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투자하고 있는가?

by 유로저널 posted Nov 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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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경제 대공황이 재현되기라도 할 듯, 여기 저기서 너무나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시기에 그래도 직장 있고, 게다가 좋아하는 일들도 제법 하면서, 그 와중에 어쨌든 배고프지 않게, 더 솔직히는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으면 자장면 한 그릇 정도는 사 먹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 때는 그 좋아하는 순대를 감히 사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요즘 한국 가게에서 순대를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너무나 부자가 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한국 뉴스에서는 날마다 주식,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이 손해를 봐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실, 무식해서 주식이나 펀드가 정확히 어떤 원리로 돈을 부풀리는 것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투자를 해보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 요즈음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참 무식한 경제 관념을 지녔던 것 같다. 한국에서 대부분 하나 쯤은 갖고 있는 신용카드를 가져본 적이 없다, 물론 지금도 신용카드는 없다. 카드빚이라는 단어도 필자에겐 너무 낯설다. 무슨 고집인지 어렸을 때부터 백원도 빌리는 게 싫었다. 워낙 내성적인 탓에 돈 꿔달라는 말 꺼낼 숫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의 돈 쥐는 게 영 기분이 더러웠기 때문이다.

차비가 없으면 차라리 걷고, 배가 고프면 차라리 땅바닥을 물어뜯지 남의 돈은 절대 안만진다는 무식한 원칙을 고집한 탓인지,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돈을 빌리거나, 내가 벌어서 내 것이 되지 않은 돈을 카드로 미리 가져다 쓴 적이 없다. 물론, 그런 만큼 남에게 돈을 빌려준 적도, 투자를 위탁한 적도 없다, 누가 내 돈을 쥐고 있다는 것도 기분이 영 더럽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융통성도 부족하고, 돈을 요리 조리 굴려서 부풀리는 재주가 조금도 없다. 사업 하기에는 참 부적절한 스타일이다. 학원 강의와 과외로 한창 돈을 벌던 시절에도 그나마 했던 게 적금, 그것도 매달 정기적으로 넣는 게 왠지 기분이 나빠서(?) 내 맘대로 넣고 싶을 때 넣고 싶은 만큼만 넣는 자유 적금을 들어서 별로 재미도 못봤다.

사실, 예전에 부동산이나 주식, 펀드에 투자해서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필자가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자신만의 창작품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지, 돈 굴리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은 결코 아니었다.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것, 자본주의 자유경쟁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이런 저런 투자로 손실을 입은 분들께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한 편으로는 자업자득이라는 냉정한 마음도 동시에 드는 게 사실이다. 말이 좋아서 투자, 재테크지,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은 딸 수도 있지만 잃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도박이 아닌가 싶다.

과연 우리는 무엇에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투자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비단 돈을 투자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열정, 우리의 사랑, 우리의 꿈,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그 무엇인가에 매 순간 투자하고 있다, 언젠가 그것을 통해 얻게 될 그 무엇을 기대하면서.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무엇에 투자한 것일까? 가만히 돌아보니 필자가 오랫 동안 투자한 것은 감성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 편의 영화, 한 편의 공연, 한 장의 음반을 사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 같다. 비디오 한 편을 빌려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테이프를 샀다. 명품이라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고, 핸드폰도 수 년간 같은 것을 쓰다가 술먹고 변기에 빠뜨려서 바꾸기 전에는 다들 구리다고 흉을 봐도 그런 것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대신 기타는 수백 만원 짜리를 마련해 그 심오한 소리에 날마다 빠져 들었다. 겉으로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 무의미해 보이는 투자들이었건만, 그것들을 통해 감성을 가꾸고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렇게 투자한 것들이 매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 주었고, 세월이 흘러 이렇게 글을 쓰고, 영화 칼럼을 쓰고,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해서 이제는 행복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돈도 벌 수 있게 해 주었다.

감성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을 가장 좋아하고 꿈꾸었던 필자로서는 그 감성을 가꾸는 일에 돈과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 것은 너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투자하고 싶은 것들이 여럿 있다. 미디를 배워서 좀 더 폭넓게 음악을 해 보고 싶고, 보컬 레슨도 받고 싶다. 연극, 영화 공부도 제대로 해 보고 싶다. 그 것들에 내 영혼을 투자하는 그 자체 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이 너무도 크기에 잃을 게 없는 투자다. 투자가 실패할까봐 가슴 조리고 후회할 일도 없는 투자다.

돈이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이 없으면 얼마나 불행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요즘, 나도 모르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쉽게 벌 수 있을까’하는 부질없는 공상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들은 대부분 돈을 굴려서 돈을 부풀리는 방법들일 뿐이다. 돈을 목적으로 돈을 투자하기 시작하면 내 영혼을 담보로 잡히게 된다. 그 투자가 실패할 경우에는 내 영혼을 빼았기게 되고, 그것을 되돌려 받기는 너무나 어렵다. 성공할 경우에도 내 영혼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게다, 계속해서 더 큰 돈을 목적으로 더 큰 투자를 하면서 끊임없이 담보로 잡혀 있을 테니까.

이렇게 물질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내면을 가꾸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 같다. 진정 소중한 가치에 더욱 투자를 해야 할 것 같다.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라, 여러분들은 지금 이 순간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무엇에 투자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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