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은 매 순간이 크고 작은 선택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면서 우리가 몇 번의 선택을 하는가를 과연 셀 수나 있을까? 어떤 선택들은, 가령 오늘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청바지를 입을까, 면바지를 입을까 하는, 인생에 그다지 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선택들도 있지만, 또 어떤 선택들은, 가령 이 직업을 가질 것인가, 저 직업을 가질 것인가, 이 사람을 택할 것인가, 저 사람을 택할 것인가와 같은 선택들은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봐도 그것이 인생에 가져올 영향력이 너무나 거대해서 결정을 내리기가 정말로 어려운 선택들이다.
어렸을 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거의 없다. 그저 주어지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던가 슬프게 받아들이던가, 웃던가 울던가 할 뿐, 어쨌든 주어지는 것에 대한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대신 그런 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면서, 비록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얻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때로는 그 선택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인생의 색깔이 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원래 선택은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그래서 늘 망설임과 아쉬움, 만족과 후회의 소용돌이를 거치게 되어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과연 짜장면인지, 짬뽕인지. 짜장을 선택하면 얼큰한 짬뽕 국물이 아른 거리고, 짬뽕을 선택하면 고소한 짜장 소스가 아른 거리는 그 얄궂은 아쉬움. 그러나, 짜장면과 짬뽕을 둘 다 맛보게 함으로써 이러한 선택의 법칙을 타파하려는 야심찬 의도로 고안된 짬짜면은 둘 가지를 동시에 선택할 수 있음에도 짜장면이나 짬뽕 한 가지만을 선택했을 때 보다도 못한 만족감을 선사해 결국 버림받았다. 선택이란 결국 선택한 그 한 가지에 온전한 신뢰와 애정을 쏟아부을 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감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은 사랑, 죽음, 이 두 가지에 대한 것일 게다. 나머지 선택들은 되돌릴 방법도 제법 강구해 볼 수 있고,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인생에 그다지 큰 영향을 초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랑과 죽음은 그렇지가 않다.
인생의 벼랑 끝에 서게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에게는 찾아 온다. 한 번만 올 수도 있고 여러 번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벼랑 끝에 서게 되면 갈등할 것이다. 그냥 한 발짝 허공으로 내디뎌 영원히 되돌아 올 수 없는 길로 떠나버릴 것인지, 아니면 그 어떤 고통이나 슬픔일지라도 벼랑 끝에서 벗어날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을 것인지. 과연 우리 인간이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느냐는 문제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건만, 어쨌든 올해 우리 나라에서는 벼랑 끝에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한 이들이 유난히 많았던 한 해였다.
그렇다면 사랑은, 과연 사랑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 걸까? 사랑은 기쁜 만큼 고통스럽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져올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줄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어떤 것보다도 더한 고통과 슬픔을 가져 오기도 한다. 예전에 ‘이소라의 프로포즈’라는 TV 프로에서 들었던 멘트가 너무나 가슴에 남아서 두고 두고 기억하다가 실제 삶에서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 말이 생각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는 게 더 어렵습니다’ 사랑의 선택은 여기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을 사랑하는게 아무리 힘들 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덜 힘들거라 믿는다면, 그 사랑을 선택하는 게 맞는 거라고.
사랑에 대한 선택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것은 사랑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의도나 예측을 한 없이 능가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마법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것이어야 한다. 어떤 고통이나 어떤 슬픔도 이겨낼 수 있는 간절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하고 간절해도 이기적인 것이어서는 마법을 발휘할 수 없다.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이 주인공이다.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도록 내가 조연이 될 때, 서로가 그렇게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희생할 때, 비로소 그 사랑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마법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때로는 그것이 쉬운 길인지, 어려운 길인지에 따라, 또는 대부분의 사람이 택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쉬운 길, 대부분이 택하는 길을 선택하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선의 선택은 늘 쉽고, 늘 대부분이 택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쉬운 길, 대부분이 택하는 길을 택했음에도 후회하고 불행을 맛보았다는 사람들의 얘기도 들려오고, 반면에 어려운 길, 대부분이 택하지 않는 길을 택했음에도 그 누구보다 큰 만족감과 행복을 얻은 사람들의 얘기도 들려온다. 결국, 우리들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택이 스스로에게 달려 있지만, 사랑이야말로 정말 결국에는 자신의 몫이다. 그 사랑에 대한 선택으로 인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과 슬픔을 맛볼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최대한의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랑은 다른 그 누구가 아닌, 바로 자신만 아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바로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 안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마지막 선택, 내 안의 가장 깊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