새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특히, 같은 한국인끼리여서 더 따뜻하고, 더 아름다운 관계도 있는 반면, 같은 한국인끼리여서 더 못되고, 더 차가운 관계가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더욱 서글퍼 졌다.
원래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그러한 인간미와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 자체가 한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참 마음이 착잡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어느새 나도 그러한 부류(?)의 인간이 되어 있을까봐 두렵기도 했다. 다행히 글을 쓰고, 음악을 하는 일들이 답답한 영혼의 숨통을 트여 주기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예전 한국의 어느 커피 CF에서 인상적이었던 문구인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바로 필자의 최근 심정이었다. 이는 현재 필자 주위의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일상에서 부딫히는 이들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필자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함이었을까? 며칠 전 점심을 사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테이크 어웨이 집에서 카레 돈까스를 주문했는데, 한참 어려보이는 한국 아르바이트생에게 “카레좀 많이 주세요” 했더니 돈까스도 일부터 큼직한 조각으로 골라서 담아주고, 카레도 넘칠 만큼 담아주는 것이었다.
손님의 99%가 외국인인 가게라서 아마 드물게 보는 한국인 손님인 필자에게 베푼 작은 배려였겠지만, 또 배려가 아닌 그냥 손님의 요구에 대한 단순한 응답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별 것 아닌 일에 괜히 가슴이 찡해졌다. 나를 사랑하는, 나와 진실된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주위 사람들 말고, 이 험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문득 접한 그 작은 따스함에 그토록 감동할 만큼 내 영혼은 사람들로 인해 상해 있었나보다.
게다가 마침, 요 며칠간 만난, 필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류의 사람들마다 참 순박하고, 맑은 사람들이었다. 비즈니스 세계의 기준으로 외모도 별로고, 가진 것도 별로 없고, 갖춘 것도 별로 없는, 사회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사람들, 그럼에도 착한 마음씨와 소중한 꿈을 간직하는 사람들, 어려운 상황을 헤치고 힘든 도전 중인 사람들, 그 사람들이, 또 그 사람들이 꾸려가는 그 삶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개중에는 예전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한참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사회 물이 들지 않은 이들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순수함의 냄새와 착한 어설픔(?), 아마도 나 역시 그 시절에는 그러한 냄새를 풍기고 그러한 어설픔을 가졌을 텐데… 어느새 지금의 내 모습은 그 순수함의 냄새도 사라지고, 어설픔도 벗어버린 사회인이 되었건만, 정작 그 때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은 내게 도움을 기대하고 나를 만났겠지만, 사실 도움을 받은 건 정작 나였다. ‘사람’이라는 존재 때문에 우울했던 내게 ‘사람’이라는 존재로 인한 미소를 다시 찾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가만히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래도 아직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