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망

by 유로저널 posted Jan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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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한 톨의 소금 같은 시를 써서
누군가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 수 있을까
한 톨의 시가 세상을
다 구원하진 못해도
사나운 눈길을 순하게 만드는
작은 기도는 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여
맛있는 소금 한 톨 찾는 중이네

                                       이해인


이해인 수녀님의 ‘작은 소망’이라는 시를 오랜만에 되뇌어 본다. ‘소망’, 순수하고 꿈 많던 시절에는 참 많이 담아보던 단어였는데, 언제부턴가 이 ‘소망’이라는 단어와 멀어진 것 같다. 감히 ‘소망’이라는 아름답고 진실한 단어를 담기조차 불편해질 만큼 내 영혼이 더 이상 맑지 않은 까닭일까, 아니면 그저 바쁘고 고단한 세상살이에 온통 매달려 있기 때문일까?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대뜸 당신의 소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아마도 내 또래의 젊은이들은 그저 하루하루 안정되게 밥 벌어 먹을 수만 있다면, 직장이 있는 이들은 그저 그 직장에서 잘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 직장마저도 없는 이들은 밥벌이 할 직장만이라도 구했으면 하는 게 소망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물질적인 빈곤에 대한 부담감이 이토록 높아져만 가니 어느새 생존하는 일에 온 몸과 마음이 몰두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나운 눈길을 순하게 만드는 작은 기도’라도 되기 위해 시 한 구절을 쓰고 계신 이해인 수녀님의 소망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운 소망 하나쯤은 분명 간직되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비록 모두가 감탄할 만큼 화려하고 뛰어난 소망은 아닐지라도, 그저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가져다 줄 것 같은, 그런 소망들이 하나쯤은 분명 있었을 텐데, 그 소망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먹고 사는 전쟁이 워낙 치열해지다 보니 자꾸만 모든 일에 계산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돈을 계산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연 이것이 나에게 어떤 안정을 보장해줄 것인지, 과연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 이것을 하는 것보다 저것을 하는 게 더 이익이지 않을까, 이것은 나에게 어떤 손해를 가져다줄 것인가 등등 어떤 일을 하건, 심지어 어떤 사람을 만나건 이러한 계산을 먼저 하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부끄러운 내 모습...

어느새 나도 두려운 것이다, 세상살이의 냉정하고 가혹한 법칙을 맛보면서 나 역시 이제 살아남기 위한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꿈꾸고 소망했던 가치들 보다는 당장의 생존이 더 중요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존에 몰입할수록 행복은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진다.

한 번은 내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지난 일들에 대한 향수와 추억에 몰입하는 것에, 혹시 내가 비정상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오래된 사람들, 오래된 기억들, 오래된 장소들, 오래된 영화들, 오래된 음악들, 이것들을 통해 얻는 행복이 너무나 큰 게 스스로도 이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았다. 그 오래된 것들과 함께 했던 그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꿈꾸며 소망하고 있었기에, 그 오래된 것들을 통해 역시 그 오래된 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이나마 되찾으면서 느껴지는 행복이었던 것이다. 생존보다 더 소중한 것들, 그것들에 늘 몰입해 있었기에 비록 가진 게 없어도 그토록 행복했던 것이다.

그렇게 행복을 가져다 주던 작은 소망들을 다시 찾고 싶어지는 요즈음이다.

어린 시절 우리들 마음에는 여러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사랑의 촛불, 소망의 촛불, 모험의 촛불, 동심의 촛불, 이렇게 여려 개의 촛불들이 누구에게나 켜져 있다. 이 촛불들이 모두 환하게 켜져 있을 때 우리들 마음은 따뜻하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 순수한 시절의 어린이들이 그 누구보다 사랑이 넘치고 행복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촛불들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면서, 세상을 알아가면서 하나씩 그 불빛이 희미해지고, 심지어는 촛불이 꺼지기까지 한다. 그렇게 따스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동심을 잃어가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는 어른이 되지만, 대신 촛불들을 꺼뜨리고 만다. 그럼에도 그 순수한 시절의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이들은 그나마 몇 개 남은 촛불을 여전히 밝히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을 간직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따스하고 환하다.

내 마음 속 촛불, 작은 소망의 촛불은 아직도 그 빛을 잃지 않고 타오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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