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물건들

by 유로저널 posted May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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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괜시리 오래된 물건들이 참 좋다. 하루가 멀다하고 모든 영역에서 최신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건만, 이상하게 조금 후져 보여도, 조금 기능이 부족해도, 오래된 물건들에 더 마음이 간다. 뭐든 오래된 것,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물론 그렇다고 앤틱샵에서 골동품을 산다거나,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오래된 물건들을 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나의 오래된 물건들이 괜히 좋아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오래된 물건들은 아쉽게도 한국의 고향집에서 뽀얀 먼지를 덮어쓰고 잠들어 있지만, 지금 현재 영국에서 필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물건은 다름아닌 작은 빨간색 휴대용 스피커다. 중학교 시절 음악에 한참 미쳐있던 필자를 위해 어머니께서 직접 남대문 시장에서 손수 골라서 사다주신 스피커다.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소니 워크맨이 필자에게도 있었는데, 이어폰으로만 듣는 것보다는 스피커로도 음악을 듣고 싶었다. 특히,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음악을 꼭 틀어놓는 필자로서는, 이어폰 보다는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는 게 더 좋을 듯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사다주신 스피커는 당시 꽤 좋은 제품이었다. 지금 봐도 성능, 디자인 어느 것 하나 손색이 없다. 물론 소니 제품이었으니, 당시 몇 만원 했던 꽤 고가의 제품이었다. 원래는 두 세트로 되어 있어서 연결을 하면 스테레오로 들을 수 있는 제품이었는데, 아쉽게도 한 놈은 너무 오래 되어서 고장이 났다. 다행히 남은 한 놈은 아직도 거의 새것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제품은 좋은 점이 건전지를 끼우면 보다 큰 소리가 나지만, 건전지가 없어도 여전히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다만 플레이어의 볼륨을 많이 키워줘야 한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방에 정말 좋은 대형(?) 오디오가 있어서 굳이 이 스피커를 사용할 일이 없어서 구석에 수 년 동안 처박아 놨었는데, 그러다가 한 놈이 그만 고장난 것이었다. 영국으로 오면서 mp3플레이어에 연결해서 쓸 요량으로 이 놈을 가져왔더랬다. 그리고, 요즘도 역시 그 버릇 그대로 잠자리에 들기 전 음악을 틀어 놓으면서 이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쓴 것이니 못해도 15년 가량은 쓴 셈이다. 15년, 그 긴 세월을 함께 해온 물건이기에 요즘에는 그저 그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 나오는 빵빵한 스피커들에 비하면 좋은 성능은 아니지만, 이 스피커에는 15년 전 한참 음악에 빠져들었던 나의 추억과 감성들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이 스피커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 이 작은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며 수 많은 꿈을 꾸던 기억이 아스라이 피어오른다. 잘 사용해서 나중에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면 좋을 것 같다.

또 하나 오래된 물건을 꼽으라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샀던 하모니카 홀더가 있다. 그러니까, 밥 딜런이나 고 김광석처럼 기타를 치면서 하모니카를 불 때 사용하는, 목에 걸고 하모니카를 끼울 수 있게 되어 있는 기구(?)가 바로 하모니카 홀더다. 그 시절에 흠뻑 빠졌던 포크 음악의 대가들은 대부분 그렇게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었고, 필자로서는 당연히 그것을 따라하고 싶을 수 밖에 없었다.

이 하모니카 홀더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아마 생일을 앞두고서였던 것 같은데, 필자가 한 푼, 두 푼 모아서 샀던 3만 5천원짜리 첫 기타 이후 어머니께서 새 기타를 사주신다고 낙원상가에 데려가셔서 그 유명한 세고비아 기타를 사 주시던 날 같이 샀던 놈이다. 이 놈에 하모니카를 걸고 기타와 동시에 연주를 해 보던 첫 순간이 지금도 떠오른다. 비록 ‘등대지기’ 정도를 겨우 부는 수준이었지만, 드디어 내가 기타를 치면서 동시에 하모니카를 부는구나 하는 뿌듯함은 정말 최고였다.

이 하모니카 홀더는 미국에도 가져가서 수 많은 연주에서 사용되었다. 나중에는 쇠 재질로 되어있던 만큼, 녹이 슬고, 표면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훗날 가볍고 튼튼한, 또 매끈하게(?) 생긴 플라스틱 신제품이 나왔는데, 역시 이 오래된 놈을 바꾸기가 싫었다. 그 상태로 계속 쓰다가는 하모니카에 흠집이 날 것 같아서 하모니카와 닿는 부분을 노란 테잎으로 감아놓고 오늘 이 순간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작년에 비틀즈의 도시 리버풀에서 열린 국제 행사에서 ‘Let it be’를 연주하면서 이 놈을 사용해 하모니카를 불었고, 글라스고에서 열린 국제 행사에서는 ‘독도 아리랑’을 연주하면서 역시 이 놈을 사용했다.

역시 10년이 넘게 나와 함께 해 온 하모니카 홀더, 가끔은 녹슬고 테잎으로 감아놓은 모습이 그리 보기 좋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이놈을 버릴 의향도, 새 것으로 바꿀 의향도 전혀 없다. 얼마나 더 버텨줄지는 모르지만, 이놈 역시 나중에 자식에게 물려줄 참이다.

별 것 아닌 오래된 물건들이 이렇게 잔잔한 행복을 줄 수 있음에 새삼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러분들도 오랫동안 함께한 물건들을 찾아보시라, 새 물건들은 결코 줄 수 없는 놀라운 행복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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