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관련된 논쟁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되는 것은 교회, 목사, 아니면 평신도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거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데 따라, 이를 놓고 기독교 자체와 모든 교회, 모든 목사님, 모든 기독교인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목소리와, 또 한 쪽에서는 이는 단지 일부 잘못된 기독교인들의 모습일 뿐, 대다수는 이러한 비난과 상관 없다고 항변하는 목소리의 다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기독교 목사(참된 목사 ‘님’들은 이런 논란에 해당될 만한 사항이 없기에 논란을 일으키는 이들에게는 ‘님’자를 생략한다)들과 관련된 논란일 것이다. 물론, 일반 기독교인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그릇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테지만, 어쩔 수 없이 언론이나 공개적인 경로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주로 목사들과 관련된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상당히 궁금해 한다, 과연 실제 예수쟁이들은 이 같은 목사님, 목사들과 관련된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일단, 분명히 아직 우리 주변에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회 구석 구석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목사님, 또 전도사님과 같은 성직자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당장 필자 주변 바로 가까이서 보게 되는 목사님, 전도사님도 정말 사람의 욕심과 의지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묵묵히 바른 길을 걷고 계신 것을 보면, 아직도 수 많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사회의 낮은 자리와 약한 자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음에도, 요즘 대한민국에서 목사님들이 도매급으로 싸잡혀서 말 그대로 ‘씹히고’있는 현실은 야속하기만 하다.
최근 M방송국에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던, 사람들이 가장 흔히 목사들(목사’님’들은 이 공격에 해당 사항이 없다)을 향해 공격하는 주 메뉴(?)가 되어버린, 그리고 기독교와 교회 내에서도 터부시 되는 주제인 성직자 세납, 그리고 성직사의 세납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교회와 목회자의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나눠 보고 싶다.
예수쟁이들끼리도 입에 올리기 어려운 사안인 만큼,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한 예수쟁이의 의견을 상당히 궁금해 하는 듯 했다. 목사 연봉이 10억대에 달하는 초대형 교회들과 관련해, 해당 교회 신도들이 자신들의 목사의 고액 연봉문제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들이 몇 차례 방송을 통해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쟁이들은 무조건 목사의 고액 연봉과 세납 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솔직히 필자가 교회와 성직자에 대해 겪은 혼란, 즉 예수님과 성경에 대한 혼란이 아니라, 그 예수님과 성경을 따른다고 자칭하는 교회와 목회자에게서 발견한 혼란은 다름아닌 ‘일부’ 교회와 목회자의 삶에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성스러운 포장으로 어떻게든 감추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본주의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똑같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와 성직자일 텐데 그 구조는 자본주의의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 미묘하고 불편한 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왜 어떤 목사는 재벌 부럽지 않은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 어떤 목사님은 평균 수준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의 생활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이것을 단지 당사자들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속단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는 하나님만 아는 비밀(?)일 뿐이니 그냥 입다물어야 하는 것인가?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 열매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빈부격차가 이토록 극심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이 이 비정상적인 교회와 목회자의 빈부격차에 열을 받아서 예수님을 알려고 조차 하지 않도록 작용한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이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기독교가 사회에 유익을 가져다 주면서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환영 받던 필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목사’하면 일단 ‘가난’이 연상되었다. 실제로 당시에는 정말 평균 소득보다 한참 아래의 소득을 가지고, 그럼에도 그 상황에서도 남을 돕고, 말 그대로 예수님 말씀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진짜 목사님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목사님이 좋은 것 가지고, 많이 가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필자가 어렸고, 예수쟁이도 아니었던 탓에 지금과 같은 재벌급 목사들의 존재를 몰랐던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마도 성직자 세납 면제는 초창기 기독교와 교회의 '바른 상태'를 배경으로 도입된 것일 게다. 평균 이하의 생활 수준에서, 이윤 추구도 아니고, 성직의 길을 걷는 사람한테, 말 그대로 벼룩의 간을 내어 달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경제의 '질적인 성장은 무시한 양적인 성장'과 함께 교회 역시 그와 같은 비정상적인 성장을 해 오면서, 자본주의를 닮아가고, 또 한국 특유의 허세와 계급 구조, 그리고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속칭 ‘가오’를 중시하는 문화가 교회에도 정착된 것 같다. 이 ‘가오’라는 표현이 논란이 될 수도 있겠는데, 지난 번에 세계 최고의 감리교회라는 G교회의 목사가 자신이 고급 외제차를 타야만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보고서, 예수님이 그의 ‘가오’를 보고 얼마나 어이없어 하실까라는 생각을 했다.
자본주의는 사회를 발달시켰지만, 부와 권력을 쥐고서 ‘가오’ 잡는 재벌 회장과 성실히 땀 흘려도 밑바닥 삶을 사는 가난한 자의 격차를 사정없이 벌려 놓았다. 수백억짜리 교회 건물을 세우고, 고급 승용차에 기사와 수행원을 두고, 재벌 회장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으면서 ‘가오’를 잡는 대형교회 목사와, 교회로 사용하는 어느 건물 칸의 임대료도 겨우 내면서, 배고픔 속에서도 다른 이의 영혼을 위해 고된 삶을 이겨나가는 목사님의 격차를 벌려 놓은 것도 바로 이 자본주의다. 사회의 자본주의야 그렇다 해도, 교회에서까지 이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